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적자와 신규 물량 수주에 대한 어려움 등으로 한국 조선업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2000년대부터 10여 년간 한 해에 15조에서 25조 이상의 매출을 올려왔던 '조선 빅3'의 적자원인은 글로벌 교역량 부진, 과당경쟁에 따른 저가수주, 무능하고 부도덕한 경영진과 대주주, 관리감독은 실패하고 낙하산 인사 내려꽂기에 몰두한 정부와 감독당국 등 다양하게 들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 여당과 산업계는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에 대한 논의도, 일자리를 대체할 산업에 대한 청사진도 없이 마치 모든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 양, 노동자의 임금 삭감이나 퇴직 등의 '고통분담'만을 강요하고 있다.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는 이런 상황에서 신문들이 쌍용차 사태를 어떻게 아전인수 격으로 인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쌍용차 사태'는 좁게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약 76일간 평택공장 점거 농성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사측의 무자비한 구조조정 단행과 공권력 투입에 반발해 벌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과정 전반을 의미한다. 티볼리의 판매 호조 등으로 7년 만에 '마무리' 됐음에도 쌍용차 사태는 아직까지도 부적절한 구조조정 추진이 개인과 기업, 사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구조조정을 통해 업계를 살리는 것이 먼저라는 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할 것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의 피해와 그들의 합의에 주목함으로서 다시는 쌍용차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건강한 사회적 논의를 이끄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니터 결과, 조중동은 '쌍용차의 교훈'을 언급하며 구조조정에서 노동자의 희생이 '불가피'하며 '필수적'인 것임을 강조했을 뿐이다. 한편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노동자야말로 구조조정의 가장 큰 희생양이기에 이들을 위한 대책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노동자를 고통분담의 주체로 강조한 조중동동아일보가 정의하는 쌍용차 사태는 "극심한 노사 갈등"이자 "무분별한 대규모 정리해고", "트라우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끔찍한 기억에서 동아일보는 무엇을 배우고자 했을까? 먼저 동아일보는 <'구조조정' 단어가 금기였던 勞 "이러다 공멸… 필요성 인정">(4/26, 2면, 유성열‧정재락 기자, http://me2.do/5xoQkjDp)에서 "쌍용차 사태 때와 같은 무분별한 대규모 정리해고는 지역 경제를 황폐화"시킨다며 최근 노동계가 과거와는 달리 "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을 대폭 줄이는 대신, 해고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고용 대란'을 막아 보자는 취지"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강조했다.
바람직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이 주장은 '고통분담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노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勞, 적자에도 "임금 올려달라"… 회사 문닫기 직전까지 "투쟁">(5/6, 6면, 강유현 기자, http://me2.do/5gsBoFAE)에서 "한국에서 제조업의 노사관계는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고 회사가 도산 직전까지 간 뒤에야 개선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노조가 생산물량을 볼모로 회사를 위협하면, 회사가 못 이긴 척 노조 요구를 들어주는 '담합식 문화'"의 첫 번째 예시로 쌍용자동차를 언급했다. "77일간 '옥쇄파업'을 거쳤던 노사분쟁의 후유증"으로 "지난해 말엔 쌍용차와 쌍용차 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2009년 당시 해고자 복직에 대한 합의를 이루고 신차 '티볼리'의 성공으로 회복 분위기를 탔지만 아직까지 연간 적자를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고통 따르지만… 썩은 사과 지금 안 솎아내면 상자 전체가 썩는다>(4/26, 3면, http://me2.do/FyYPa2ig)에서 정치가 구조조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면서 쌍용차를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최악의 사태"로 꼽았다. <STX조선 4조5000억짜리 후회>(5/26, 1면, http://me2.do/5q6qscNf)에서도 쌍용차는 '나쁜 구조조정'의 예시로 등장한다.
최악의 사태인 것도, 나쁜 구조조정인 것도 분명 맞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쌍용차처럼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을까? 보도는 <노조의 때늦은 후회> 등의 소제목을 달고 "강성 노조의 대명사"였던 STX조선 노동조합이 최근에는 사측에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며 이를 "회사 측에 감원을 포함한 상당 부분의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뜻"이라 풀이했다. 동아일보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고통분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사설/구조조정, 정치가 개입하면 산으로 간다>(5/24, 30면, http://me2.do/xTROUssr)에서 "당장 고통을 호소하며 실업대책을 요구하는 노조를 여당이든 야당이든 외면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노조 요구대로 초강력 실업대책을 밀어붙였다간 공연히 분란거리만 만들어 구조조정의 혼란과 고통이 더 크고 길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 사태 때 익히 경험했던 일"이라 강조했다.
조중동 모두 쌍용차 사태의 교훈에서 노동자들의 희생과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끌어내려 애를 쓴 것이다.
노동자를 보호의 대상으로 본 경향·한겨레쌍용차 사태를 일종의 비극으로 풀이한 것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론'은 달랐다.
