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큼, 국·탕·찌개 요리가 발달한 나라가 또 있을까요? 어떤 재료만 있어도 시원한 국이 되고 얼큰한 찌개가 되고 푸짐한 탕이 됩니다. 특히 소뼈를 고아낸 사골 국물은 곰탕은 물론, 만두나 기타 찌개 요리에 이용되기도 하지요. 돼지뼈를 고아낸 국물은 감자탕과 함께, 김치찌깨, 고기국수 등을 만드는 데 일품입니다.

이들 음식은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푹 끓인다는 특징과 함께 적은 재료로도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먹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낸 후 소뼈를 가마솥에 푹 고아 만들어낸 국물을 많은 이들이 나눠 먹었다는 설렁탕의 유래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본래 한솥에 만들어낸 음식을 나눠 먹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끓인 음식이 더 발달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절정을 보여준 것이 바로 오늘 소개하려는 '부대찌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쟁으로 한창 배를 곯던 시절, 미군들이 남기고 간 햄과 소시지, 베이컨, 콩 통조림을 주워다가 한데 모아 끓여먹은 것에서 유래한 이 음식이 오늘날에는 별미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서양의 음식과 한국의 탕 문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요리.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우리 음식'이라는 인식이 더 높은 게 바로 부대찌개입니다.

서양의 음식과 한국의 탕 문화가 만들어낸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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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가 만들어진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재료를 주워 바로 찌개로 끓여먹은 것이 원조라는 설이 있고요. 원래는 볶음으로 먹었다가 짠맛이 나고 양이 모자르자 물을 부었고, 그렇게 해서 부대찌개가 탄생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재료를 있는대로 모아놓고 끓인 '꿀꿀이죽'이 부대찌개로 바뀌었다는 설도 나오고 있지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전쟁과 미군 음식, 주운 것을 한데 모아 끓여낸 음식이라는 거죠. '헬로, 기브 미 쬬꼬렛또'로 대표되는 궁핍한 시절, 미군들이 어쩌다 남겨놓은 햄과 소시지, 콩 통조림은 정말 귀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라고 해도 말이죠.

이 음식을 우리는 물을 넣고 끓여 먹었습니다. 끓이게 되면 아무래도 그냥 먹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기 마련이죠. 유통기한이 지났다면 말이죠. 여기에 김치나 양념이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어려운 살림, 제 몸 하나 누일 공간조차 마땅치 않았지만 이렇게 한 냄비 끓여놓으면 숟가락을 든 여러 손들이 다가옵니다. 그저 맛있습니다. 신기하면서도 참 맛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둘러앉아 맛있는 찌개를 먹게 되다니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조금 거창하게도 부대찌개를 '한국 현대사가 응축된 음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전쟁의 상흔과 미군의 주둔, 1950년대 초반 전쟁으로 얼룩진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부대찌개 안에 담겨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기억이 담긴 부대찌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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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는 '한 끼 때우는 음식'에서 점점 별미로 바뀌어 갑니다. 부대찌개 맛집이 생기고, 체인점이 생겨났죠. 라면 사리가 등장하고, 치즈, 마카로니 등 재료도 다양해졌습니다. 얼큰하면서도 달착지근한(달콤한 맛의 비밀은 햄 소시지의 첨가물이라고 하죠) 부대찌개에 밥 한 공기, 여기에 소주라도 한 잔 곁들이면 쌓인 피로를 풀 수가 있죠.

그러고보니 비단 부대찌개는 전쟁의 기억만을 담은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 단골 술집에서 부대찌개를 주문하면 묻지도 않고 라면 사리를 많이 넣어주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군 복무 시절 휴가 나왔을 때 선임이 사주던 부대찌개의 맛도 생각납니다. 그때만큼은 까마득하던 선임이 형처럼,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마법은 휴가가 끝난 뒤 온데간데 사라지고 말았죠. 어느새 그는 다시 무서운 선임으로 돌아왔습니다.

별미로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부대찌개는 여전히 다양한 재료로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추억의 음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제 날씨가 더워서 먹기가 다소 어려울수도 있지만 그래도 문득 장마가 한창인 저녁에 좋은 친구들과 함께 부대찌개를 앞에 놓고 소주를 한잔 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행복해야 세상을 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