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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 있지 않을까?"
"... 작은 물고기들은 몇 번의 연습 끝에, 한 마리의 커다란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 있었어요. 이 모습을 본 큰 물고기들은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고 말았답니다."  - 레오 리오니 동화 'Swimmy' 가운데

한낮의 뜨겁디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밤. 후끈 달아오른 사람들의 모습은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배 나온 50대 중년의 남성도, 아직 앳된 모습의 여대생도 서로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빙글빙글 맴을 돌며 '사육'당하기를 거부했다.

손에 쥐고 있던 풍선이 일제히 하늘로 날려 올라가면서 한 여름밤의 옥탑방과 반지하를 벗어난 이 시대의 '개'와 '돼지'들의 억눌렸던 마음도 밤하늘로 두둥실 올라갔다. 지난 5일 밤 서울의 한복판인 보신각 앞에서 펼쳐진 '갑질 농장'을 뛰쳐나온 '개돼지'들의 카니발 뒤풀이 모습이었다.

민중은 개돼지? "사육당하지 않겠다"며 뛰쳐나온 사람들

참가자들이 풍선날리기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참가자들이 풍선날리기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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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들의 힘의 원천인 웃음과 노래와 춤을 통해 99%를 '사육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권력에 대항하는 유쾌한 한마당 잔치가 펼쳐졌다. 동국대 총학생회와 인문예술공유지 '문래당(文來堂)'이 주최하고, 인권연대와 참여불교재가연대가 후원하는 '개돼지들의 카니발'이 5일 저녁 7시 보신각 광장에서 열린 것.

한 어린이 참가자가 대형 패널에 자신의 마음을 낙서하고 있다
 한 어린이 참가자가 대형 패널에 자신의 마음을 낙서하고 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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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를 향한 99%의 힘'을 모토로 하고 있는 이날 행사는 최근 교육부 고위 관료의 망언 파문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1%를 위한 '갑질농장'에서 살아가는 99% 현대인을 응원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이날 행사에서는 아카펠라, 플라멩코, 아프리카 음악 등, 홍대 앞에서 주로 활동하는 문래당(文來堂) 뮤지션들의 다양한 무대가 펼쳐졌다.

올 초부터 돌풍을 일으킨 '손바닥 헌법책'도 현장에서 보급됐다. 헌법만 지킨다면 '99%를 위한 나라'는 이뤄질 것이라는 취지에 공감해서다.

음악 공연 외에도 '갑질하는 1%에 대한 99%의 자유 발언', 개돼지 탈을 활용한 퍼포먼스 등도 준비되었다. 참가자들은 대형 패널 10여 개에 갑질에 대항하는 개돼지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낙서했다.

'타악기 퍼포먼스'에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광장 바닥을 두들겼다. 손에 쥐고 있던 물병은 기본이요 심지어 쥘부채가 망가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장바닥을 두들기며 사육당하기를 거부했다.

'개돼지들의 카니발 선언문' 채택하기도

문래당(文來堂) 뮤지션들의 다양한 무대가 펼쳐졌다.
 문래당(文來堂) 뮤지션들의 다양한 무대가 펼쳐졌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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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카니발에서는 '개돼지들의 카니발 선언문' 초안이 발표된 후 참가자들의 동의를 거쳐 최종안이 확정됐다.

참가자들은 '우리 99%는 사육당하며 견뎌내는 삶을 거부한다'는 제목의 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사육당하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웃고 떠들면서 '사육제'를 즐기겠다 ▲우리는 자신도 타인도 혐오하지 않겠다 ▲우리는 국가와 자본에 사육당하지도 않겠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차라리 '개'와 '돼지'가 되어, 춤과 노래로 '오늘 여기'에 '우리들의 낙원'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참가자들은 이같이 선언한 이유에 대해 "우리는 물론 개돼지가 아니다"라면서, "옥탑방과 원룸을 전전하고 '김혜자 도시락'과 '백종원 도시락'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결코 당신들이 던져주는 사료로 사육당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우리들의 정직한 헐값 노동에 기대어 당신들 1%가 '과잉풍요'의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계속해서 "'밀란 쿤데라'는 개는 결코 낙원에서 추방된 적이 없다"면서 "개는 자신도 타인도 혐오하지 않기에 인간은 그의 곁에 있으면 편안해진다 했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돼지에게 국가가 없다'며 파시스트로 사느니 차라리 돼지로 살겠다고 했다"면서, "우리는 차라리 이러한 개와 돼지가 되겠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에서 벗어나 얼굴만 보아도 서로 흥겹고 편안해지는 벗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 참가자가 착용하고 있는 말 마스크가 이날 행사의 성격을 함축하는 듯 했다.
 한 참가자가 착용하고 있는 말 마스크가 이날 행사의 성격을 함축하는 듯 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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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우리는 개돼지 발언에 분노하지만 단지 분노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함께 노래하고 춤출 것이다. 굴종하는 낙타와 분노하는 사자를 넘어 삶의 순간순간을 웃고 만끽하는 초인이 되라던 철학자처럼 우리는 우리의 카니발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그 즐김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변화의 힘이 될 것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사육 당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고 돈만 벌기 위해 헬조선에서 견뎌내기 위해 오늘을 살고 있는게 아니다"라면서 "웃음과 노래와 춤은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다. 우리를 사육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권력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강조했다.

대형패널에 쓰여진 다양한 낙서들
 대형패널에 쓰여진 다양한 낙서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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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카니발(Carnival)은 '사육제(謝肉祭)'이다. 99%의 민중이 술과 춤과 음악이 가득한 광장으로 다함께 모여 웃고 떠들자. 무더운 여름밤의 옥탑방과 반지하를 벗어나 광장으로 나오자. 짱돌을 드는 대신에 노래하고 춤추며 왁자지껄한 카니발을 즐기자"고 선언했다.

행사 관계자는 "시위도 스스로 즐거움을 느껴야 오래 지속할 수 있고 연대해야 힘이 생긴다"면서, "개돼지 카니발은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지속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카니발의 마무리 행사로 펼쳐진 '기차놀이'
 카니발의 마무리 행사로 펼쳐진 '기차놀이'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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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행사엔 200여 명이 참여했다. 카니발은 오후 7시경 시작된 후 두 시간여 동안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풍선 띄우기와 기차놀이가 그 대미를 장식했다. 1%에 의해 사육당하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99%의 유쾌한 한 여름밤의 도심 속 카니발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국대, #문래당, #개 , #돼지, #사육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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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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