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카누
 카누
ⓒ 고경연

관련사진보기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제주도에서 최초로 전국체육대회 카누 종목 경기가 열렸다. 처음으로 강이나 호수가 아닌, '바닷물을 가두는 방식'으로 경기장을 만든 후 카누 경기를 열어 화제가 되었다.

원 계획대로라면 제주도는 전국체전에서도 타 지역 카누 경기장을 빌리려 했었다. 그러나 제주도는 열악한 내수면(하천·호수와 늪 등의 수면) 경기장을 보수하고 바닷물을 모아 국제 규격에 맞게 수심을 채워, 자신들 바다에서 카누 경기장을 만들어냈다.

이는 이제 막 탄생해 카누라는 꿈을 꾸게 된 제주 성산고등학교 카누 선수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덕분에 선수들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지 않고 경기장에 도착했고, 다른 팀 배를 임대할 필요 없이 자신의 배로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성산고 선수들은 가장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들은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선수가 아닌, 책상에 앉아 평범하게 공부를 하던 일반 학생들이었다. 다른 팀의 화려한 선수경력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던 상황.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노를 저었고 포기하지 않았다. 성산고 선수들은 그날의 멋진 패배를 기억하고 담아두었다.

이번 기사는 오직 '노력'으로서 꿈에 다가가는 제주도 최초이자 유일한 고등학교 카누팀, 성산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을 이끄는 성산고등학교 고석기 코치와 고성재 선수를 지난 6월 20일 인터뷰했다.

카누
 카누
ⓒ 고경연

관련사진보기


- 안녕하세요, 코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제주성산고에서 카누부 코치를 맡고 있는 고석기라고 합니다. 제주 국제대학교 코치도 함께 맡고 있고요. 저도 예전에 카누 선수였고, 인천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제주도로 오게 되었네요."

- 제주도에 카누 팀이 있다는 사실조차 조금 생소한데요. 어떻게 팀이 생겨나게 된 건가요?
"맞아요. 제주도는 원래 카누 불모지였죠. 그런데 2년 전에 전국체전이 제주도에서 열리게 되면서, 카누 선수 육성은 물론 카누 종목 자체를 알리고 발전시키자는 취지에서 카누팀이 성산고에 창단되었어요. 지금은 9명의 부원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코치님은 어떻게 성산고의 코치를 맡게 되신 건가요?
"저는 원래 인천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었습니다. 11년 정도 했으니 꽤 오래 했죠. 원래 제 선배였던 분이 먼저 성산고 지도자로 있있고, 1년 전부터 제가 코치직을 이어 맡아 하고 있습니다. 카누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이 곳 코치를 맡기로 결정했고, 가족과 함께 내려오게 되었어요."

- 원래 제주도 분이 아니신데 코치를 맡게 되신 거군요. 그런 선택을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제가 인천에서 지도자로 있을 때 팀 성적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웃음) 전국대회에서 매년 성적을 냈고, 그래서 장비 같은 것들도 지원이 잘 되었었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제주도로 왔습니다. 카누가 발전하기를 누구보다 바랐으니까요."

고석기 코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주도로 향했다. 이미 이뤄놓은 자신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오직 카누를 위해 제로 상태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카누에 대한 사랑과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는 창단된지 이제 1년이 넘어가는 성산고등학교 선수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최우선으로 고민했다.

예상했던 대로 상황은 열악했다. 하지만 그는 코치로서 포기하지 않았고,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기적이 그들에게 돌아왔다. 전라도 완주에서 열린 카누전국대회에서 성산고가 K-4 200M 부문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것.

- 체전 때만 해도 가장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었는데, 1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냈죠. 예상치 못한 기쁜 소식이었겠어요.
"그렇죠. 3위를 해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성산고와 경쟁한 다른 카누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카누를 시작한 경우가 많은데, 성산고 아이들은 이제 막 창단되어 1년 정도  탄 상태였으니까요. 누가 봐도 노련함 면에서는 많이 떨어지는게 당연하잖아요.

카누는 배를 탄 경력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바람에도 예민하고, 잘 타는 게 아니라 '그냥' 배를 탈 수 있게 되는데만 1년이 걸려요. 배를 타서 스피드를 내려면 5년은 타야 하고요. 게다가 카누라는게 팔을 쓰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하체를 비롯한 전신운동이 필요한 종목이에요.

그런데 탄 지 1년 조금 넘은 저희 선수들이 3위를 했으니 기쁘고 자랑스러웠어요. 제주도체육회에서도 많이 축하해줬죠."

