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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7년 동안 빵을 만들어왔다는 그에게 물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특별한 관리법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재밌고 즐겁게 하려고 해요. 제가 원래 낙천적이기도 하고 잘 까먹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스트레스는 남들보다 덜 받아요. 손님들 얼굴도 잘 잊어버리고…. 몇 번 오셨던 손님들도 제겐 늘 새로운 손님들이죠, 하하하"

- 가게에 있는 빵 이름도 다 못 외우시는 거 아녜요?
"당연히, 다 못 외우죠."

좌중에 있던 모든 이가 함께 웃는다. 하하하하. 이 남자, 참 여러모로 빵스럽다(?).

고재영 빵집

 고재영빵집을 운영하는 고재영님
고재영빵집을 운영하는 고재영님 ⓒ 참여사회

그를 만나러 군포에 있는 그의 가게, '고재영 빵집'을 찾아갔다. 작고 아담한 가게 안은 빵들로 그득했다. 그러나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주인도 결코 전부 외우지 못한다는 비운의 빵 이름들에 더 눈이 갔다. '내주먹을받아유러스크' '밤모양이네만쥬' '아!매워매워~~하' '어이!여기다붓세' '이백사십겹햄&치즈'….

"저도 그렇고 손님들도 그렇고 그냥 앙금빵, 치즈스틱 이렇게 불러요. 굳이 '통팥이 든 앙금빵 하나 드릴까요?' 이렇게 얘기하진 않죠."

그렇게 유명무실해지기엔 너무 안타까운 이름들 앞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빵은 안 먹어도 궁금한 건 많은 나. 머리 위로 한 무더기의 물음표가 매달린다. '혜리가좋아하는시나몬스콘'? 혜리가 누굴까? '3.14파이스틱'? 3월 14일이면 화이트데이? 참, 이럴 때가 아닌데.

- 장사는 잘 되세요?
"다른 제과점에 비해 잘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종업원 두지 않고 저하고 저희 회장님(아내) 하고 둘이서 해나가니까 비용 면에서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죠. 매출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저희가 만들고 싶은 빵 만들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 손님들이 <고재영 빵집> 빵 먹다보면 다른 빵집은 못 간다고 하던데.
"다른 빵집보다 종류가 더 다양하기도 하고 또 재료도 넉넉하게 넣어서 그런가 봐요. 현미미강가루도 넣고 국산 햄프시드도 넣고, 여러 가지 잡곡, 해바라기씨…."

또다시 물음표 하나가 떠오르려던 찰나, 그가 먼저 햄프시드는 대마(삼베)씨앗이라고 덧붙인다. 음…, 그 빵만은 꼭 한 번 먹어 보고 싶다.

"저희 집 빵 가격이 저렴한 건 농사짓는 분들이 재료들을 공짜로 보내주시기 때문이에요. 대신 전 빵을 만들어 보내드리고, 일종의 물물교환이죠. 햄프시드, 미강가루, 홍시, 당근, 오디, 복분자, 사과 등등 전국에서 오죠. 대부분 SNS를 통해서 만나게 된 인연들이에요."

'고재영 빵집'은 고재영 혼자만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 이 작은 가게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 이들, '고재영 빵집'이라는 간판 뒤엔 전국의 수많은 농민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오로지 빵만 만들었어요. 지겹지 않냐고요? 아뇨, 재밌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거든요. 새로운 재료들이 나오면 그걸 가지고 색다른 빵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머릿속의 생각들을 실제로 손으로 만들어 보며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죠. 남들은 매일 사무실에 앉아서 글자만 들여다보는데, 전 매일 새로운 것들을 접할 수 있잖아요. 여전히 재밌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빵들. 그 빵들의 이름에서조차 웃음이 묻어나는 건, 그러니까 순전히 주인의 철학 때문이다.

험한 세상의 징검다리가 되어

 고재영빵집에는 노란리본이 비치되어 있다
고재영빵집에는 노란리본이 비치되어 있다 ⓒ 참여사회

- 3.14파이스틱에서 3.14가 뭐예요?
"원주율이요."

원주율의 3.14! 아~, 파이(π)라서? 크흐흐흐.

"제가 다 직접 지은 이름들이에요. 전 재밌는 게 좋아요. 손님들도 빵 이름 보면서 많이들 웃으세요. 웃으면서 사간 빵은 기본적으로 맛이 없을 수가 없죠."

좋은 재료와 웃음이 '고재영 빵집'만의 비밀 레시피였구나 하고 결론 내리려는 찰나, 그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빵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이에요. 유기농 재료를 써서 빵을 만든다고 해도 전국의 모든 빵집이 다 똑같은 빵을 만들어내진 않거든요. 빵맛은 그날 자신의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져요. 마음이 급하면 발효가 덜 돼도 급하게 빵을 만들기도 하고. 집에서 밥할 때도 마찬가지잖아요. 급하게 나가야 하면 끼니도 대충 차리게 되고 그런 거죠."

그의 철학대로라면 여유 있는 마음이 빵의 가장 좋은 재료다. 그러나 그의 빵 속엔 또 다른 비밀 재료가 들어간다.

"헌혈증을 가져오면 식빵하고 바꿔드려요. 그렇게 모은 헌혈증은 필요한 분들이 찾아오면 내드리지요. 예전에 제가 직장 다닐 때 동료의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서 헌혈증을 모았거든요. 알음알음 모으다 보니 10장 모으는 것도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가게 열면서부터 헌혈증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이런 일은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여유 있는 마음과 작지만 소중한 나눔의 정신으로 빚어지는 빵들. 그의 빵이 기본적으로 맛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무슨 신념을 가지고 나눔을 실천한다기보다 그저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저는 주로 징검다리 역할을 하죠. 이 사람과 저 사람 혹은 이 일과 저 일의 만남을 주선하는 중간자 역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할 수 없는 일들은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고. 거기까지만 해요. 더 깊숙이 들어가면 스트레스 받으니까요."

