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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입 밖으로 내뱉기 참 어려운 말입니다. 여성에게 생리는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아주 일상적인 경험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생리와 생리대는 '부끄러운' 것이기에 늘 감춰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생리에 대한 환상 혹은 오해가 너무나도 깊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생리를 말하자' 기획을 통해 익숙하지만 낯선 이 '생리'를 마음 놓고 말해보려 합니다. [편집자말]
 모 생리대의 흡수력 광고. 푸른빛 물감을 사용하여 흡수력을 표현했다.
모 생리대의 흡수력 광고. 푸른빛 물감을 사용하여 흡수력을 표현했다. ⓒ LG유니참

나는 생리를 하지 않는 남성이다. 이 말은 곧 생리에 대해서 배우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뜻이 된다. 사실 어릴 적 모두가 받는 성교육에서도 생리에 대해서 배운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최근 여성 지인을 통해 들은 바로는, 체육 시간에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러 나가 있는 동안 교실에서 몰래(?) 생리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생리를 하게 될 당사자가 아닌 남학생들에게 생리에 대한 교육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겼던 건지 아니면 떳떳하고 공공연하게 교육을 할 만한 주제가 아니었다고 본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동안에 교실에서는 비밀스러운 생리 교육이 있었다니 정말 놀랄 따름.

학교에서 생리에 대해 배우지 못한 나 같은 학생이 생리를 처음 접한 계기는 누가 뭐래도 생리대 광고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 사춘기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성교육을 꺼리는 부모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대중매체는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일단은 그나마 나은 자료가 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게 답은 아니다. 오히려 생리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위험성도 다분하다. 어릴 적 생리대 광고를 보았던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나 역시 생리혈이 파란 색인 줄 알았다. 붉은색 물감을 쓰면 진짜 피 같아 보여서 혐오감을 조장한다나 뭐라나.

게다가 많은 생리대 광고가 생리 중의 편안함을 강조하는가 하면 생리가 떳떳한 게 아닌 비밀스러운 것임을 강조한다. 이런 광고를 보게 될 남학생들이 생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하지 않을까. 생리대 광고는 비당사자인 남성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로 나이를 먹었다.

"너 생리하냐?".... 배우지 못한 남자들의 언어

결국 생리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우리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었다. 그 무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이 "너 생리하냐?"라는 말 아닐까. 물론 이 표현은 정말 너 생리를 하는 중이니? 라고 묻는 게 아니다. 매사 왜 그렇게 예민하게 행동하는 거냐,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표현, 정작 여성 당사자들은 불쾌해한다는 사실을 남자들은 알까? 여성이 느끼는 다양한 층위의 감정들이 있을 텐데, 이를 '예민함'이라는 하나의 감정으로 묶는 것과 동시에 생리라는 생물학적 특성을 적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게다가 이 언어는 대상이 확장되어 남성에게도 쓰인다. 생리에 대해 잘 모르기는 매한가지인 내 동성 친구들이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내가 '그런 표현은 올바른 게 아니니 안 썼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스러운 경험을 조롱거리로 삼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남성 집단이 인구의 절반이 평생에 걸쳐 겪는 일에 무지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지 않는가? 이게 이해가 안 된다니. 그런데 정말로 그렇다니까.

나조차 생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남성 역시 무지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여성학자 박이은실의 <월경의 정치학>(2015)을 읽고 나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이후에 나는 생리와 관련된 논의를 위해서는 이 책을 자주 인용하며, 사람들에게 추천하곤 한다. 물론 희망 독자는 남성이다. 당사자성이 없다면 당사자들의 경험이 녹아있는 텍스트를 읽어보는 수밖에. 적어도 그 정도의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여성들이 평생 겪는 일에 귀를 기울이자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한 공사장 벽에 '생리대가 비싸서 신발 깔창을 써야 하는 학생들' 등 생리대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문구와 붉은색 물감이 칠해진 생리대가 나붙어 있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한 공사장 벽에 '생리대가 비싸서 신발 깔창을 써야 하는 학생들' 등 생리대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문구와 붉은색 물감이 칠해진 생리대가 나붙어 있다. ⓒ 연합뉴스

이렇게 생리와 관련한 소모적이고 피곤한 말싸움을 하는 와중에, 최근 인상적인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3일 서울 인사동의 한 공사장 가림막에 붉은 물감이 칠해진 생리대 10여 장과 속옷 그리고 여러 가지 글귀가 붙었던 것. 생리대 가격 인하와 생리에 대한 인식 전환을 요구하며 벌인 퍼포먼스라고 한다.

사실 퍼포먼스에 사용된 생리혈은 실제로 피가 아니라 붉은색 물감이었지만 많은 남성들이 불쾌함을 호소했다. 아이러니다. 고작 물감인데도 '혐오'스러운 그 광경은, 여성들이 평생에 걸쳐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취지는 공감하는데 굳이 이렇게 해야하냐'고 말하는 남성 누리꾼들도 많았다. 사실 '취지는 공감한다'는 남성들의 말은 위선에 가깝다. 왜 여성들이 비싼 생리대를 쓰느라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는지, 생리라는 것의 존재는 왜 철저히 남성의 입장에서 숨겨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지, 그리고 왜 남성들은 생리에 대한 무지를 당당하게 표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시도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남성이 붉은 물감에 대해 혐오감을 표출하며 행사의 취지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생리에 대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남성들이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노력을 통해 어느정도 그 고달픈 경험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노력해도 생물학적 남성들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을 것이다.

남성들이 생리에 대해 모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상태에 머문다면 여성들과 대화를 할 수 없다. 모르면 물어보고, 관련 글을 찾아 읽어보는 노력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여성과 남성이 더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리#여성#생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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