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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하나, '땡삐'에 원투쓰리 펀치 맞고 넉다운

마늘 캐는 날이 밝았다. 주말 이틀 동안 전쟁 같은 한결이네 마늘 캐기 작전 시작이다. 마늘 주산지인 단양에서는 하지(6월 21일) 앞뒤로 마늘을 캔다. 그런데 이 때는 꼭 장맛비가 오락가락해서 농민들 마음을 까맣게 태운다.

주말에도 한차례 비 예보가 있는데다 다음 주에는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니 단양의 온 마을마다 마늘 캐기 비상작전이 벌어진다. 마늘 캐고 돌려짓기로 콩까지 심어야 하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집집마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돌아오고 읍내와 제천에 나가 용역 사람들을 불러온다. 그래도 일손이 모자란다. 마늘을 1차로 경운기나 트랙터 수확기로 흙속에서 들어주면 사람들이 마늘을 뽑아 흙을 털어 묶기 편하도록 한 줌씩 모둠을 한다.

마늘을 묶고, 트럭에 실어서 건조장으로 옮겨 걸어야 한다. 흙이 덮여 있는 비닐을 깨끗이 걷어내야 밭을 갈고 메주콩을 바로 심을 수 있다. 300평 기준으로 하루 작업 기준 10~15명이 필요하다.

단양군 적성면 하리 한결이네는 올해 유기농 마늘 400평을 재배했다. 이웃 농가들처럼 도시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을 하고 동네 할머니들에게 부탁을 했다. 이웃 마을에서도 지원을 오기로 했다. 약속한 대로 사람들이 모이면 이틀 내 마늘을 다 캐고 콩까지 심을 수 있다.

이른 새벽 한결아빠는 한결이 외당숙네 들깨 심을 밭을 갈아놓고 재 넘어 이웃마을 성용이 아빠네로 마늘 캐는 경운기를 빌리러 갔다. 성용이는 대가초등학교 1학년으로 한결이와 유치원부터 함께 다녔다.

재 넘어 가는 길에 갓 귀촌한 래브라도 대길이를 드라이브 시켜준다고 트럭에 태워 간 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분당에서 살던 대길이는 제천 백운면 마리스타수도원에서 목수일을 하는 신성국 신부님 댁에 이사를 왔다가 3주 전 한결이네로 귀촌했다.

성용이 엄마가 내려준 커피 한 잔 마실 사이 대길이를 경운기 수레에 메어 놓는다는 것이 아뿔싸 하필이면 경운기 아래 있는 땡삐(땅벌의 사투리)집에 손을 들이 밀었다.

경운기 트레일러에 땡비집이 경운기 트레일러 아래에 땡삐집이 있다. 한결아빠는 여기에 손을 집어 넣었다가 땡삐에게 세 방을 쏘여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 경운기 트레일러에 땡비집이 경운기 트레일러 아래에 땡삐집이 있다. 한결아빠는 여기에 손을 집어 넣었다가 땡삐에게 세 방을 쏘여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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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맛보는 극한의 통증. 오른손에 두 방, 오른쪽 눈 밑에 한 방. 주말 아침의 여유를 즐기다 화들짝 놀란 땡삐 가족이 난데없이 손을 들이민 사람에게 분노의 복수를 한 것이다. 악소리도 못할 정도로 통증이 밀려온다.

얼음찜질에 성용이 엄마가 준 해독 오일을 바르고 20여 분 지나니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다. 손과 얼굴은 퉁퉁 붓고 욱신거린다. 경운기 몰고 마늘단 묶어 나르려면 이 상태로는 곤란하다. 해독주사 한 방 맞으러 읍내 의원으로 내달린다.

매포읍내에는 여느 시골 작은 읍처럼 동네의원과 약국이 많지 않다. 일요일에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 다행히 토요일이라 동네의원 두 곳, 약국 두 곳 모두 문을 열었다.

농사 지으며 이런저런 부상을 많이 당하는 터라 낯이 익은 매포의원 의사가 손과 얼굴을 보고는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어지럽지 않으세요? 땡삐 쏘여서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우선 주사 맞으시고 약 바로 드세요. 술은 절대 금지요."