경향신문은 <사설/조선 해운 구조조정, 대규모 감원으로 끝낼 일 아니다>(4/22, 27면, http://me2.do/FWXKeDFg)에서 "2008년 쌍용차와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실직자의 연쇄 자살과 대규모 저항으로 이어졌던 사태와 같은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대규모 감원을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선택하려면 노동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실효성 있는 실업대책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도 산업개혁도 여 야, 진보 보수가 함께 풀자>(4/22, 31면, http://me2.do/GOYUjHLA)에서도 노동자를 위한 각종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과거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에서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으며 "해고를 최소화하는 노력"과 "다각적인 지원책", "사회안전망 확충"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노동자에게 잘못이 있다면 무능한 경영자에게 고용된 것뿐"임에도 "어느 한쪽에 고통을 전가하는 것은 구조조정의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 지적하기도 했다.
<최악 구조조정 쌍용차를 기억하라>(4/25, 3면, http://me2.do/GNAPoHXP)에서는 아예 쌍용차 사태를 "노동자들만 고통을 감당했던 '최악의 구조조정 사례'"로 꼽았다. 이어 경향신문은 "쌍용차는 해고자수가 몇천명 수준이고 평택지역에 국한된 문제였지만,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10만명 수준으로 커질 수 있고 거제뿐 아니라 부산, 목포, 군산까지 고통에 휩싸이는 전국적 사안"인 만큼 "사회안전망 확충이 시급할 뿐 아니라 개별기업도 노조와 정확한 상황인식을 공유하며 정상화 계획을 함께 협의하는 등 노사 간 대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제언을 소개했다.
경향신문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 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직이 희생양이 된다는 지적을 내놓으면서도 쌍용차 사태를 언급했다. <구조조정 최대 피해자 하청 노동자 대량해고 이미 진행 중>(4/27, 6면, http://me2.do/5daR12d6) 보도에서 경향신문은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은 최근 한국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긴 대표적 구조조정 사업장"이라며 "사람들은 쌍용차,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을 정규직 정리해고로만 기억하지만 정규직이 잘려나가기 전에 구조조정의 표적이 된 것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었"음을 강조했다.
경향신문과 마찬가지로 한겨레 역시 노동자 고통을 최소화할 방안 마련을 강조했다. <구조조정 '전야'… '하청의 눈물' 이미 시작됐다>(4/22, 1면, http://me2.do/5emLMYA6)에서는 "'제2의 쌍용차 사태'를 막으려면, 시급히 노사와 정부는 물론 국회까지 참여한 사회적 대화의 틀을 마련해 구조조정의 범위와 절차, 일자리 나누기와 사회안전망 강화 등 고통을 최소화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문가들과 노동계의 주장을 소개했다.
한편, 한겨레는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공평함'이나 '협력'을 강조하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구조조정 충격 대비할 '비상계획'과 '컨트롤타워' 만들라">(5/2, 8면, http://me2.do/5sSw5F5V)에는 "해고자가 수천명 수준이었던 쌍용차 사태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었다며 "수만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으면 "해고 노동자들은 다른 곳으로 옮길 데가 없"어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음에도 "정부가 예전 방식대로 하면 쌍용차 비극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쌍용차의 경우도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 사이에 큰 차이가 났다"며 "남은 근로자들도 공평하게 고통 분담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중'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는 옳은가?>(5/14, 2면, 곽정수 경제 에디터석 선임기자, http://me2.do/FlNf3vdV)에서는 더 강하게 이 같은 주장을 했다. 곽정수 선임기자는 "총 고용인력이 20만명에 이르는 조선업의 경우 현재 추세로 가면 수만명의 대량해고가 불가피해, 제2의 쌍용차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이를 막으려면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임금을 줄이는 고통분담에 나서서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고용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임단협에서 9만여원의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한겨레는 "하청 노동자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데 "(정규직)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는 오히려 다른 동료들의 일자리를 더욱 위협하는 일"이라 비판했다.
물론 이 같은 '희생' 요구는 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노동자 전반의 희생과 양보가 불가피하다고만 주장하는 조중동의 주장과는 층위를 달리 한다. 한겨레가 주목한 것은 노동자 집단의 '연대'다. <조선소 하루만 일해보라>(5/10, 30면, http://me2.do/FE6DCHdh)에서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에서 쫓겨날 비정규직이 5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소개하며 이 같은 수치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인원수의 20배"에 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보도는 현재의 "현대중공업 노조는 비정규직을 외면하다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후 12년 만에 들어선 민주노조"이며 "정규직 노조가 하청노동자 대표들이 포함된 공동의 기구를 만들어 부패한 경영진의 책임을 물"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결국 직영과 하청이 힘을 합쳐 구조조정의 파고를 같이 넘자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리 : 민언련 신문모니터위원회 한재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