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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 테러 뉴스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이하 같음)에는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터진 테러로 45명이 희생되고, 7월 1일에는 방글라데시의 음식점에서 발생한 테러로 20명이 희생되고, 3일에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자동차를 이용해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최소 78명이 희생됐다. 테러가 인류 사회의 동반자가 됐다고 해도 될 정도로, 요즘엔 테러 뉴스가 끊이지 않고 들어오고 있다.

사실, 테러의 개념은 다의적이다. 민간인을 상대로 한 행위만을 테러로 볼 수도 있지만, 중요인물을 상대로 한 행위도 테러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후자와 같은 넓은 의미의 테러는 세계 역사에서 아주 오래 전에 출현했다.

서양 역사에서는 기원전 44년 발생한 카이사르(시저) 암살이 고대 테러의 유명 사례로 거론된다. 독재자가 되어 개혁을 추진하는 카이사르에게 제동을 걸 목적으로 브루투스 등이 원로원 회의장에서 칼로 거사를 벌인 일은 매우 유명하다.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진시황 암살 시도가 유명하다. 사마천의 <사기> '유후 세가' 편에서는 기원전 3세기에 동이족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창해역사란 인물이 진시황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야기가 나온다. 창해역사가 120근이나 되는 철퇴로 진시황이 탄 수레를 공격했으나 알고 보니 "부하의 수레를 잘못 공격한 것이었다"고 <사기>는 말한다.

20세기 중반부터 바뀐 테러 양상

빈첸초 카무치니의 <카이사르의 죽음>.
 빈첸초 카무치니의 <카이사르의 죽음>.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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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테러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지만, 20세기 중반부터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양상으로 테러가 발전하고 있다. 대규모화뿐만 아니라 글로벌화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테러 행위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지구 반대편의 민간인들에게까지 심리적 충격을 줄 목적으로 언론과 통신을 최대한 활용하는 테러가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또 테러를 통해 누구를 죽이는가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게 하는가가 테러 행위의 목표가 되는 예가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소수의 적을 직접 죽이기보다는, 다수의 민간인 대중을 공포에 떨게 함으로써 소수의 적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민간인들이 입는 피해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 세계에서 이런 테러문화를 낳은 주역은 아무래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PLO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단체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1960년대 이후로 테러가 유행처럼 번진 데는 PLO의 성공 사례가 적지 않은 자극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PLO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운동단체들의 행위는 그들의 관점에서는 분명히 거룩한 민족해방운동이다. 이 글에서 그들의 행위를 테러의 범주에 넣는 것은, 그런 행위를 부정적으로 인식해서가 아니라 그 행위가 갖는 객관적 성격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테러를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그 행위들에 대해 가치평가를 부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테러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성스러운 고토 회복운동을 추구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이스라엘에 빼앗긴 고토를 되찾을 목적으로 처음에는 국제연합(UN)과 강대국들한테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호소했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물론이고 유엔 역시 PLO한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후원자인 미국이 장악한 유엔이 그런 도움을 줄 리는 만무했다.

'유엔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절박감이 빚어낸 결과

이런 상태에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중동 국가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에서 쫓겨나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더욱 더 요원해지게 되었다.

처지는 더욱 더 악화되고 유엔도 믿을 수 없게 되자, PLO 등의 해방운동단체들은 차라리 테러를 통해 세계 여론을 환기하는 쪽으로 운동의 핵심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유엔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절박감이 그들을 테러행위로 내몬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69년 PLO 의장으로 취임한 인물이 야세르 아라파트다. 의장에 취임하면서 국제적인 게릴라 투쟁본부를 정비한 그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 희생의 전사들은 신의 도움을 받아 향후 20년 내에 팔레스타인을 되찾겠다"는 선언으로 결의를 과시했다. 테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나온 이 말은, 테러행위를 통해 20년 내에 나라를 되찾겠다는 말로도 들릴 수 있었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방문한 1971년의 아라파트(가운데 콧수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방문한 1971년의 아라파트(가운데 콧수염).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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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PLO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에 합의하는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한 때는 1993년이다. '20년 내에 되찾겠다'는 아라파트의 선언이 나온 지 24년 뒤였다. 완전독립이 아니라 자치권 획득에 그치고 말았지만, 이 정도면 아라파트가 민족에 대한 약속을 지킨 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급했던지, 1969년으로부터 19년이 되는 1988년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선포했다. 물론 실효성 없는 선포였다. '20년 내에'라는 약속이 아라파트를 조급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 테러활동에 나선 팔레스타인 운동단체들은 자살 테러, 항공기 납치, 요인 암살 등을 포함한 온갖 유형의 테러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전쟁터에서 수백 명을 죽이기보다는 전쟁터 아닌 곳에서 민간인 1명을 죽이는 게 공포 분위기 확산에 훨씬 더 유용하다는 판단 하에 이들은 수단·방법을 안 가리지 않았다.

이들이 벌인 테러 중에서 세계인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것은 1972년 독일(서독) 뮌헨 올림픽 때 벌어진 검은9월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PLO 계열의 단체인 검은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상대로 테러를 벌여 2명을 죽이고 9명을 인질로 잡았던 것이다. 올림픽에 집중된 세계인의 눈과 귀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각인시킬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서독 경찰과 검은9월단의 충돌 과정에서 인질 전원이 사망하고 9월단 요원들도 사살 혹은 생포되는 것으로 끝났다. 이것은 세계 각국 정부가 대테러 특수부대 창설에 나서는 계기가 되는 한편, 팔레스타인 해방운동단체들이 한층 더 격렬하게 테러에 나서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팔레스타인들의 테러가 전 세계를 경악시키며 강도를 더해 가자 결국 유엔은 손을 들고 말았다. 이때가 1974년이다. 이 해에 유엔은 PLO에게 참관국 지위를 인정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의 호소를 외면했던 유엔이 테러 공포 앞에서 백기를 든 것이다.

PLO는 유엔 참관국 지위만 얻었지, 회원국 지위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테러를 주된 수단으로 해방운동을 벌인 정치조직이 유엔 내에서 지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동일한 처지에 있는 약소민족 해방운동단체들한테 자극제가 될 만했다. 이 사례는 테러의 세계적 확산을 부추긴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소수 강대국 이익 대변하는 집단으로 전락한 유엔

테러를 통해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테러 피해의 제1차 책임자가 테러 단체라는 점은 부정될 수 없다.

이와 동시에, 테러가 확산되는 배경에 유엔의 무능과 모순도 한몫을 했다는 점 역시 지적될 필요가 있다. 유엔은 미국 등 소수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전락하여 약소민족들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만약 유엔이 약소민족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처럼 온 세계가 테러로 몸살을 앓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유엔이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유엔은 모순까지 범했다. PLO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나듯이, 약소민족의 목소리를 외면하다가도 테러 공포에 직면하게 되면 자세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유엔이다. 이런 모순된 태도는 약소민족 운동단체들이 테러의 효과에 기대를 걸도록 만드는 기능을 했다.

이처럼 유엔의 무능과 모순도 테러의 확산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따라서 인류가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는 것 못지않게, 유엔을 공정한 조직으로 만드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태그:#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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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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