간호사가 주사를 엉덩이에 하나도 안 아프게 찌르며 겁준다.

"알레르기 증상 나오면 바로 큰 병원으로 가세요."

처방전 받아 약국에 가니 약사가 출근 전이다. 직원이 10분 기다리란다. 그러고 보니 새벽부터 밭 갈고 재 넘어 오느라고 허기가 진다. 약국 맞은편 식당이 문을 열었다. 가장 빨리 나오는 비빔밥 한 그릇 뚝딱 한다. 전화기가 울린다. 한결이 엄마다.

"어디여? 마늘 안 떠?"

한결엄마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다. 당연하다. 마늘 캘 사람들이 오기 전에 경운기 마늘 수확기로 마늘을 떠 놓았어야 일이 진행되는데 9시가 넘어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경운기는 감감무소식이기 때문이다.

"마늘 수확기 빌리러 재 넘어 왔지. 지금 가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뚝딱 밥그릇 비우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서는 의사 말대로 한 봉지를 서둘러 먹고는 성용이네로 마늘수확기를 실으러 달려간다. 성용이네 마늘수확기에 도착한 뒤 땡삐집에 살금살금 다가가 본다. 아직 작은 집이다. 십여 마리가 새끼 키우며 집 짓고 있다.

"땡삐님, 미안해요. 가택무단침입해서. 그래도 세 방이나 쏘시다니 좀 과하셨어요. 고의가 아니었거든요."

성용이 아빠네 경운기 전기 시동장치가 고장났다. 손으로 돌려서 시동을 걸어야 한다. 지난해에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렸을 때는 배터리 시동을 걸었기에 손으로 시동 거는 경험이 없다. 성용이 아빠가 가르쳐 주고 시범 보인다.

"쉬워요. 악세레다 올리고 여기 코 잡고 열 바퀴 돌리고 코 놓으면 돼요."

따라해 보니 정말 쉽다. 단 엔진이 돌아가는 회전력에 시동기가 손에서 달아나 휙 날라간다. 성용이 아빠가 주의를 준다.

"이거 놓치면 큰일나요. 잘못하면 맞아서 크게 다쳐요. 절대 손에서 놓지 말고 부드럽게 빼내야 해요."

맞다. 이 쇠뭉치가 구심력에 의해 내 몸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달려들면 크게 다치겠다. 가슴을 쓸어 내리고 주의사항을 유념하며 다시 시동을 건다.

'휙휙휙휙휙휙휙휙휙휙'. 열 번을 돌리고 코를 놓으니 특유의 육중한 경운기 시동이 걸린다.

텅, 텅, 텅, 텅, 두다다다다.

땡삐 사고의 원인이 된 대길이와 경운기 갓 귀촌한 대길이와 함께 이웃마을 성용이네 경운기를 빌리러 왔다가 땡삐에 쏘였다. 치료를 받고 대길와 경운기를 싣고 마늘밭으로 간다
▲ 땡삐 사고의 원인이 된 대길이와 경운기 갓 귀촌한 대길이와 함께 이웃마을 성용이네 경운기를 빌리러 왔다가 땡삐에 쏘였다. 치료를 받고 대길와 경운기를 싣고 마늘밭으로 간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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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를 트럭에 싣고 차문을 닫으니 대길이가 애타게 짖는다.

"멍멍, 나도 데려가야지 아빠."

자길 떼어놓고 가는 줄 아는가 보다. 대길이까지 태우고 마님이 노해서 기다리고 있는 마늘밭으로 고고씽.

# 이야기 둘, 땡볕 아래 마늘 캐기의 고단함

새벽부터 시작했어야 할 마늘 캐기가 오전 10시가 다 돼서야 시작했다. 첫 날은 사람이 얼마 없다. 천안에서 온 둘째처형과 한결엄마, 장모님, 이웃마을에서 온 형님과 한결아빠, 모두 해서 다섯이다. 시작이 늦은데다 사람도 부족하다.

