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게 살더라도 네가 걷고 싶은 길을 걸어라. 너 혼자만 잘 살아선 안 된다. 주위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받는 이들을 돌아봐라. 사람은 더불어 사는 존재다."자신의 딸과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2016년 한국사회에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그 사람의 최종 학력이 평생을 따라 다니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되고, 출신 대학과 출신 지역이 이른바 '출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
그러니, 대부분의 아버지와 엄마가 "너는 왜 오늘도 학원 빼먹었니?" "도대체 그 성적으로 어떻게 번듯한 기업에 갈 수 있겠니?" "요즘엔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 최고라더라. 공무원시험 준비해"라고 채근하는 부모들을 '못난 사람'이라 힐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세상은 대기업 직원과 판·검사, 의사와 공무원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이것 또한 엄연한 당연 명제다. 많은 이들이 원하는 직업이 있다면,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사람도 세상엔 있는 법. 시인도 그중 하나다.
"남쪽에 미당(서정주)이 있다면 북쪽에는 소월(김정식)과 백석(백기행)이 있다"라는 이야기는 문인들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떠돌았다. 한국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서정시의 선두를 달리는 사람들. 그 역시 계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 박선욱이 어린이들을 위한 '백석 평전'을 썼다. 이름하여 <박선욱 선생님이 들려주는 백석>(도서출판 산하).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해 어린 나이에 문명(文名)을 떨치고, 일본 유학과 일간지 기자생활, 영어 교사를 거쳐 '서정시를 인정할 수 없는 사회·사상적 제도'의 북한에서 닭을 키우며 쓸쓸하게 말년을 보낸 불행했던 20세기 문학 천재의 이야기.
다른 '길'과 '꿈'을 지향하는 아이들에게박선욱이 이 책을 통해 우회적으로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간명하다. "모두가 똑같아지려는 삶이 아닌, 조금은 다른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시인이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아닌, 조롱과 비하의 코드로 자리한 21세기 한국사회에선 어찌 보면 슬픈 몸부림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인간 모두가 노력한다고 모두 수학능력평가의 고득점을 받을 순 없다. 또한, 그 직업이 백만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고 해서 국회의원과 대법관만이 모든 학생들이 '지향해야 할 직업'일 수도 없다. 누군가는 보편적 세상과 보통 사람이 가리키는 길과는 다른 꿈을 꾼다.
만약 의사로서의 편안한 삶만을 원했다면 알버트 슈바이처는 말라리아와 황열병의 위험 가득한 아프리카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수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한국의 이태석 신부는 그가 섬기는 신이 성당이 아닌 지구 위 최빈국 수단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 꿈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길'을 통해 남들과는 '또 다른 꿈'을 꾼 사람들. 바로 그 꿈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아닐까?
박선욱이 쓴 <백석>은 이제 막 자신만의 '길'과 '꿈'을 찾기 시작한 아이들의 귀에 속삭인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다른 사람과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처럼 간명한 생의 진실을 어른인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눈물과 삶의 비애를 부르는 시 한 구절 외우지 못하면서, 아파트 평수 넓히는 것만을 지상목표로 삼은 어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