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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한창 심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전원회의에 배석하며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계와 사용계의 입장 차이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의 발언을 인용해 상황별로 연재할 계획입니다. - 기자 말

지난 6월 2일, 최저임금위원회 2차 전원회의 풍경.
 지난 6월 2일, 최저임금위원회 2차 전원회의 풍경.
ⓒ 최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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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최저임금위원회 2차 전원회의를 시작해도 된다는 사무국의 성원보고를 받은 후 박준성 위원장은 모두발언을 이어갔다. 최저임금 결정까지 갈 길이 머니 열심히 참여해달라는 좋은 말이다. 망치를 세 번 두드리며 회의 시작을 알리고부터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 사무국장 : 언론 공개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를 취재하려고 전원회의실에 모여 있는 기자들에게 점잖으면서도 위엄 있게 퇴장을 요청했다. 익숙한 듯 기자들은 방송장비를 주섬주섬 정리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보통 같으면 이렇게 정리 됐을 상황에 노동계가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1차 전원회의에서도 노-사위원 간사에게 최소한 모두발언 정도는 언론에 공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고, 위원장은 향후 회의에 반영하겠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 노동자위원5 : 매번 말씀 드리는데, 전원회의는 전체 다 공개하는 게 원칙입니다. 원만한 회의 진행을 위해 다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노-사 양측이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심의에 나서는 자세에 대해서 국민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씀드려왔습니다. 이건 신뢰의 문제입니다. 제가 매차 회의 때마다 얘기했었고 지난번에 그렇게 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 위원장 : 지금 그렇게 얘기하지 마시고 정식으로 운영위원회 안건으로 회의 진행과 관련해서 논의를 하는 걸로 하고 지금은 얘기를 하지 마십시오. 한두 번 회의하는 거 아니잖아요. 전원회의 시작할 때 노사 모두발언이든 발언 기회를 준 적이 없어요.

- 사용자위원4 : 회의를 6년째 하고 있는데 전원회의에서 격의 없이 토론한 게 외부로 나가는 게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언론공개는 제한적입니다.

노동자 생존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외부 공개는 안 된다?

6월 1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제4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박준성 위원장(오른쪽 둘째) 등 위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6월 1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제4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박준성 위원장(오른쪽 둘째) 등 위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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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30분간 이어졌다. 위원장은 사무국장에게 눈빛으로 무언가 말했고 사무국장은 언론공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며 취재진에게 재차 퇴장을 요청했다. 그리고 사무국 직원들은 기자 한명 한명을 문 밖으로 내보냈다. 회의 시작 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기자가 전원회의실을 촬영한 건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지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일 거다.

그리고 일주일 후 3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노-사-공익위원은 운영위원회를 열었다. 그리고 노-사가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을 제시하는 날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그 날 만큼은 노-사-공익위원 간사의 모두발언을 언론에 공개하는 걸로 정했다. 요구안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필요하면 운영위원회를 거쳐 공개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차츰차츰 세상 밖으로 나가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기엔 부족한 측면이 많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너무 낮다고 하고, 사용계는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고 한다. 긴 시간 동안 최저임금을 심의하고 결정했는데 양쪽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이라면, 전원회의를 과감히 공개해 논의에 참여하도록 하는 건 어떨까.

노-사의 입장을 듣고, 이해하고, 조율하는 과정 속에서 합리적인 수준의 임금을 결정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평화로운 노동시장 분위기까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노-사-공익위원이 긴장감과 책임감을 갖고 최저임금 심의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국민들의 관심을 모아 낼 필요가 있다. 가장 단순한 해결방법으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준을 결정하는 회의만큼은 공개적으로 토론을 해야 한다.

6월 16일. 노-사 최초요구안을 발표하기로 한 4차 전원회의가 시작됐다. 약속대로 위원장은 노-사-공익위원 간사에게 모두발언의 기회를 줬다.

- 노동자위원8 :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심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경제위기도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최저임금 인상만을 쳐다보는 노동자가 천만 명에 달합니다. 저임금노동자의 임금을 사실상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저임금 구조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 사용자위원1 : 최저임금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지불능력을 벗어나 급격히 오르다 보니까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약 11.5%입니다. 최저임금이 올라야겠지만 그래도 감내할 수 있는 속도로 올랐으면 하는 게 사용계의 생각입니다. 이것을 통해 같이 살아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급격히 오르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점을 찾도록 최대한 노력을 하겠습니다.

- 공익위원3 : 소득분배나 양극화문제가 나왔는데 최저임금이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최저임금에 접근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노동시장에 역할을 하면 좋은데, 지금은 최저임금에 대한 기대나 요구수준이 많이 몰려있습니다.

이건 힘들지만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최저임금 수준과 여러 제도가 노동시장의 저임금과 구조조정 상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선을 정하는데 공익위원들이 역할을 해야겠습니다. 노사위원님들이 임금수준과 관련해서는 간극을 많이 좁혀주시고 건설적이고 협력적 방법으로 논의를 좁혀주신다면, 그 안에서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해 논의를 촉진하고 최저임금이 합의에 의해 도출되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구교현 노동당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위한 국회 및 제 정당들의 응답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구교현 노동당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위한 국회 및 제 정당들의 응답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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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위원의 모두발언에는 전원회의 내내 실감하게 될 입장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라고 했고, 사용계는 최저임금이 소상공인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덜 인상해 '같이 살아나가자'고 했다. 그 순간 '같이 살자'를 외치며 혼자 죽어 간 해고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철거민, 장애인, 농민, 수많은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우습게도 '같이 살자'는 말이 최저임금을 덜 올리자는 호소로 아무렇게나 쓰이고 있다.

모두발언을 마치고 사무국장은 기자들에게 퇴장을 요청했다. 문을 꼭 걸어 잠근 채 전원회의가 시작됐다. 닫힌 문 밖에서 저임금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좀 올려 달라 외치지만 들릴 리 없다. 민중의 목소리를 차단한 채 최저임금 결정 권한을 독점하는 모습이 독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민주화 바람'이 불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최혜인입니다.



태그:#최저임금, #최저임금위원회, #6030원, #공개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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