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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멀라이언공원.
 싱가포르 멀라이언공원.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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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싱가포르 영주권자다. 두리안과 머라이언의 나라 싱가포르에 거주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내일이면 모든 직장인들이 기다리는 월급날이다. 월급도 기다려지지만 이번 달에도 내 CPF(central provident Fund Board) 통장에 몇십만 원 돈이 저축될 걸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한국에서 중앙적립기금이라고도 불리는 이 CPF는 싱가포르식 국민연금 제도로 직장을 다니는 싱가포르 시민과 영주권자들이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CPF의 운영방식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면도 가지고 있다. 일단 자신의 월급 중 일부가 CPF 통장으로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동시에 고용주들도 월급의 일정 비율만큼 매달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 비율은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월급이 3000달러고 55세 미만이라면 자신의 월급에서 400달러, 고용주가 510달러를 기여해서 한달에 910달러가 CPF로 들어가는 식이다. 정부는 이 금액에 3.5~5% 정도의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정부 개입은 최소화하고 국민들 스스로에게 저축을 의무화하는 것이 이 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CPF에 있는 돈은 노후 대비 뿐 아니라 자신과 가족들 의료비와 교육비를 내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저축한 돈으로 언제든지 주택을 마련하는데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내 월급 일부가 강제로 빼앗긴 느낌이 들어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후 꾸준히 돈이 쌓여가는 CPF통장을 보며 오히려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약간의 강제성을 띠고 있지만 이 제도가 없었다면 혼자서 체계적으로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27살 친구는 CPF를 담보로 임대주택 청약을 받아 놓은 상태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라면 내집 마련은 꿈도 못꿨을 나이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문제점이 많다. 비록 정부 주도의 재분배라는 측면에서 빈부격차를 어느 정도 완화시켜준다는 효과가 있지만 무리한 운영으로 2053년이면 고갈될 예정이고 부족한 부분은 국민들 세금으로 메워져야 한다.

10년 만에 국민연금제도를 전 국민으로 확대 적용한 것은 칭찬할 만 하지만 이 제도가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급속한 노령화, 경제 성장률 감소, 잘못된 투자로 인한 손실 등은 국민연금을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싱가포르에 산다고 하면 한국 지인들이 빠지지 않고 하는 질문이 껌 씹으면 벌금 무냐는 것이다. 엄격한 법으로는 싱가포르가 잘 알려져 있지만 튼튼한 국민연금제도가 한국에서는 별 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복지 하면 유럽의 사례를 제일 먼저 언급하는 정치권과 언론의 문제도 있다. 문화도 역사도 우리와 너무 다른 유럽의 복지제도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시아 국가이며 우리와 같은 유교문화를 가진 싱가포르의 국민연금 제도는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싱가포르의 국민연금 제도가 한국에 더 현실적인 참고 사례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태그:#국민연금, #싱가포르,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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