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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작가대회 날 펼침막(인천공항)
 남북작가대회 날 펼침막(인천공항)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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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끊어진 철길 위에도 쓴다. 조국은 하나다."
"평양 가는 기차표를 다오."
"밤낮으로 눈물 마를 날 없는 이 언덕길 따라 가면 백두산까지 가겠지."
"금강산을 바라보는 눈으로 우리 서로 바라보자."

2005년 7월 20일 오전 10시 인천공항 국내선 출국장에는 백두산 비룡폭포 대형사진을 배경으로 예삿날은 볼 수 없었던 펼침막이 걸렸다. 곧 이어 남녘 일백여 작가들과 국내외 보도진이 열띤 취재를 하는 가운데,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염무웅 이사장이 서울 출발 성명서를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낭독했다. 

염무웅 남측 의장이 남측대표단의 서울 출발에 앞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앞열 오른쪽부터 김형수, 신세훈, 백낙청, 신경림, 고은, 염무웅, 황석영, 송기숙, 도종환 등 존칭 생략)
 염무웅 남측 의장이 남측대표단의 서울 출발에 앞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앞열 오른쪽부터 김형수, 신세훈, 백낙청, 신경림, 고은, 염무웅, 황석영, 송기숙, 도종환 등 존칭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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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남녘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은 부푼 기대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북녘 땅을 떠나려 합니다. … 돌이켜 보면 우리 민족은 지난 백여 년 동안 고난의 세월을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제국주의 외세의 침략을 받아 남의 식민지가 되기도 하였고, 때로는 또 다른 외세의 강압으로 분단과 유랑의 고통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 우리 작가들은 붓으로 즉 언어의 형상력에 의지하여 민족의 생활과 감정을 표현하고 민중의 아픔을 노래하여왔습니다. 우리 작가들은 동포의 입이 되어 침략자의 야욕을 규탄하고, 동포의 가슴이 되어 승리의 미래를 예감할 신성한 임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날 우리 선배작가들은 외세의 억압과 지배를 받던 식민지적 조건에서도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민족 영혼을 지켰습니다. … ."

2006년 남북작가대회 11주년 기념모임 포스터
 2006년 남북작가대회 11주년 기념모임 포스터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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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남북작가대회 11주년 기념 모임

2005년 7월 20일부터 7월 25일까지 평양, 백두산, 그리고 묘향산에서 분단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60년 만에 남과 북, 그리고 해외거주 문학인들이 얼싸안고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작가대회를 뜨겁게 가졌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굳게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로부터 11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날의 약속들은 딱 부러지게 이루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조국분단 현실 극복에 문학인들이 가장 앞장서야 함에도 늘 나약하게 정치적 현실에 눌려 왔다.

2005년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작가대회마저도 마치 해외여행을 다녀온듯 1회성으로 흐지부지 지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몇 몇 문학인들이 이럴 수는 없다고, 장차 후손들에게 볼 낯이 없다고, 대회 11주년을 맞는 2016년 7월 23일 오후 6시 서울 인사동 한 밥집에서 밥과 술을 나누며, 그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고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이날 밥집 방안 벽에는 장혜명, 오영재, 리호근, 안정기, 신국봉, 김정수, 오홍심, 정화흠, 김지영 등 주로 북과 해외문인들의 작품들을 홍일선 농부시인이 옥수수부대종이에 일일이 손수 써서 걸어두고 기렸다.

초대의 말에서 "우리는 작가로서 (그동안 정치 현실에 짓눌려 잠잠히 지내온 것에 대한) 무거운 반성과 참담함을 가슴 깊이 인식하면서 아래의 제 문제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1. 6.15 공동선언의 재인식
2. 6.15 공동선언에 의거한 남북 정상화 촉구
3.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문학교류 촉구
4. 6.15 공동선언과 사드배치, 무엇이 문제인가
5. 남북 민족문학의 제 문제 

2005년 7월 23일 백두산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
 2005년 7월 23일 백두산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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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인사동 한 밥집에 모인 20여 경향 각지의 문인들은 진지한 기념모임을 가졌다. 정용국 시인의 사회로 홍일선 시인의 경과보고, 전 문협 신세훈 이사장의 "남북통일 공간으로 가는 문학을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있었다.

