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광복절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이 축사에서 했던 말이 또 난리다. 이날 광복 71주년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은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치른 장소고, 죽음을 맞은 감옥이 있던 곳은 뤼순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기본적인 역사적 팩트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여기 저기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풍경이다.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 안중근을 모른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대국민 사과까지 한 설현이 떠오른다.

만만한게 연예인? 언론들의 이중잣대

 동아일보가 아이돌의 역사의식 부재를 두고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과연 아이돌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라는 고민은 어디에도 없다.
 동아일보가 아이돌의 역사의식 부재를 두고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과연 아이돌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라는 고민은 어디에도 없다.
ⓒ 동아일보 페이스북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게다가 최근에 래퍼 지코와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헤럴드경제>는 '대국민사과를 한 날 지코를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라는 내용의 말도 안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렇다면 안중근이 어디에서 죽었는지도 헷갈린 대통령의 경우라면 일관되게 비판했어야 할텐데, 정작 <헤럴드경제>는 논란이 있은 지 하루가 지난 16일에서야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그마저도 비판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청와대가 뒤늦게 정정했다는 점에 강조해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어디 <헤럴드경제>뿐인가. 연예인의 역사의식을 문제삼으며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진 것 마냥 보도한 언론들이 한둘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15일 연예기사를 통해 "한류 아이돌의 옳지 못한 역사의식이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며 설현과 티파니의 예시들 들어 그들의 행동을 비판했다. 한 술 더 떠서 "대한민국 가수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해외에서 활동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그런 <동아일보>가 15일 박 대통령의 실언에 대해서 언급하기는 했지만 기사 막바지에 짤막하게 언급하고 대부분의 지면을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무엇을 말했는지에 할애한다. 많은 언론들이 이런 식이다.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으니 중요성을 축소보도하는 것.

왜 항상 여자 연예인의 역사적 무지를 다그치며 우위를 점하려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그들을 징벌하여 당신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안중근에 대한 무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야 할 일인 것인가? 그렇다면 왜 연예인보다 더 중한 자리에 있는 대통령의 무지는 문제삼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언론들이 연예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검열하고 있다. 정말 볼 때마다 절망적이다.

진짜로 관심 가져야 할 것은 단편적 역사 지식이 아니라 '역사관'

사실 나는 개인이 역사에 대해 얼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를 문제삼기보다는 어떤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역사를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단편적인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것은 시험준비할 때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차라리 "모두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박 대통령의 안중근 발언도 문제 삼아야 일관성이 있을 듯하다.

물론 예측했겠지만,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안중근 발언 자체를 비난할 마음이 없다. 문제는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공인에게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면서 공인도 아닌 연예인만 때려잡는 일관성 없음이다.

사실 안중근이 옥사한 곳이 하얼빈인지 뤼순인지 그거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다. 오히려 역사관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안중근의 얼굴을 몰라보는 것 혹은 안중근이 어디서 옥사했는지 모르는 것 자체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사실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지점이 좀 전략적으로 타당해 보이진 않는다.

문제는 '건국절' 운운하며 4.19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명시한 헌법을 부정하는 처사 아닌가. 그게 안중근에 대한 사소한 사실관계보다 더 중요하다. 역사관은 과거의 허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미래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이냐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언론들이 여자 연예인을 향한 도 넘은 마녀사냥을 관두고 박 대통령의 일그러진 식민사관을 비판했으면 좋겠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것만큼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광복절##역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