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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여류화가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여류화가(인터뷰 인물과는 관계 없습니다) <출처=pixabay>
길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여류화가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여류화가(인터뷰 인물과는 관계 없습니다) <출처=pixabay> ⓒ 조창현

'조영남 그림 대작사건' 발생 50여 일이 지났지만, 국민의 관심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천경자, 이우환 화백 위작사건'까지 맞물리면서 우리나라 미술계가 큰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고(故) 김환기 화백의 대형 점화(點畵)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작품들이 모처럼 세계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시기에 터진 사건이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얼른 사건이 마무리돼 우리나라 미술시장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필자는 이번 사건을 쭉 지켜보면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미술계 현장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소식들이 전해졌지만, 정작 미술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물론 미술인협회 등에서 단체로 조영남을 고소하고, 평론가나 비평가 등 주변의 목소리도 적잖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현장 화가들의 생각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술에 일생을 걸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해가는 화가들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이에 현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화가 2명과 큐레이터 1명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질문의 핵심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와 '조영남이 구체적으로 미술계에 어떤 피해를 입혔나?' 등 크게 두 가지입니다.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실명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익명으로 정리했습니다. 이들의 말을 거르지 않고 가감 없이 전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1. 먼저 50대 여성화가 J씨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현직 대학 강사이자, 동시에 1년에 몇 차례씩 개인전을 열고 있는 화가입니다.

- 조영남의 작품을 예술로 보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벌이와 과시 등을 위해 남이 대신 그려준 그림을 보고,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조영남에게는 '그림은 곧 돈'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 같다. 이를 예술작품이라고 하다면 도덕적으로도 지탄받을 일이다."

-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 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작품을 순수하게 바라봐온 국민들의 마음에 불신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잘못이다. 크든 작든 미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본다. 손상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조영남이 아닌 남은 화가들의 몫인데, 생각이 잘못된 가수 한 명이 화가들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전체에 똥물을 끼얹은 꼴이다."

-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림에 대한 신뢰를 허물고 폄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조영남이처럼 저렇게 대작도 돈을 몇 천 만원씩 받고 파는 거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어느 누가 큰 돈을 주고 미술품을 구입하겠는가."

 화수(畵手). 그림을 그리는 가수라는 뜻으로 조영남은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곤 했다.
화수(畵手). 그림을 그리는 가수라는 뜻으로 조영남은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곤 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는가?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유독 유명해야 잘 팔리고, 수집가들도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연예인들도 성실하게 해서 크게 성취할 수 있겠지만, 대게는 유명세에 힘입어 실력이 안 되는데도 그림을 비싸게 파는 경우가 많다. 역량은 안 되는데 유명세 때문에 비싸게 잘 팔리니까, 결국엔 편법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앤디 워홀, 다미엔 허스트, 제프 쿤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도 타인에게 물리적인 작업을 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조영남과 뭐가 다른가?
"그들은 애초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작업한다고 밝히고 일을 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물론 대형 조각이나, 반복된 작업, 설치미술 등 많은 분야에서 타인의 물리적인 힘을 빌리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화가의 손맛이 들어가는 작은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그것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

- 만약 조영남이 대작이라고 밝히고 그림을 팔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럼 지금처럼 비싼 값에 많이 팔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작도 화가의 역량 내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조영남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작자의 역량을 끌어다가 마치 자기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대작임을 밝히는 것도 스스로 실력이 있고 당당해야지 할 수 있는 일이다."

- 동료 예술가들과 이번 사건에 대해 얘기해본 적은 있는가? 있다면 뭐라고들 하던가?
"만나서 구체적으로 얘기해본 적은 없다. 그냥 전화로 '조영남이 그랬다더라, 그렇게 해서 되겠냐'는 원론적인 얘기 정도였다. 농담처럼 '(비싸게 팔아서)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웃음~) 다들 수사 진행을 지켜보자면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 혹시 지금 조영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수로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환영이다. 하지만 그림을 수백~수천 만 원씩 받고 파는 순간 미술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계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림에 평생을 바쳐온 화가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됐다. 나이든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주제를 모르고 깝죽거리다가 큰 코를 다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노래로 유명해진 한 개인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우리나라 화가 사회 전체에게 엿을 먹인 것이다. 앞으론 노래나 열심히 불렀으면 좋겠다."

- 사건의 영향으로 미술계를 못 믿는 풍조가 생겼다고 보는가?
"생겼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림은 화가가 직접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이 미술의 순수함을 의심할 수 있다고 본다."

- (법이 판단할 일이지만) 예술가의 눈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사기죄로 보는가?
"윤리적으로 분명히 사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 왜 그렇게 생각하나?
"조영남은 그동안 스스로 작업하는 모습을 언론 등을 통해 공개해왔고, 단 한 번도 컬렉터나 관람객에게 대작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따라서 관람객이나 거액을 주고 그림을 구입한 사람들로 하여금 조영남이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게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곧 두 번째 화가의 인터뷰를 내보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바우콘텐츠공작소(www,bowmedia.co.kr)에도 실렸습니다.



#조영남#화가#대작사건#화투그림#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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