이어서 전주에서 올라온 신형식 시인의 6.15 공동선언 낭독, 광주에서 올라온 이명한 소설가의 "하나가 되는 길을 찾아야한다"는 격려사, 염무웅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작가대회 남측 의장의 대회 회고와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 경북작가회의 김용락 대표의 사드배치 현장인 성주지방의 민심과 그 고장 작가들의 사드배치 반대 투쟁 방안 등을 들었다. 이날 참석한 문인들은 대체로 사드배치는 반 통일, 반 역사, 반 민족적 행위로 국제무기상의 농간에 놀아나는 한심한 작태라는데 공분했다.

이어 김창규 목사의 "평화" "통일" 건배사를 나눈 뒤 이날 참석한 회원들은 돌아가면서 의견을 개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북작가대회 11주년 기념모임(염무웅 전 의장이 11년 전을 회고하고 있다).
 남북작가대회 11주년 기념모임(염무웅 전 의장이 11년 전을 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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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의 죄목이오

이날 쏟아진 의견들을 종합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작가대회를 기념하고, 이의 실천을 촉구하는 모임은 정기적으로 지속 활성화해야 한다. 북측과 해외 문인의 참석이 어렵다면 모임이 가능한 남쪽 회원끼리라도 모임이 정기적으로 지속돼야 한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남북작가대회가 정상화되어 조국 평화통일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감성을 배제하고 조직화, 체계화하자.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이에 공감 동조하는 회원들의 작품을 책으로 묶어 펴내자는 등 여러 의견이 개진되었다. 이날 행사를 앞두고 홍일선 시인이 쓴 시다.

내 죄목이오

작년 이맘 때
아주 가물었지요
논밭 벼 포기들 쓰라렸지요
님 기리듯 비 기다렸지요
남북작가대회 10주년 그때
그때

이명박 때문이 아니요
박근혜 때문만이 아니요
차마 침을 뱉지 못한 시 때문만도 아니요
분단에 적당히 기대어 사는 것
그것에 길들어진 내 시 때문이요
오늘 내 문학이
내 시가 바로 그것이요
우리의 무심이 또한 그것이요
참혹히 지워진 님비나리 소원이
바로 그것이오

가문 날
천둥번개 그리워했던 것
그것이 대죄요
나의 죄목이요
잘은 모르오만 당신의 죄목이요
우리 문학의 죄목이오

홍 시인의 비장한 시를 음미하면서 늦은 밤, 발길을 돌리는 나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분단에 적당히 기대어 사는 것, 그것에 길들어진"이라는 그의 시어는 어쩌면 우리 모두를 향한 울부짖음이리라.

어떤 무리들은 분단을 이용해 정권을 잡은 뒤 위기 때마다 이를 써먹으며 정권을 연장하고,
어떤 무리들은 분단을 이용해 무기를 팔아 배를 두드리고,
어떤 무리들은 분단을 이용해 밥을 빌어먹고,
어떤 무리들은 분단을 이용해 입신출세를 기도하는 오늘의 기막힌 현실이다.

그리고 대부분 백성들은 감나무 아래서 홍시가 저절로 내 입 안으로 떨어지듯이 무작정 조국통일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통일의 열매를 따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우리의 입에 통일의 열매를 따주지 않는 데도 어리석게도, 바보처럼 외세를 하나님처럼 믿으면서 감나무 아래서 입을 벌리고 있다.

이날 참석한 이들은 다음과 같다(무순).

신형식 이명한 이향지 김해화 임우기 임명진 박희호 유명선
신세훈 이문희 김용락 금좌현 이승철 염무웅 김창규 박몽구
윤일균 임헌영 홍일선 정용국 박도

남북작가대회 기념 인쇄물(정용국 시인 소장)
 남북작가대회 기념 인쇄물(정용국 시인 소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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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민족작가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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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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