풍운아(風雲兒) : 좋은 때를 타고 활동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 - 네이버 국어사전 사전에 나온 뜻은 이러하나, 내 머릿속 '풍운아'는 살짝 어감이 다르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갑자기 나타나 큰 인기를 얻지만 결국 시대와 큰 갈등을 겪으며 상처를 입은 영웅이 '풍운아'다. 김옥균, 정도전, 전봉준과 같은 인물에 우린 일찍이 '풍운아'란 별명을 붙였다. 허무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주는 '바람'과 '구름'이란 단어는 그런 생각을 더욱 부채질한다.
김명원이 쓴 야구 에세이 <야구풍운아>는 공 하나로 한 시대를 평정한 영웅들 이야기다. 무게 140여g, 지름 7.23cm에 불과한 공이지만 그 공을 쥔 영웅들에게 민심을 흔들 정도의 위력은 있었다.
적어도 권력을 쥔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해서 진학하는 것도, 구단을 고르는 것도, 외국에 나가는 것도 모두 제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실력은 축복이자 재앙이었다. 김명원은 그런 영웅들, 그런 시대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감정 이입이 지나쳐 결국 '애초 기획에서 벗어나 버렸다'고 고백하지만 결국 '야구풍운아'를 자기 나름대로 정의내린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시각으로 '풍운아'를 골랐을까. 나름대로 해석한 풍운아 선별법을 통해 이 책을 읽었다.
[풍운아 조건 ①] 만화 같은 천재성
2015년 한화 이글스 투수 로저스는 완투 4번을 기록해 전체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이 한 경기를 책임진 투수가 됐다. 완투란 1회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오로지 한 투수가 책임지기 때문에 좀처럼 나오기 힘든 기록이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무실점으로 막는 완봉은 더욱 나오기 힘든 기록이다. 지난해 완봉 1위 또한 로저스로 모두 3번 기록했다.
지난해 144경기 체제에서 이 정도 기록이 나왔다면 100경기를 치른 1983년 완투, 완봉 1위는 어느 정도였을까.
그해 삼미 슈퍼스타즈 소속이던 장명부는 총 60경기에 등판해 36번 완투를 기록하고, 8경기 연속 완투승을 기록했으며, 완봉승은 5회 기록한다. 시즌이 끝났을 때 그가 거둔 승수는 30승이었다.
야구를 보는 이라면 "설마" 또는 "미친 것 아냐"라며 경악할 기록이다. 술이 덜 깬 상태로도, 게다가 오늘 출전하는 줄도 모르던 선수가 마운드에 오른 경우도 있다. 결과는 물론 만화 같다.
"그런(선발인) 줄도 모르고 동료 김태원과 새벽까지 진탕 술을 퍼마신 김건우는, 숙취와 긴장감에 토할 것 같은 심정으로 몸을 풀었다... 1안타 완봉승으로 이날 경기를 가져갔다."현재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전 한화 이글스 투수 송진우는 단기사병으로 근무하던 1991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해 해태 강타선을 8회말 투아웃까지 퍼펙트로 막았고, 아무도 기대하진 않았던 '땜빵' 새내기 장호연은 프로야구 개막전 선발로 나서 완봉승을 거둔다.
자고로 '풍운아'가 되기 위해선 직접 기록을 확인하기 전까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괴력을 발휘해야 한다.
[풍운아 조건 ②]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낭만성 우리는 누구나 '멋진' 인간을 꿈꾼다. 하지만 매번 그 문턱 근처도 못 가본 채 포기하게 된다. '멋진' 인간이 되기 위해선 실력이 있어야 하며, 때론 숭고한 가치 앞에 무모할 정도로 몸을 던져야 한다. 한 시즌 내내 쉼 없이 달린 뒤, 가을 시즌에서 세 경기 연속 등판으로 팔을 들어올리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 된 엘지 트윈스 이상훈 선수 이야기다. 당시 감독이던 김성근이 물었다.
"던질 수 있겠니?"여기에 '낭만파' 영웅이 던진 답은 다음과 같다.
"던질 수 있겠냐고 묻지 마시고 던지라고 해주십시오."'일본 잡는 킬러'로 유명했던 한화 이글스의 '전설' 구대성도 이야기가 많다. IMF 금융위기 때 기업사정을 걱정해(?) 연봉을 알아서 삭감하는가 하면 경기 중 쓰러진 임수혁 선수 병원비와 선수협 운영비로 수천만 원을 선뜻 내놓는다.
"불펜에서 몸을 풀다가 부러진 배트에 머리를 맞고 병원에 실려 가서도 '등에 담이 결려서 고생했는데 피를 쫙 뺐더니 아픈 게 사라졌다'며 껄껄 웃어버린 것도" '쾌남아' 구대성이 지닌 면모였다.
팔꿈치 수술을 세 번이나 받고 고통스럽게 재활하던 후배 이동현이 "코치님, 저 팔꿈치 인대를 잃었습니다"라고 토로하자 "그럼, 내 인대를 줄게"(이상훈)라고 선선히 말하는 것이나, 억대 연봉을 받고서도 13평 아파트에 살며 한 달 용돈 10만 원에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었던 것(구대성)도 결국 보통 사람은 흉내낼 수 없는 '잘난' 영웅이기 때문이다.
