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9일 오후 7시 40분]앞서 부산 지역 학교전담경찰관(SPO)들이 담당 여고생과 성관계를 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경기 수원 지역 경찰관이 자신이 직접 조사했던 성매매 피해 여고생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드러났다.
고발장에 따르면 이 경찰은 당시 여성청소년과 소속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2012년 말께 경기 지역에 신설된 여성청소년과는 성폭력 등 반사회적 범죄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서다. 하지만 해당 경찰서는 19일 오전 "박 순경은 2014년 7월부터 형사과에서 근무했다"라고 알려왔다.
해당 경찰은 3월 말 긴급 체포·구속된 후 곧바로 파면됐다. 이후 4월 초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나, 성매매 혐의와 관련해서는 "서로 호감을 갖고 (성관계를) 한 것일 뿐 성매매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끝난 뒤 따로 연락, "돈 주면 나랑도 할래" 물었다는 경찰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수원 경찰서 박아무개 순경(당시 35세)은 2014년 피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처음 알게 된 피해자 A양(당시 만 16세)양에게 조사가 끝난 후 밥을 사준다며 따로 연락, 위력에 의한 성관계를 맺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A양은 만 19세 미만, 민법상 미성년자였다.
검찰 공소장과 피해자 진술에 따르면, 2010년 10월 경찰로 임용된 박 순경은 2014년 9월경 여고생 '조건만남' 사건으로 A양과 처음 만났다. 박 순경은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A양의 부모가 일찍 이혼했고, A양이 어렸을 때부터 15세까지 보육원(고아원)에서 자랐다는 사실, 이후 친아버지를 만나 함께 살고 있으나 엄격한 훈육 탓에 아버지를 무서워한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됐다.
또 A양이 최근 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이사·전학을 했고,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친구가 없었으며, 친구를 사귀려고 용돈을 구하려다 속칭 '조건만남'을 하게 된 사실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근래 자살 기도를 했던 사실 등도 알고 있었다.
피고인 박 순경은 조사가 끝난 후 1~2개월이 지난 뒤, 당시 피해자에게 "밥이라도 먹자"며 문자로 먼저 연락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피해자의 집 인근 주차장에서 본인의 BMW 승용차를 주차한 뒤 그 안에서 피해자와 만나 "너 아직도 조건만남 하냐"고 물은 뒤 "돈 주면 아저씨한테도 해줄 수 있냐, 돈 줄 테니까 하자"라며 성관계를 요구했다.
이에 A양은 "말이 안 된다, 장난치지 말라, 싫다"라며 거절했으나 박 순경이 "돈 줄 테니까 한 번만 하자"며 끈질기게 요구해 모텔에 가게 됐다. 최근 <오마이뉴스>와 만난 A양은 당시를 기억하며 "미성년자인 걸 뻔히 아는데 이럴까 싶어 (처음엔) 놀라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돈이 정말 필요했고, 계속 요구해 어쩔 수 없이 갔다"고 덧붙였다.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피해자 측은 성관계 후 박 순경이 지갑에서 5만 원권 지폐 두 장을 꺼내줬고, 사투리 억양을 쓰며 '아저씨가 주는 용돈'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반면 박 순경 측은 오히려 선도를 위해 A양과 만났으며,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 의하면 피의자는 또한 이후 A양이 가출 중이던 작년 9월경 수도권 인근 펜션에서 따로 만난 뒤, "너 혼자 해 볼 수 있냐, 제발 한 번만 해줘"라며 자위행위를 부탁했다. 술에 취했던 A양은 이에 따랐으나, 휴대폰 영상 촬영은 알지 못했으며 촬영 종료음을 듣고서야 이를 알게 됐다고 한다. A양은 "(촬영 사실을 알고) 놀랐다, 혹시나 그걸로 절 협박할까 싶어 지워달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박 순경 측 "선도 위해 만났다"... 대가성 여부가 관건
검찰은 박 순경의 죄명으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간음 및 성 매수 등),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을 적용했다.
박 순경은 당시 가출한 A양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이용해, 성행위 대가로 현금을 주고 음식을 사주었다고 검찰은 봤다.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된 성관계 횟수는 총 다섯 번이었고, 박 순경은 그 대가로 세 차례에 걸쳐 A양에게 여행경비, 현금 5~7만 원 등을 지급했다.
검찰은 "(박 순경이) 2014년 11월 중순쯤, 피해자를 조사한 경찰관으로서의 지위를 이용, 선도를 핑계로 피해자를 경찰서 밖으로 불러 밥을 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등 하다가 피해자를 위력으로 간음하기로" 했으며 이후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판단했다.
'위력'은 상대의 의사를 제압하는 유·무형적 힘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까지 포함되며, 이를 이용해 미성년자와 장애인 등을 간음·추행한 경우 강간죄와 같게 평가해 처벌한다. 특히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은 최근 논란이 된 부산 경찰관 김아무개(33)·정아무개(31) 경장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와 같다.
