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번 2016 리우 올림픽 펜싱 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는 "중학교 2학년 때 펜싱을 시작했다. 사실 그 전에 나는 칭찬을 거의 듣지 못하는 아이였다"며 "펜싱을 시작하고 나서 많은 칭찬을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칭찬받지 못하던 학생이 칭찬을 받자, 전 세계 1등을 한 것이다.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개인 에페 결승 경기에서 한국 박상영이 헝가리의 제자 임레를 이긴 뒤 기뻐하고 있다.
9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개인 에페 결승 경기에서 한국 박상영이 헝가리의 제자 임레를 이긴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해리포터 '덕후'를 만들어낸 칭찬

"정말 좋은 글이네요!"

중학교 1, 2학년의 나는, 이 말에 헤벌쭉하고 넘어갔었다. 해리포터의 광팬이었던 나는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했고, 당시에는 전편이 공개된 때가 아니었기에 온갖 추측 글과 토론 글이 난무하던 때였다. 책을 보는 것만으론 부족했던 나는 인터넷 카페에서 토론을 벌이고 글을 쓰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어떤 글을 쓰기 위해서 책 몇 권을 다시 폈다가 덮고, 그렇게 꽂혀서 다시 읽고 하다 보니 수십 번을 읽었다. 그렇게 해서 쓴 해리포터 분석에 사람들이 동의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좋았다. 1년이 지나서는 해당 게시판의 게시판 지기, 다시 1년이 지나 카페 운영진이 됐다. 회원 수 10만 명이 넘는 카페에서 고등학생이 온/오프라인 이벤트를 주관하는 운영진이 된 데에는 그 글을 칭찬해주는 사람들의 힘이 컸다.

칭찬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대상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최근 EBS의 다큐멘터리 <칭찬의 역효과>에서 잘못된 방식의 칭찬이 가져오는 역효과에 다룬 바 있지만, 제대로 된 칭찬이 자발성을 기르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글을 써서 칭찬을 받은 중학생이, 더 잘하기 위해 신나서 책을 내리 6시간을 읽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사람들은 성취 대신 칭찬을 받기 위해 살아간다
사람들은 성취 대신 칭찬을 받기 위해 살아간다 ⓒ picture quotes

칭찬으로 바꾸어 낸 행정병들

칭찬의 힘은 내 군 생활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연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한 나는 예하 21개 부대의 행정병과 매일같이 밀접한 소통을 해야 했다. 상위부대였기에 자료를 요구하면 예하부대에서 요청받은 자료를 올려야 했는데, 그 자료 중에는 내용상으로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알아서 부족한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다시 해야 하는 수준도 여럿 있었다.

그간 우리 과에서 '부족한 자료'를 보내는 것에 대응해왔던 방식은, '협박'내지 '윽박'이었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이라며 엄포를 놓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다루어야 한다"고들 했다.

남에게 나쁜 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모니터 앞에 예하부대 행정병들의 이름과  입대연월을 모두 적었다. 전화를 할 때면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요청했고, 보내온 자료가 잘못되었을 때는 이런 부분은 좋았지만 이런 부분이 빠져있으니 잘 부탁한다고, 잘할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가끔 창고나 부대에서 만나게 되는 날에는 일을 마치고 꼭 "그래도 00씨는 감각이 있으시네요. 너무 감사해요"라는 말을 남겼다.

바쁜 업무 와중에 별일이 아닌 것으로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오는 행정병에게도 "이렇게까지 알려고 하는 행정병이 없었는데, 대단하다"며 바쁜 와중에 올라오는 짜증을 꾹꾹 누르고 말했다. 칭찬에 대해 일가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나쁜 말을 하는 법을 몰라서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겉 표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겉 표지 ⓒ 21세기북스

몇 달이 지나자, 그들이 올려주는 자료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물건을 가져올 때도 요청했던 것을 째깍째깍 모두 해왔고,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나를 배려해서 필요한 것을 더 준비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전역을 앞두고 "잘 가르쳐주고 격려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전할 때면,"나도 일 많이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답할 수 있었다. 의도치 않게 했던 칭찬들은, 상위 부대에 비협조적이고, 일을 하나도 못한다고 욕을 먹던 행정병들을 "자발적으로 일 잘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칭찬이 부재한 사회는 불행하다

우리 교육은 어떤가. 반 1등이 아니라면 칭찬을 해주지 않고, 1등이 되면, 전교 1등을 요구하며, 또 전국 1등이 될 때까지 "더 노력하자"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칭찬받는 아이가 없는 사회에서 그 누가 어떤 동력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상대적으로 높은 성적임에도 1등만을 강요받던 한 학생은 1등 성적표와 "이제 됐어?"라는 말을 남기고 투신했던 사건이 기억난다. 칭찬이 부재한 사회는, 불행하다.

박상영 선수는 칭찬의 가뭄 속에서 칭찬받는 법을 찾았고, 그 길에서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칭찬받지 못하는 학생'을 칭찬하는 법을 찾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 칭찬을 하기 위해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능 성적표나 토익 점수와 같은 것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품고 먼저 다가가 칭찬을 건네는 것이 인재를 만드는 법이다.

해리포터 글을 쓰는 중학생이 해리포터 공식 카페의 운영자가 되고, 시사회에 초청을 받고, TV출연 요청을 받았던 것처럼. 칭찬을 받아본 적 없는 학생이 칭찬을 받아 몰두하게 된 펜싱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처럼, 칭찬은 사람을 무언가로 이끄는 힘이 있다.  


#칭찬#박상영#박상영 금메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