- 훈련은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나요?
"성산포 오조리 내수면이라는 곳에 카누경기장이 있어요. 서울 팀도 그렇고 다들 강이나 호수에서 훈련을 할텐데 저희는 바다에서 합니다. 만조(물이 해수면 가장 높은 곳까지 차오르는 현상)도 있고 물 때를 맞춰서 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정하기보다는 바다의 상태가 훈련을 할 수 있을 때만 훈련을 하게 됩니다.

매일 20km 정도 배를 타는데, 이게 일반 사람들은 끝까지 갈 수도 없을 정도의 거리예요. 선수들은 이제 익숙해져서 적당히 힘든 정도지만요. 바다 상태가 안 좋을 때는 거의 지상에서 체력훈련을 합니다. 달리기도 많이 하고, 아무리 큰 대회가 있어도 일요일은 무조건 쉬어요."

-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대회는?
"카누 대회는 꽤 많은데...저희가 예산이 부족해서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몇 개 없어요. 저희는 경기장에 갈 때 비행기를 타야 하고, 장비도 함께 이동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배를 못 가져가요. 그래서 다른 카누 팀 배를 빌려서 경기에 참가하죠. 올해 참가하기로 확정된 대회는 전국체전과 선수권대회 정도네요.

- 매번 다른 팀 배를 임대하는 건가요? 카누라는 종목 특성상 열악한 환경들이 많겠네요.
"제주도에서 경기가 열리지 않는 이상, 거의 다른 팀 배를 임대해서 경기에 나가요. 가장 큰 게 예산 문제죠. 저희도 메달을 따고 시합에 나가고 싶은데, 어떤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 그 기회조차 오지 않을 때가 많아서 안타까워요. 선수들도 다른 팀 선수들과 경쟁도 해보고 대회경험을 쌓아야 승부욕도 생기면서 발전을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본인들끼리만 훈련을 해야 하니까 어떻게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같은 존재가 된 거예요."

- 언제 올지도 모르는 기회를 위해 매일 연습하고 있는 거네요.
"맞아요. 제가 국제대학교 코치도 맡고 있는데, 대학 선수들도 많이 답답한 상황입니다. 배도 모자라서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타고, 예산 전액을 선수들이 자비로 부담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이 부담되어 선수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카누는 지원과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한 종목이에요."

- 무엇보다 힘든 건 선수들이겠네요.
"그렇죠. 그리고 고등학교 선수들이다보니 성인보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그런 부분을 좀 더 조언해줄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우리는 다른 팀보다 장비도 없고 가진 게 많지 않지만, 나도 카누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여기 왔으니 더 노력할거라고". 그렇게 말해줬어요. 선수들도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에 더 이를 악물고 했습니다."

- 코치님의 최종 목표는 어떤 것일까요?
"지금 제주도에서 고등부, 대학부 카누팀이 창단된 상태인데, 앞으로 중학교 팀은 물론이고 실업팀과 여자부도 창단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희 선수들도 더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운동했으면 좋겠어요."

코치님과의 인터뷰를 마친 후, 제주성산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카누 선수이자 작년 카누전국대회에서 성산고에 동메달을 안겨 준 네 명의 주인공(고세만, 고성재, 오성혁, 한진호) 중 한 명인 고성재 선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카누의 한 종류인 카약. 내수면 카누경기장에서 연습 중인 고성재 선수.
 카누의 한 종류인 카약. 내수면 카누경기장에서 연습 중인 고성재 선수.
ⓒ 고경연

관련사진보기


- 카누를 탄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그리고 어떻게 카누를 시작한 건가요?
"카누를 탄 지는 이제 2년 반 정도 되어가네요. 처음 시작은 그냥 단순했어요. 집 가는 길에 배 타는 곳이 있었고, 재밌어 보여서 카누를 하게 됐어요. 제가 조금 마른 편이었는데, 몸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웃음) 창단 초창기에는 저 말고 다른 선수들이 있었고, 제가 곧 합류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왔네요.

- 고성재 선수는 작년 전국대회에서 성산고에 동메달을 안겨 준 네 명의 선수 중 한 명인데요.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저희도 메달권에 들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때도 다른 팀 배를 임대해서 경기에 나갔고, 4명이 한 배를 타니까 저희 학교 선수들이 저희 팀 말고도 한 팀 더 있었는데, 그 친구들 배가 경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뒤집혀버린 거예요.

막상 타니까 균형을 잡기가 너무 어려웠고, 나도 저렇게 물에 빠지면 어떡하나 두려웠죠. 또, 훈련할 때 물의 느낌과 실전이 완전히 달랐어요. 제주도는 노 저을 때 물이 더 가벼웠거든요.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를 저었고, 동메달은 저희한테도 의외의 결과였어요."