내일은 청주에서 막내처남 부부가 오고 동네 팔순 할머니 3인방이 더해지니 오늘은 할 수 있을 때까지 마늘을 캔다. 10시부터 경운기로 마늘을 점심 때까지 떴다. 땡볕 아래에서 마늘을 뽑아 흙을 턴다.

지난 주에 물을 대고 많지는 않지만 비가 내린 까닭에 물기가 많아 흙이 잘 안 털려 일이 좀 더디다. 땅 속 작물인 마늘은 흙에 물기가 너무 많아도, 가물어서 물기가 너무 없어도 나쁘다.

경운기 마늘수확기로 단양마늘 캐다 마늘 캐기 주말 첫날, 경운기 마늘수확기로 마늘을 뜨면 사람들이 마늘을 흙에서 뽑아서 흙을 털어 모둔다.
▲ 경운기 마늘수확기로 단양마늘 캐다 마늘 캐기 주말 첫날, 경운기 마늘수확기로 마늘을 뜨면 사람들이 마늘을 흙에서 뽑아서 흙을 털어 모둔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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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으로 시집을 가서 지금은 천안에서 우체국 공무원인 둘째 처형과 한결엄마는 마늘캐기의 달인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많이 해보았기 때문이다. 무척 빠른 속도로 마늘을 뽑아 흙을 털어 나간다.

적성면 이웃 마을인 단성면에 사는 상진이 형님은 단양군 교육지원청 공무원이다. 평생 농사와는 인연이 없는 형님은 큰 처형의 친구이기도 하고 한결아빠와도 잘 아는 사이라 일을 도우러 왔다. 그런데 손이 더디다.

쪼그리고 앉아서 마늘을 뽑아서 흙을 털자니 영 죽을 맛이다. 옆에서 같이 시작한 천안 둘째 처형과 한결엄마는 저만치 멀리 나갔는데 상진이 형님은 많이 뒤처졌다.

"한결아빠야, 이 집 식구들은 손이 우째 이리 빨라? 난 도저히 못 따라 가겄다. 허리 아프고 무릎 아프고 똑 죽겄다."

대가초등학교 2학년 한결이는 마늘밭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밭에 같이 나온 대길이와 놀더니 더위와 노동에 지친 식구에게 시원한 오미자물을 나른다. 날이 한여름을 방불케 할 만큼 덥고 햇볕이 따가워 고생하는 어른들이 딱했나 보다.

# 이야기 셋, 새참이 온다

시골에서 사람을 사서 농사일을 하면 식사를 세 끼 준비한다. 오전 새참, 점심, 오후 새참. 점심은 이웃 대강면에서 막국수를 먹었다. 4시가 넘어가니 허기가 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장모님이 안 계신다. 아하, 새참 가지러 가셨구나.

단양마늘 캐는 날 오후 새참 텃밭의 오이와 풋고추 고명을 올린 손칼국수로 오후의 허기를 달랜다
▲ 단양마늘 캐는 날 오후 새참 텃밭의 오이와 풋고추 고명을 올린 손칼국수로 오후의 허기를 달랜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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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잠시 뒤 새참을 머리에 이고 손에는 물통을 들고 맵씨 있게 논두렁을 건너오신다. 아! 저 자태. 그 옛날 50다랑이 논농사 짓던 시절 수도 없이 새참을 이고 막걸리 주전자 손에 들고 날랐던 그 자태다. 50여년 농사 지어 몸에 배어 한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새참은 손수 만드신 손칼국수다. 잠깐 사이 밀가루를 밀고 썰어서 면을 만들고 갓 캔 햇마늘로 맛을 낸 양념장에 오이와 풋고추 고명까지. 역시 농사의 달인이시다. 손칼국수를 배불리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다음주 화요일부터 장맛비가 온다더니 예보가 바뀌어 내일 낮에 잠깐 비가 온단다. 소나기라도 세게 오면 재앙이다. 손놀림이 빨라진다. 우리의 귀촌 멍멍이 대길이는 마늘밭 감나무 아래에서 졸며 깨며 식구들을 바라본다.

