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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명숙공종가에서는 질꾼들이 모내기를 할 때 차려내던 못밥이 있었습니다.
강릉 명숙공종가에서는 질꾼들이 모내기를 할 때 차려내던 못밥이 있었습니다. ⓒ 임윤수

우리나라에서 명문가(名文家)하면 종가(宗家)가 빠지지 않습니다. 종가하면 왠지 전통이 있어 보이고 말로는 특정할 수 없는 뭔가도 있어 보입니다. '대종손'이나 '종부'라는 호칭이 붙으면 그 사람 삶 자체가 묵직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전통적 종가는 희소성이 느껴질 만큼 드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모든 세대가 다 종가가 될 판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종가하면 최소 몇 대 내지 십 수 대가 장손(長孫)으로 이어지는 대종가(大宗家)를 연상하지만 종가라는 말이 반드시 대종가만을 이르는 말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이종(禰宗),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조종(祖宗), 증조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증조종(曾祖宗), 고조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고조종(高祖宗)까지를 소종(小宗)이라하고, 그 윗대 할아버지를 기준으로 할 때를 대종(大宗)이라고 합니다. 

지금껏 우리가 관념적으로 말하는 '종가'는 자식을 여럿 두던 시대, 장남만을 통해 종법이 이어지던 시대의 대종가를 염두에 둔 말일 겁니다. 대(代) 당 4형제를 둔 가문을 기준으로 해 대충 어림해 보면, 한 가문의 5대종손(대종손)은 10촌 형제 1024명 당 1 명꼴이니 참 귀한 존재가 분명합니다. 같은 조건(대 당 4형제)에서 10대 대종손이라고 하면 100만 분에 1이 넘는 희소성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계획이라는 미명으로 밀어붙인 졸속정책, 아들딸 구별 않고 한 아이만 낳는 현실, 출산율 저하로 인구 감소가 현실화 되고 있는 작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앞으로 3, 4대(1세대를 30년으로 기준할 때 100년 정도)쯤의 세월이 흐르면 모든 세대는 대종가가 되고 모든 남자는 다 대종손이 될 것입니다.

아들을 많이 낳던 과거에는 대를 더해가며 자손이 여럿으로 불어나도 오직 1명만이 장남·장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딸 구별 않고 1명만 낳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5대 내내 독자로 이어질 것이니 5대가 되면 저절로 대종가 대장손이 되기 때문입니다.

명문가에 혈통처럼 이어지는 요리와 술,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지은이 김봉규 / 펴낸곳 담앤북스 / 2016년 7월 27일 / 17,000원)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지은이 김봉규 / 펴낸곳 담앤북스 / 2016년 7월 27일 / 17,000원) ⓒ 담앤북스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지은이 김봉규, 펴낸곳 담앤북스)는 점차 희소해져 그 의미가 더해지는 명문가, 대종가와 내로라하는 가문을 통해 혈통처럼 이어지며 전승되고 있는 이런 요리와 저런 술로 차린 만첩반상 같은 내용입니다.

의·식·주, 사람이 사는데 있어 꼭 필요한 세 가지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셋 중 없어서 안 되는 하나를 꼭 꼽아야 한다면 당연 식, 먹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옷? 춥고 부끄러울지는 몰라도 벌거벗고 살아도 당장 죽지는 않습니다. 집? 많이 불편할지는 몰라도 집이 없어도 당장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먹을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만 굶으면 당장 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다른 것들에 비해 먹을 것에 대한 부정과 부조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먹는 것 같고 장난치는 놈들은 가만 둬서는 안 된다'고들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가 사람들 중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옛날 하인 다루듯 마구 대했다는 소식이 몇 건 있었습니다. 먹는 것 같고 장난치는 인간도 내버려 둬서는 안 되지만, 먹고 살기위해 일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인간 역시 가만둬서는 안 되는 이유는 먹는 게 곧 사는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배부르게 하는 강릉 명숙공종가에 차려지던 질상