[풍운아 조건 ③] 신의 질투, 완성하지 못한 꿈
연민인지 아쉬움인지 우린 성공한 영웅보다 좌절한 영웅에 더 마음을 뺏긴다. 어쩌면 그들이 이루지 못한 그 미래를 생생하게 상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86년 데뷔한 엘지 트윈스 투수 김건우는 26경기를 뛰는 동안 12승 7패 자책점 2.64를 기록 중이었다. 한 해 전 데뷔 첫해 18승 6패 자책점 1.81을 기록 중이던 김건우는 그해도 역시 프로야구 투수 분야 제일 꼭대기에 올라설 예정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9월 13일 밤 그는, 여자친구와 서울 대치동 청실아파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뺑소니 차량에 치여 두 팔과 오른다리가 부러지고 만다... 분식집을 열어 1년 남짓 장사를 했다. 트레이닝센터를 운영하고 책도 냈다. 그러는 사이 모아둔 돈은 속절없이 빠져나갔다. 이사를 아홉 번이나 다니면서 신림동 지하방까지 내몰렸다."1983년 프로야구판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장명부 또한 빛이 큰 만큼 그늘 또한 컸다. 1987년 일본으로 출국하려다 김포공항에서 종합소득세 730만 원을 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그는 이후 이혼, 사기죄 고발로 추락을 시작한다.
"1991년 5월, 영남대학교 야구부 코치 성낙수, 박찬 등과 함께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되면서...2005년 4월 13일, 일본 발 짤막한 외신이 한국에 전해졌다...향년 56세, 사인은 마약중독..."[풍운아 조건 4] 혼란스러운 시절, 외로운 영웅70, 80년대는 군인이 가장 힘이 센 시절이었다. '힘있는' 군인에게 밉보이면 교수도 기자도 국회의원도 밥줄을 내놓아야 했다. 그런 시절에 아무리 그라운드를 호령한다 한들 '외로운' 영웅에 불과했다.
'불세출의 영웅'이라 불린 전 롯데 자이언츠 투수 최동원(1958-2011)은 너무나 빼어난 실력 탓에 언제나 자기 맘대로 진로를 선택하지 못 했다. 대학도 프로야구단도 모두 실력자들이 정해놓은 길을 가야 했다.
"저간의 일들로 심신이 지친 최동원은 차라리 해외로 눈을 돌렸고, 1981년 메이저리그 토론토블루제이스와 연봉 61만 달러라는 좋은 조건으로 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힘'이 또다시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이듬해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 최초의 국제대회, 전두환 정권이 유치에 심혈을 기울인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한국 최초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던 한 선수의 꿈이 좌절된 순간이었다. 그 시절 군부정권은 민심을 돌리기 위해 서둘러 프로야구를 만들었고, 광주의 민심이 폭발할까 두려워 1990년대 중반까지 5월 18일 전후로 광주에서는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못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프로야구 실력을 높이기 위해 모셔온 재일동포 선수를 우리는 또 '반 쪽바리'라며 비아냥거렸고,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프로야구팀 감독이 '경기에 진 죄'로 고참급 주전선수들을 불러모아 '엎드려 뻗쳐'를 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때린 것도 잘못이지만 항명하는 것도 따지는 것도 잘못이었다. 따진 선수들은 벌을 받았다. 최동원이, 양준혁이, 장호연이, 강병규가 그렇게 벌을 받았다.
부산 사람이 가장 좋아하던 야구선수 최동원이 당시 부산 정서에서 비껴난 정당에 몸을 담았던 모습에서 '시대와의 불화' '외로운 영웅'의 모습을 본다.
"당시 초선의원이던 노무현(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은 3당 합당이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판하면서, 민자당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몇몇 의원과 함께 1990년 이른바 '꼬마 민주당'을 만들었다. 최동원은 1991년 민자당의 텃밭인 부산 서구에서 바로 이 꼬마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허나, 옷을 적실지언정 허리를 굽히지 않는 꼬장꼬장함 또한 풍운아의 또다른 특성이었으니, 이상훈이 2013년 10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서 "이명박 ×××, 아직도 2년이나 남았다"고 욕을 한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이 책은 야구풍운아 1편으로 투수 10명을 다뤘다. 2편에선 타자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변변한 책은 고사하고 자료조차 별로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각종 신문을 깨알같이 뒤져 흩어진 파편 조각으로 근사한 건물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가슴이 먹먹해져서 거리두기가 정말 힘들었고", "한없이 가벼웠던 처음의 기획안은 당연히 수정되었고", "'투혼'이라는 미명 아래 선수들에게 강요된 '혹사'를 너무 가볍게 여긴 걸" 죄송하게 여겼다고 고백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다. '투혼과 혹사' '기대와 비난' '환호와 외면'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며 그 시대와 그 영웅들을 바라봤던 우리에게도 던져진다.
<야구풍운아>는 출판사 파사주가 펴낸 첫 책으로 아쉽게도 이번엔 전자책만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