# 이야기 넷, 늦은 저녁밥의 유쾌함

어두워져서야 다사다난한 마늘 캐기 비상작전 첫날을 마쳤다. 햇마늘을 까고 밭에서 가지가지 채소를 뜯어 저녁밥상에 둘러 앉는다. 도시에 나가 사는 식구들이 속속 도착한다. 청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막내 처남 부부와 어여쁜 조카들. 한결이는 두살 터울 형이 와서 신이 났다.

마늘 캐고 가족이 둘러앉은 늦은 저녁식사 도시에서 돌아온 딸, 아들, 손주, 이웃과 어우러진 시골집의 늦은 저녁식사가 유쾌하다
▲ 마늘 캐고 가족이 둘러앉은 늦은 저녁식사 도시에서 돌아온 딸, 아들, 손주, 이웃과 어우러진 시골집의 늦은 저녁식사가 유쾌하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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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시집간 둘째 딸,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 아들과 손주들이 왔으니 장모님은 말은 안해도 마음이 촉촉해진다. 마당에서 멍멍이 대길이와 매리는 제 몫의 삼겹살 구이를 기다리며 다소곳이 앉아 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깊어간다.

도시에서 온 식구들과 강 건너 이웃마을 상진이 형님은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가 높아진다. 옛날 얘기부터 지금 얘기까지. 명절도 아닌데 명절 분위기다.

# 이야기 다섯, 강건너 마을 상진이 형님

한결아빠는 몇 해 전 마늘 농사에 올인한다고 중고 트랙터 팔고 새 트랙터를 4천만 원 주고 샀다. 트랙터에 부착하는 마늘수확기까지 마련하고 마늘건조장을 7백만 원 들여 지었다. 천오백평 마늘을 심으며 평당 2만 원 마늘 소득이 나면 농사수입이 안정될 거라는 셈속이었다.

그 해 마늘값이 폭락하며 유기농 마늘도 판로를 잃었다. 마늘값이 원체 싸니 직거래로 팔 수 있는 양도 한계가 있었다. 팔지 못해 끌어안고 있던 마늘 8백접을 봄이 되어 퇴비장에 버렸다. 그렇게 마늘을 버리고 나서 지금까지 마늘은 직거래할 수 있는 양만 재배한다.

1500평 마늘 심었던 해에 적성면과 단성면 사이를 흐르는 남한강 건너 이웃마을 상진이 형님을 알게 되었다. 큰 처형 친구인데 마늘 캐는 걸 도와 주시겠다고 오셨다. 혼자 오시는 줄 알았는데 일곱명을 데려 오셨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전국공무원노조 단양지부 회원들이란다. 상진이 형님은 충북지부장이다. 노조에서 농번기 농촌일손 지원을 나가자고 했고 마늘을 너무 많이 심어 애를 먹는 한결이네로 지원을 나가기로 했단다. 그렇게 그 해 1500평 마늘을 8명의 장정 덕분에 잘 캘 수 있었다. 그랬던 상진이 형님이 그저께 집에 찾아 오셨다.

"한결아빠, 올해는 몇 평이나 마늘 심었어?"
"많이 줄였어요. 400평."
"마늘 캘 사람은 있고?"
"늘 그렇듯이 식구들끼리 해야죠."
"장마 온다는데 언제 캐나?"
"주말에요."
"그래? 그럼 주말에 보자고."

상진이 형님이 오셨다. 이번에는 혼자다.

"다들 노조일 하느라 혼자 왔어. 내가 주말에 마늘 캐고 걸어줄게. 걱정 마셔."

특유의 농담 섞인 말투로 멋쩍어 하면서도 환하게 웃는다.

마늘 캐기 일손 도우미 단양군 교육지원청 이상진님 이웃마을 단성면에 사는 이상진님이 주말동안 적성면 한결이네 마늘 캐기 도우미를 했다.
▲ 마늘 캐기 일손 도우미 단양군 교육지원청 이상진님 이웃마을 단성면에 사는 이상진님이 주말동안 적성면 한결이네 마늘 캐기 도우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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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고된 마늘 캐기를 온 몸으로 치러냈다.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똥방석을 깔고 쪼그려 앉아 마늘을 뽑고 뿌리에 붙은 흙을 털어낸다. 농사일에 단련된 작은 처형과 한결엄마의 속도를 따라가려다 몸이 퍼졌다.