다른 선수들에게는 매우 당연하고, 때로는 너무 당연해서 싫고 힘들게 느껴지는 훈련과 대회참가가 성산고 선수들에게는 너무나 간절했고 소중한 존재였다. 훈련이 싫다는 건 그들에게는 사치였다.

- 하루에 20km 정도 배를 탄다고 들었어요. 훈련이 힘들진 않나요?
"매일 타고 싶어도 타지 못하는 상황이라서요. 힘들어도 연습할 수 있으면 좋은 것 같아요. 저희가 바다에서 타다 보니 밀물 썰물 같은 걸 고려해야 되고, 오전 오후로 나눠서 배를 탈 수 있을 때만 타거든요. 배를 못 타면 웨이트를 많이 해요. 지금은 훈련이 다 익숙해졌는데, 저 같은 경우는 처음에 배에 올라타는 것만 한 달 동안 연습했어요. 그때 좀 고생했죠."

- 카누 선수가 되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시합에 나갈 때마다 예산 문제가 걸려요. 지난번 전국체전 때도 예산 때문에 멤버는 4명인데 2명만 경기에 출전을 했어요. 저도 출전하지 못한 두 명 중 한 명이었죠. 그래도 원망스럽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내가 더 열심히 했었다면 좋았을텐데...그런 생각만 들었죠.

그리고 저희는 항상 다른 팀 배를 임대해서 타거든요. 저희 배를 육지에 가져가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못 가져가요. 다른 사람 배를 타면 의자도 잘 안맞고, 발판도 다 흔들려요. 그럴수록 4명이서 다같이 긴장이 되죠. 그럼 밸런스도 흔들려요."

- 그런 배로도 3위를 해낸 거네요?
"대회가 하루에 다 끝나는게 아니고 여러 날에 걸쳐서 개최되는데, 저희가 첫날에 메달을 따고 다른 날은 못 땄어요.(웃음) 그래도 제가 선수인 게 실감이 났고, 경기 후에 가족들도 많이 좋아했어요. 다른 선수들 보면서 승부욕이란 것도 생겼죠.

다른 선수들은 바다가 아닌 강에서 카누 훈련을 하니까 물에 빠질 걱정이 없어서인지 자세도 더 정확해 보이고, 저희처럼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으니 체력적으로도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더 열심히 해야 돼요." 

- 카누선수로서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유연하고 균형감각이 좋아야 해요. 체력도 당연히 강해야 되고요. 그리고 팔다리가 길면 노 저을 때 좀 유리한 것 같아요. 저희 코치님도 저를 처음 보시자마자 "카누선수 하기 좋은 몸이다" 하셨죠.(웃음) 키가 크면 좋아요."

- '제주도'의 카누 선수로서 장단점이 있을까요?
"일단 제주도에 카누 선수들이 저희밖에 없으니까, 많이 응원해주세요. 메달을 딴 후에 돌아가보니까, 길에서 만난 분들도 축하해주실 정도로 같이 기뻐해주셨어요. 저희가 해온 것들에 대해서 지역에서 많이 알아주시니까요.

단점은 배를 많이 못 탄다는 거예요. 제주도가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배도 흔들리고 훈련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죠. 그리고 비가 많이 오면 교통편이 안 되니까 코치님이 저희 학교에 못 오세요. 그럴 때는 저희 선수 중 한 명이 코치님 역할을 하면서 저희끼리 훈련해요."

마지막으로 그의 꿈을 물었다.

"저는 진로도 우선 카누로 생각하고 있고요. 그래서 부모님이 제 미래에 대해서 걱정도 하시죠. 카누가 전망이 밝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과연 카누로 희망이 있을까 다들 의문이 생기는게 당연하죠. 그래서 전 더 열심히 할거예요.

대회 나갈 때마다 꼴등도 많이 했지만(웃음) 지난번처럼 또 3위권 안에 들고 싶고요, 혼자서 타는 카누로도 대회에 나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 팀 배를 가지고 경기에 나가고 싶네요. 이 악물고 할 거예요. 기회가 없는 만큼, 상황이 힘든만큼 카누는 저한테 더 소중하거든요."

어떤 상황에도 변명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 성산고 카누 선수들. 언젠가 자신들에게 올 그 '한번'의 기회를 위해, 오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배를 탄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누구의 도움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로.

'기회가 없기 때문에 더 소중했다'는 성산고 코치님과 선수들의 대답. 그들의 대답으로부터 우리는 삶의 목표를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태그:#카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직 주목받지 못한 모든 꿈들을 위해 글을 씁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