- 하루 종일 빵집에 있으시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젠가요?
"손님이 들어오실 때가 가장 행복하죠."

전 빵 굽는 냄새가 향긋이 올라올 때라고 하실 줄 알았어요. 또다시, 모두가 웃었다.

그의 명함에는 뭔가가 있다

 후원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소가 함께 있는 독특한 명함
후원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소가 함께 있는 독특한 명함 ⓒ 참여사회
27년 동안 빵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의 참여연대 회원 경력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1996년도 가입이니 무려 20년 지기 회원이다. 와우!

"20년 전 제가 잠시 백수일 때 은행에 갔었는데 참여연대 홍보책자하고 회원가입 신청서가 비치돼 있었어요. 평소 관심이 있어서 읽어봤는데 괜찮은 단체인 것 같아 그 자리에서 바로 가입했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은 많은데 직접 나설 수는 없으니까 직접 나서서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인 거죠."

생업이 있는 대부분의 회원들이 그렇듯 그 또한 지난 20년간 신입회원 환영회를 제외하곤 참여연대 행사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얼마 전 참여연대로 연락을 해왔다.

"참여연대에서 세월호 2주기를 맞아 '노란리본 나누어 주기 캠페인'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연락을 드렸죠. 100개 신청했는데 3~4일 만에 모두 나눠드렸어요. 평소에도 좋은 캠페인이 있으면 홍보물을 달라고 해서 손님들 빵 봉투에 하나씩 넣어드리고 그래요."

손톱 크기의 노란 리본 하나를 나누어 주는 일. 그러나 이 작은 일도 동네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 사람들에게 참여연대 회원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나이가 많거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참여연대가 완전 왼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동네어르신들이 저희 가게를 보고 '이 집은 민주당 찍는 집이니까 여기서 빵 사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먹고사는 문제와 결부되면 작은 일도 참 어렵죠."

다시 한 번 그의 명함을 꺼내봤다. 나란히 적힌 이름과 연락처, 이메일 주소 밑에 눈에 익은 글귀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당신의 참여가 세상을 바꿉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참여연대의 웹주소.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어렵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내기 위해, 참여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평범한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 글쎄요, 제 생각엔 서로에게 나쁜 짓 안 하고 이웃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해요. 지역 단위에서부터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가다보면 결국 사회 전체가 바뀌지 않을까요?"

-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는데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일은 뭔가요?
"그네누님(박근혜 대통령)도 그렇고 명박이(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렇고 홍만표 법조비리 사건에도 관심이 가고…. 근데 뭔 일이 터질 때마다 이건 또 무슨 일을 막으려고 터뜨렸나하고 의심이 가요.

지금 롯데 수사한다고 난리던데 이것도 다 홍만표 사건 덮으려고 그러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제일 관심이 가고 재미있는 일은 저희 지역의 상권을 살리는 일이죠. 지역상권이 함께 살아나야 저희 가게도 잘 되고, 또 거기서 나온 이익들이 세금이나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3년 전부터 '군포소상공인 소셜클럽'에서 지역의 소상공인들과 함께 마케팅 공부를 하고 있고요. 앞으로 여유가 된다면 이웃들과 함께 협동조합이나 지역화폐에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사람들을 묶어낼 수 있는 방법,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하는 협업의 문화들을 만들어 가는 일, 이게 저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다함께, 승자가 독식하는 게 아니라 이익과 혜택이 공동체 안에서 선순환하는 세상. 동글동글 도넛 모양의 꿈을 가진 그가 참여연대를 향해 꼭 하고픈 한마디는 바로 이거다.

"참여연대 간사님들, 제가 직접 찾아가지는 못 해도 멀리서나마 늘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희들을 대신해서 좋은 일 많이 해주시니, 꼭 복 받으실 겁니다!"

어디선가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온기와 함께 피어올랐다.

빵을 닮은 남자

 고재영 빵집의 독특한 이름은 빵들. 즐거운 마음, 행복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재영 빵집의 독특한 이름은 빵들. 즐거운 마음, 행복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참여사회

"나중에 나이가 들면 사회적 기업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어르신들 하고 같이 빵 만드는 회사를 차리면 어떨까 해요. 어차피 저도 곧 그 나이가 될 거고, 일종의 고령층 혹은 은퇴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거죠. 미리 계획하는 건 머리 아파서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 지금은 그냥 생각만 하고 있어요. 나중에 되는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해나가면 되는 거니까. 재밌게 사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하죠."

군포는 주부들이 가장 살기 좋게 지어진 도시라며 꼭 좀 소개를 부탁한다고 그가 말했다. 예전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의 도시계획전문가 김진애씨가 설계한 군포. 도심의 상업지구를 빙 둘러싸고 아파트를 배치해서 어디서든 걸어서 10분이면 도심에 닿을 수 있는 곳. 푸른 산들이 보듬어 안은 이 작은 도시에 27년째 아침마다 빵을 굽는 남자가 있다.

이제 곧 가을이 오면 시골에서 정성스럽게 농사지은 건강한 재료들이 올라올 것이다. 사과, 홍시, 곶감, 당근…. 이번에는 어떤 빵들이 만들어질까? 그 빵들의 이름은 또 얼마나 손님들을 웃음 짓게 할까?

- 참, '혜리가좋아하는시나몬스콘'의 혜리는 누군가요?
"예전에 저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학생의 이름이에요."

빵들도, 빵들의 이름들도, 주인을 꼭 닮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호모아줌마데스는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특기사항은... '합기도 빨간띠'.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7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고재영빵집 #고재영 #혜리 #사회적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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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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