"난 죽었다 깨도 저 두 사람 못 따라 가겠다."

늦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친정엄마 마늘 캐는 일을 도우러 천안에서 온 둘째처형은 이 말을 듣고는 빙긋 웃으며 말한다. 태생이 강원도 바로 옆 단양이라 강원도 사투리를 써야 하는데 시집 가서 충남에 산 지가 오래라 느릿느릿 충청도 사투리다.

"사장님, 지는유, 어무니 아부지 따라 다니면서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했어유. 안해본 일이 없어유. 우리 형제들이 다 그래유."

옆에서 작은 처형과 상진이 형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큰처형이 말을 거든다.

"상진아, 우리 다섯 남매는 농사일에 이골이 난 거 몰라? 다섯이 성격이 제각각이라 밭에 뿔뿔이 흩어져 구역을 정해서 일을 했다고."

지난해 북단양농협 여성 최초의 상무로 승진한 큰처형은 교대에 합격하고도 진학을 포기하고 농협에 취직해서 지난 35년 아래 네 동생을 학비를 대고 농사일을 도운 처갓집 기둥이다.

마늘 캐는 일은 어설퍼도 일을 마치고 베란다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 겸 뒷풀이를 하는 자리에서만은 강 건너 상진이 형님이 주인공이다. 넉살과 우스갯소리, 위트와 유머로 좌중을 압도한다. 네 시간에 걸친 긴긴 저녁 자리를 파하고는,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새벽에 또 보자고."

하고는 홀연히 다리 건너 강 건너 마을로 사라진다.

# 이야기 여섯, 청주에서 온 한결이 막내 외삼촌

지난 밤 청주에서 온 한결이 막내외삼촌. 처가 다섯 형제 중 막내다. 축구선수 출신이자 군대에서는 자동차 정비를 한 엔지니어다. 지금은 행정 공무원이다. 막내처남이 손으로 시동 거는 경운기를 보고는 환호한다.

"이거 얼마 만에 보는 수동 시동 경운기여. 시동 한번 걸어볼까유."

경운기를 빌려준 성용이아빠는 열 번 돌리고 코를 놓으면 된다는데 막내처남은 그게 아니란다.

"매형, 그게 아뉴. 그건 초보구유. 둬번 돌리구유. 클러치 놓고 둬번 더 돌리면 돼유. 봐유."

퉁, 퉁, 퉁, 두다다다다. 시동이 걸린다.

"봤쥬. 엔진원리를 알면 되는거유. 차 시동 안걸릴 때 사람이 차를 밀어서 시동 걸쥬. 바로 그 원리유."

한결이네 막내외삼촌의 경운기 시동 걸기 청주시 행정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박성구님은 주말에 어머니의 마늘 캐기를 도우러 고향에 와서 일을 도왔다.
▲ 한결이네 막내외삼촌의 경운기 시동 걸기 청주시 행정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박성구님은 주말에 어머니의 마늘 캐기를 도우러 고향에 와서 일을 도왔다.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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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을 때 자동차정비 보직으로 근무했다. 자동차 정비 기능사라서 경운기 시동원리를 정확히 알고 매형에게 한 수 가르쳐 준다.

막내처남은 고등학교 때까지 청주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2002년 월드컵의 영웅 이운재 선수가 막내처남의 1년 선배다. 막내처남은 부상으로 축구선수의 꿈을 접었다. 지금은 청주시 행정공무원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삶을 산다.

그렇지만 축구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공무원 축구리그에서 스타다. 전국 각지 공무원 축구리그에 청주시 공무원 축구클럽팀 소속으로 참가하고 있다.

둘째날은 마늘밭에 열 네 사람이 모였다. 장모님과 동네 팔순 할머니 3인방, 장모님의 딸 셋, 강 건너 상진이 형님, 서울 사는 막내처남 처가식구들까지. 사람이 많으니 흥이 절로 난다. 일할 사람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분업이 이루어지고 일의 속도가 난다.

