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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여성들이 체중계 눈금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에 울고 웃는다
많은 여성들이 체중계 눈금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에 울고 웃는다 ⓒ pixabay

K씨는 이야기 중에 두 번 울었다. 사이다 뚜껑을 열 때 나는 소리 같은 시원시원한 그의 목소리가 다섯 살 때 생겼다는 분리불안을 설명하면서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감정이 복받쳤는지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홀쭉한 뺨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덤덤하게 말했다. 자신의 상처를 대물림 하고 싶지 않다는 희망을 내밷던 그는 딸아이가 말을 더듬는다는 대목에서 기어이 또 한 번 울음을 터트렸다.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무릎 관절보다 더 얇은 그의 허벅지를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거식증이 있었다. 회복 중이었지만 아직 그 늪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를 만나고 돌아온 날, 나는 서재에서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누런 책 한 권을 끄집어냈다. 활자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 다른 글자보다 네 배가 큰 '왜'라는 활자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귀한 보물을 찾아낸 듯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독서모임 때 마다 매고 다니는 커다란 에코가방에 그것을 넣어두었다. 빛바랜 책을 수년 만에 다시 찾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K씨에게 빌려주기 위해서였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캐럴라인 냅 또한 오랜 기간 거식증을 앓았다. 이런 이력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는 K씨처럼 거식증을 앓고 있지 않아도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거식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채워지지 않은 허기와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감을 초월하려는 몸부림으로 본다. 이러한 시각은 육아를 하는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은 저자의 부모가 흔히 말하는 문제 부모가 아니었다는 것.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는 매우 헌신적인 분이었다. 캐럴라인의 이야기는 부모가 자녀의 욕망을 제대로 읽고 대처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끼게 한다. 거식은 날씬한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중심적 문화와도 연관돼 있다.

흔히 살이 빠지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우와, 너 너무 말랐다!" 또는 "우아, 너 살 빠졌구나"라고 말하며 부러워한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타인의 이목을 통해 자부심을 느낀다. 말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생긴 허기를 채워줄 사랑과 인정을 식욕을 억제하면서 거래한 것이다. 그는 이 지점에서 여성의 몸을 훑는 남성중심적 시각을 비판한다.

하지만 캐럴라인에 따르면 거식은 타인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려는 병리적 현상만은 아니다. 물론 거식은 날씬한 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여성의 몸에 대한 복종이다. 하지만 너무 말라서 여성적 특성이 깎여 나가게 한다는 점에서 '이상적' 몸에 대한 조롱이자 복수라는 것이다.

거식은 요즘처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고 부추겨지는 욕망의 극대화 세계에서 그것이 거짓임을 자신의 몸으로 보여주는 반응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거식에 대한 여성 자신의 자전적인 분석을 넘어 사회·문화·심리적으로 분석한 이론서이다. 여성적 몸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 - 다이어트 강박증과 마른 몸매 증후군에 숨겨진 여성 심리노트

캐럴라인 냅 지음, 임옥희 옮김, 북하우스(2006)


#거식#다이어트 강박증#날씬한 몸#허기#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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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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