이런 세태 탓인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런 음식과 저런 술중에서 가장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는 음식은 '강릉 명숙공종가'에서 차려지던 '질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질꾼들을 위해 차려 내는 질상은 종가에서 차려 내는 음식상 중 가장 풍성하고 화려했다. 판례가 있을 때는 판례떡까지 더해져 더욱 풍성해진다. 고된 농사일을 일단락한 뒤 기력을 보충하고 여름을 건강하게 나도록 보양식으로 차린다. - 196쪽

질꾼이란 집집마다 추출돼 품앗이를 함께 하는 일꾼들을 일컫는 말이고, '판례'는 나이어린 일꾼이 자라서 어엿한 어른 일꾼으로 인정받는 의식입니다. 판례는 일꾼 성인식인 셈이고, 이때 하는 떡이 판례떡이라고 합니다.

명문가로 전해지는 종가나 가문 중에도 나와 내 식구만 잘 먹고 잘 입으면 그만인 사람이 장손으로 대를 이어가던 때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집안에서 전해지는 음식은 제아무리 오래 이어지는 좋은 음식이라 해도 어디까지만 자신들만을 위한 천박한 먹을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남은 볍씨를 빻은 쌀가루에 쑥과 호박, 밤, 대추, 곶감 등을 넣어 만드는 씨종지떡, 봄에 부화해 자란 영계에 인삼, 대추, 감자, 호박, 수제비 등을 넣어 만드는 영계길경탕, 영계삼계채와 포식해, 질꾼들이 모내기를 할 때 차려내던 못밥이 얼마나 맛나고, 영양학적으로 얼마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강릉 명숙공종가’에서는 질꾼들을 위해 차려 내는 질상이 종가에서 차려 내는 음식상 중 가장 풍성하고 화려했다고 합니다.
‘강릉 명숙공종가’에서는 질꾼들을 위해 차려 내는 질상이 종가에서 차려 내는 음식상 중 가장 풍성하고 화려했다고 합니다. ⓒ 임윤수

하지만 내 집 일꾼 귀히 대접하기 위해, 종가에서 차려내는 음식상 중 가장 풍성하고 화려하게 차려내던 '질상'에 담긴 종가의 마음이야말로 맛과 영양이라는 말로 가늠할 수 없는 가장 음식다운 음식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감향주는 매우 특별한 술이다.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하는 술인데, 맛이 향기로우면서 매우 좋다. 알코올 도수는 12도 정도라고 한다. 석계종가의 이 감향주는 2015년 4월 12일 제7회 세계물포럼 개회식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각국 정상 및 주요 인사 환영 오찬에서 <음식다미방> 요리와 함께 등장했다. - 145쪽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마흔셋 종가와 가문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요리와 술 이야기 중에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요리도 있고,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다시게 하며 취기를 더해가는 술들도 한둘 아닙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뭐 떨어진다며 난리가 나던 시대, 안동 계암종가에서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대를 이어 쓴 요리책 <수운잡방>이 또 하나의 족보로 전해지고, 영양 석계종가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감향주는 2015년에 개최되었던 세계물포럼 개회식에서 공식 건배주로 사용됐으니 좋은 요래와 훌륭한 술은 세태와 시대를 초월하며 그 전통이 더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 몸을 배부르게 하는 보양식이 지친 몸에 원기를 더해 준다면, 대대손손 세월을 더해가며 전해지고 있는 이런 요리와 저런 술이 만첩반상으로 차려진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를 일독하는 건, 지친 마음을 배부르게 하고, 살맛 떨어진 세상을 입맛 돋게 하는 세상으로 원기회복 시켜 줄 심신보양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지은이 김봉규 / 펴낸곳 담앤북스 / 2016년 7월 27일 / 17,000원)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 500년 전통 명문가의 집밥.집술 이야기

김봉규 지음, 담앤북스(2016)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김봉규#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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