어제 뽑아 놓은 마늘은 단을 묶어 농업용 트럭의 전설 기아 세레스에 가득 싣고 건조장으로 향한다. 운동으로 단련된 건장한 막내처남과 마늘묶음을 맨 윗단부터 건조대에 건다. 건조장에 마늘을 다 걸고 바라다 보노라면 농부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 하지만 흙투성이 매형을 보고 막내처남은 담배연기를 피워내며 말한다.

"매형, 이렇게 힘든 농사일을 도시 사람들이 알아 줄까유."


# 이야기 일곱, 올해도 마늘농사 잘 지었네


어제 안하던 농사일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종일 한 상진이 형님은 가장 늦게 나타났다. 하지만 전공노 교육공무원 도지부장답게 목소리도 우렁차게 일을 시작한다.


"내가 보니 이 집은 콩가루여. 오늘은 내가 오야지 할 거니까 모두 내 작업지시대로 해."


한결이네 단양마늘 캐기 둘쨋날, 열 다섯명이 북적북적 첫 날 다섯명이 일하느라 한산하던 마늘밭에 둘째날에는 열다섯명이 모여 일한다. 일 하는 사람이 많으니 흥겹다.
▲ 한결이네 단양마늘 캐기 둘쨋날, 열 다섯명이 북적북적 첫 날 다섯명이 일하느라 한산하던 마늘밭에 둘째날에는 열다섯명이 모여 일한다. 일 하는 사람이 많으니 흥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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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온 상진이 형님의 호통과는 상관없이 열다섯 명은 각자 알아서 자기 몫의 일을 한다. 마늘 뽑는 사람, 흙 터는 사람, 마늘단 묶는 사람, 비닐 걷는 사람, 트럭에 마늘 실어 건조장에 나르는 사람. 사람이 많으니 눈에 띄게 속도가 난다.


점심으로 강 건너 마을 식당에서 시원한 별미 콩국수를 먹고 나서 포도나무 그늘 아래에서 두 시간을 더 하니 일의 끝이 보인다. 오후에 비가 온다던 예보는 또 다시 틀렸다. 바쁘던 손놀림의 긴장이 풀린다. 마늘밭은 비어가고 건조장은 마늘로 가득차며 올해 마늘 캐기도 무사히 끝이 난다.


# 이야기 여덟, 단양 마늘 시세 폭등에 불편한 농민의 마음


올해 수확기 단양마늘 시세가 매우 높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한지형 마늘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경북 의성의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상인들이 밭떼기로 상당량의 단양마늘을 매점한 상태다.


단양의 많은 마늘 농가들은 5월에 상인들이 높은 값을 부르니 밭 채로 계약을 했다. 값도 값이지만 마늘을 캘 일손이 부족한 데다가 초반 값이 좋아도 정부가 긴급수입을 해버리면 금세 마늘값이 폭락하기에 일정 가격 이상이면 마늘을 밭떼기로 넘기는 걸 선호한다.


농산물 값이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좋지 않다. 일본의 경우처럼 정부 정책에 따라 농협에서 안정적인 수매를 하고 공판장에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 가격이 변동하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폭락과 폭등하는 농산물 가격의 피해자는 늘 농민이다.


폭락할 때는 큰 손해를 보고 폭등할 때도 이득을 보는 건 일부 농민이다. 올해 단양마늘 가격의 폭등은 작황 부진으로 의성 마늘농민들이 보는 손해의 반사이익이다. 전체 마늘농민의 입장에서는 폭등에 환호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시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산지 시세 폭락이라고 해서 그리 값싸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폭등 시세일 때는 금값이 된다. 농민이나 소비자나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갓 캔 유기농 단양 마늘 6월 가뭄에도 마늘 농사가 잘 되었다. 단양마늘 시세가 폭등한다지만 시세 폭등과 폭락은 농민에게는 독약이다.
▲ 갓 캔 유기농 단양 마늘 6월 가뭄에도 마늘 농사가 잘 되었다. 단양마늘 시세가 폭등한다지만 시세 폭등과 폭락은 농민에게는 독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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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 짓는 농민입니다.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의 유기농 농사이야기에도 중복게재합니다.



#단양마늘#유기농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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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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