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전자파가 있어도 참외는 잘 되겠지. 근데 사람이 안 들어올낀데 농사는 누가 짓노?"
지난 13일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국방부에 들이닥친 경북 성주군 주민들이 분노하는 배경엔 불신과 불안이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 주한미군에 대한 불신, 내 고향 성주의 앞날에 대한 불안이었다.
먼저, '사드 레이더로부터 100m 밖은 안전하다'는 정부의 설명에 대한 의구심은 공통적이었다. 농사를 짓는 A씨는 "전자파 유해성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일본에 사드 기지 근처 사람들이 속이 메스껍고 잠이 잘 안온다고 하는데 그게 사드 때문인지 아닌지도 아직 안 밝혀진 게 아니냐,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우리가 마루타냐"고 말했다.
"아무리 안전하다 안전하다 해도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겠어요? 우리 같이 좀 있다가 죽을 사람들은 딴 데로 갈 수도 없고 그냥 살지 몰라도, 애 낳고 키워야 되는 젊은 사람들이 레이더 밑의 동네에 들어오겠어요?"마찬가지로 농사를 짓는 B씨는 이렇게 성토했다.
"젊은 사람들 많이 들어와서 살라고 아파트 하고 원룸하고 많이 지어놨습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지금 들어오고 있는 중이란 말입니다. 근데 정부가 이래 하면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기자님 같으면 성주 들어와서 살겠습니까. 거기는 언젠가는 그냥 빈터가 되는 거라고 나는 봅니다."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느그(너희)들은 참외 안 먹을꺼가!"라고 외치는 성주군 주민들의 외침은 레이더 전자파 때문에 참외 농사를 망친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사드 기지 주변이 '기피지역'이 돼 새로운 인구의 유입이 줄면 전국 출하량의 70%를 차지하는 성주 참외가 결국은 쇠락의 길로 가게 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이었다.
"이건 정부의 갑질이야"
주민 서너명이 대화하는 틈에 끼었다.
"미군이 어디 보통이가. 기지 들어올 때는 잘 한다고 잘 한다고 실실거리고 꾸뻑꾸뻑 인사하고 하겠지. 근데 좀만 있어보믄 즈그들 맘대로 하고싶은 거 다 하고 댕길 거 아이가?"
"사고 치고 미국으로 토끼면(도망가면) 땡(그만)!"성주는 대규모 미군부대가 있는 칠곡군 왜관읍에서 가까운 편이고 왕래도 많다. 이웃 칠곡에서 들려오는 미군 범죄 관련 소식을 자주 듣지만 이같은 사건이 신문이나 방송에도 나오지 않고 중한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도 못 들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드 레이더가 성산리에 배치되면 대규모는 아니지만 미군 기지가 새로 들어서는 셈이고, 미군을 신뢰하지 못하는 주민들로선 불신의 눈초리를 거둬들일 수가 없다는 얘기다.
"지금이 자유당 말기 때면 이런 식으로 하고 '정부를 믿어라'하는 게 가능해. 그냥 군사보호지역 지정해버리면 '안보를 위해서 그라는 갑다'하고 가만히 있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야. 일~체(일절) 설명이 없었어. 이건 정부의 갑질이야. 일언반구도 없이 딱 정해놓고 다 괜찮다고 하면 우리가 그냥 '어~ 어~'하고 가만히 있을 줄 알았나?"이렇게 말하는 C씨의 얘기와 비슷한 내용을 여러 주민들로부터 들었다. 주민 의사 수렴은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발표하곤 국가안보를 위해 이해해달라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인데, 지금의 사드배치 장소 선정이 꼭 그렇다는 것이다. 사드배치 결정은
C씨는 언성을 높였다.
"도시 사람들만 국가발전을 시켰나. 우리도 여름 땡볕에 비닐하우스 들어가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평생 살아온 거 아니가. 그렇게 한 거는 국가발전에 공이 없나? 우리는 나라에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그냥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그게 어렵나?" 밀양 송전탑 건설과정과 이에 반대한 주민들의 투쟁과정이 언급되기도 했다. 일방적인 결정을 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추진할 것이 뻔하다는, 과연 주민들의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느냐는 넋두리였다.
"'밀양에 송전탑 막는다고 할매들이 쇠사슬 두르고 뻗대도(버텨도) 그냥 막 밀어부친다 아이가. 그거 우리가 막을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