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에 쿡 찔린 고향선홍빛 탱자 씨 되어 땅위에 떨어진다.또다시 하얀 꽃 피운 내 안의 탱자나무 돌담보다 더 단단한 울타리를 위해나뭇가지 사이마다 가시를 날카롭게 일제히 세우고 있다- 정재규 <내 안의 탱자나무 울타리> 일부
나의 시나무, 나의 꿈나무
시를 쓰는 일은 영혼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 파편처럼 흩어진 꿈과 낭만(환상)을 찾아나서는 여행이다. 아니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비슷하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탈출에의 정신 여행이다. 아니다. 시를 쓰는 일은 아름다운 우주와의 교감이다. 아니다. 시쓰기는 상상의 날개를 다는 일이다. 이렇듯 시를 쓰는 일에 대해 시를 쓰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이, 곧 시를 쓰는 묘미이자 시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재규 시인이 등단, 20년 만에 첫시집을 내어 지역 문단에 회자 되고 있다. 정재규 시인은 오랜 세월 부산시교육청 등 교육행정기관과 학교 현장에서 근무했다.
정 시인은 "내 삶과 교육, 시쓰기를 한번도 별도의 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날것 같은 생생한 교육 현장에서 어렵지만 '시쓰기'를 학생들과 함께 몸소 실천해 온 시인이다. 교과서 위주의 학습교육현장에서 탈출하여, 학생들과 함께 아름다운 마음을 가꾸는 '좋은 시 외우기 및 시쓰기' 등을 오랜 세월 지도해 왔다.
그 결과 2013년 교동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시 전교생이 모두 참여하는 시집 <시가 뭐고 동시가 뭐길래>을 발간해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러한 정재규 시인의 문학교육에의 열성은 줄기차게 <시가 쑥덕쑥덕> 외 2권의 시집을 발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성교육활동 프로그램 활성화로, 2013년도에는 교육부와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학교부문)을 수상했다. 정재규 교장 시인은 오늘도 문화예술교육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우는 인재양성에 노력하고 있다.
생명의 싱싱한 감각 제시와 삶을 꿰뚫는 통찰의 시학늦봄 한낮의 방향 잃은 햇살이 아찔한 졸음을 몰고 와달리는 차를 잠시 붙들어 놓는 사이노랑나비 한 마리 승용차 앞 유리창에 달려들어미끄럼을 타듯 파득거린다앞만 보고 필사적으로 붙고 또 붙고힘겨운 탈출을 시도하는 노랑나비주위에 꽃도 없고 안주할 환경이 아닌삭막한 아스팔트 도로 위에나는 어쩌다 이 나비와 마주쳤을까(중략)아직도 유리창에 부딪히며비상을 꿈꾸는 나비여봄날 햇살에 활짝 핀 장다리꽃은퍼득이는 날개짓 진동으로시베리아까지 떨림 전하는 너를 찾아 무수히 꽃향기를 쏟아 붓는다- <나비는 장다리꽃을 알지 못한다> 일부위 시는 시집 <나비는 장다리꽃을 알지 못한다>의 표제작이다. 해설을 쓴 임종성 시인(문학평론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향할 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나비가 장다리꽃 향기 맛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갖기도 하면서도 '아직도 유리창에 부딪치며/비상을 꿈꾸는 나비여'의 행간에 드러나듯 환한 날개짓의 진동을 믿는 소망을 품고 있다. 장다리꽃은 고유한 향기로 한 순간에 영원을 빚으며 시의 소중한 지배소가 되는 나비를 찾아나서고 있다. 이러한 나비는 장다리꽃을 향해 제 날개가 찢어지도록 눈부신 상승과 비상을 만들어나가는 생명의 싱싱한 감각을 제시한다."정재규 시집 <나비는 장다리꽃을 알지 못한다>는 크게 제1부, 사회와 화자의 관계를 나타낸 시와 제2부, 고향과 화자가 일치된 시, 그리고 제3부, 자연과 화자의 정신세계를 반영한 시를 중심으로 엮어 놓았다. 시인의 시적특성은 사실적 관찰을 통한 세상읽기, 그 읽기를 통해 시적 내면의 풍경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이러한 시적 방법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비처럼, 사랑처럼, 시의 새싹을 움틔우는 시인 그렇다. 정재규 시인의 삶과 교육과 시쓰기는 연장선상 위에 있다. 그의 시 쓰기는 교육현장에서의 학생들과 함께 늘 호흡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렇듯 그의 생활 자체가 시이고 교육의 삶이 시였다.
시력 20년이란 긴 세월을 갈고 닦아온 어휘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삶을 꿰뚫어 나가는 통찰력이 시편마다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도 할 수 있는 <비의 사랑법>이 그의 이러한 격조 있는 시세계를 증명한다.
비가 사랑을 한다나는 새의 깃털 속에도먼지 얼룩진 나뭇잎에도우산을 들고 오가는 소녀의 얼굴에도사랑을 퍼붓는다부드러운 숨소리비가 사랑을 한다햇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향해가물어 가슴 졸인 농부들을 향해더욱 줄기차게 사랑을 퍼 붓는다웃음 되는 빗물눈물 되는 가뭄비가 온다고 투덜거리는 자에게분위기에 젖어 창밖을 바라보는 자에게도똑같이 사랑을 알려준다사랑을 듬뿍 담아준다비, 비, 비의 사랑을 -「비의 사랑법」 전문시전문 계간지 <애지>주간이자, 반경환 문학평론가는 <명시 감상>의 글을 통해 정재규 시인의 <비의 사랑법>에 대해,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물이 없으면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가지 못한다. 탈레스는 물을 에너지(불)라고 이해하지 못한 수성론자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오류마저도 정재규 시인의 <비의 사랑법>이 다 끌어안아 준다. 비의 사랑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고, 비의 공화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중략) 나는 정재규 시인의 <비의 사랑법>을 통하여, 이 사랑의 철학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으로 비가 내리고 사랑으로 시의 새싹이 움튼다"라고 상찬하고 있다.
그렇다. 시를 쓰는 일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며, 자연에 대한 '사랑'에의 눈뜸을 희원하는 삶의 한 방법이다. 정재규 시인의 시세계는 맑고 투명하다. 일상생활과 현실적인 소재를 형상화하고 있으나 시의 바탕은 '사랑'이다.
이러한 시의 본질을 '사랑'으로 환원한다. 정 시인의 시 소재는 삶의 현장과 고향의 모습, 부모님의 삶의 흔적으로부터 등 참으로 다양하다. 한결같이 우리들이 살아온 삶(사랑)의 의미를 찾아보고 그 의식을 표출한 시편들이 많다. 우리네의 사랑의 무한한 힘과 사랑이 어떻게 우리들의 삶 속에서 승화되는지를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작과 사유와 고단한 언어의 훈련을 통한 성과라고 하겠다.
정재규 시인 |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으며, 문학교육을 공부했다. 1996년『문예시대』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나무와 숲' 동인, '노령문학회', '부산시인협회', '부산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장학사 및 장학관, 교동초등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부산해강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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