위계에 의한 간음 외에 검찰이 본 박 순경의 또 다른 죄명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이다. 박 순경이 2015년 9월경 가정불화로 가출 중이던 A양과 만나, 펜션 숙박비와 식사 등 경비를 모두 본인이 낸 뒤 1회 성교 후, 휴대폰 카메라로 피해자의 행동을 몰래 촬영한 데 따른 것이다.
반면 박 순경 측은 "(촬영에) 피해자가 동의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박 순경 측 해명을 듣고자 변호를 담당하는 법무법인 측에 연락했으나 "당사자나 의뢰인이 아니라서 통화할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현재 한국에서 성매매는 불법이며 적발 시 관련법에 따라 처벌된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성을 돈으로 사는 행위는 가중 처벌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 매수를 한 자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13조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5000만 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또 형법상 미성년자를 간음·추행하는 행위는 엄하게 처벌된다. 폭행이나 협박 없이, 피해자 합의 하에 성행위를 했더라도 무조건 처벌하는 것이다(형법 305조). 그러나 이 법이 정하는 미성년자(형법상 미성년자)는 '13세 미만'이어서, 13세~17세 등 미성년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이 법 나이를 상향조정하는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단속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법적 처벌 받아야"2년 전 일어난 이 일은 A양이 최근 청소년인권단체에 '조건만남' 알선자들을 신고하는 과정에 뒤늦게 알려졌다. A양은 청소년이 돼서야 만난 친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과 한때의 호기심으로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가 조건만남의 세계로 들어섰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측은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경찰이 오히려 부도덕한 행위를 하고 있다, 특성상 여성과 청소년들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해당 경찰이 계속 경찰관 자리를 지킨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며 강한 처벌을 요구했다.
A양을 대리해 이를 고발한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경찰 조사·재판 진행 과정에 깔린 남성 기득권적인 사고를 꼬집기도 했다. 조 대표는 "A양은 당시 미성년자였고, 아이와 성관계한 사람이 되레 이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었다, 그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문제인데 법원에서는 합의가 있었는지 아닌지에만 초점을 둔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일부 경찰들이 "여자애들은 화장하면 못 알아본다", "얼굴이 거의 성인"이라는 식의 '가해자 두둔성' 발언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조 대표는 이를 지적하며 "해당 경찰은 이미 직업 윤리를 심각하게 어겼다, 그럼에도 재판에서 피해자가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전 조사 과정에서 해당 경찰을 만났다는 여학생 아버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그 충격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A양 아버지는 이와 관련 "경찰이라고 해서 믿었는데, (사실을 알고 나서) 배신감을 느꼈다"며 "제가 아이에게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고 심경을 전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해당 경찰의 처벌을 원하고 있다.
A양은 현재 미용 전문 학원에 다니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만난 A양은 "사실 많이 후회가 된다, 처음에 (아빠에 대한) 반항심과 호기심을 좀 줄였더라면, 그래서 조건만남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여기까진 안 왔을 것 같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A양은 이어 "그때 경찰에 응해줬던 제가 바보 같다. 제가 현혹됐던 게 제일 큰 잘못이지만, 형사님이 전에 저를 도와줬던 사람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형사님은 어른인데, 어른이라면 청소년인 제가 가출한 걸 알았을 때 아버지에게 알렸어야 하는데 그러기보다는 성관계 맺는 데 집중했다"며 "형사님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화 말미 "아빠가 그 얘기를 듣고 쓰러지셨다는 것만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과거 심각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A양은 현재 점차 약을 줄여가고 있다고 했다. "국가 자격증을 따서 취업도 하고, 저와 남자친구, 제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게 A양의 소박한 바람이다.
"언제까지 제 환경 탓만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제는 제가 바꿔가면서 살고 싶어요. 더는 약에 의존하지 않고, 또 이런 (재판)과정이 힘들어도 울고 싸우면서 적극적으로 행복하게 살 거예요."
한국, 현행법상 '미성년자' 사각지대 존재... 해외는 '신뢰적 위치'일 경우 가중 처벌 |
의제강간 나이 기준을 높일 경우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하게 침해한다는 반론도 있다. 이에 따른 해법으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와 프랑스 등 외국에서는 의제강간 연령뿐 아니라 가해자의 나이, 가해자-피해자의 관계, 가해자의 지위 등을 두루 살펴서 처벌한다.
미국의 경우 '미성년자' 관련 기준은 주마다 다르지만 대개 만16~만18세 정도다. 전체 50개 주 중 30개주는 16세, 8개주는 17세, 12개주는 18세로 동의연령을 규제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령은 만18세이며 뉴욕 주는 만17세, 그외 영국의 경우 만16세이며 캐나다도 최근 만16세로 법정 나이를 상향 조정했다.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대다수 국가에서는 성관계 당시 가해자 측이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할 '신뢰적 위치(position of authority)'에 있을 경우 처벌이 더 엄중해진다. 가석방 없는 법정 징역형(mandatory prison)이나 최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지는 식이다.
※취재 및 자료 도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의원실(더민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