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GM)이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해는 1999년이었다.(아래 국내외 기업 평가 관련 사례들은 <월요신문> 2016년 5월 26일자 'GM, GE, MS가 성과연봉제를 폐지한 이유'에서 빌려옴.) 2003년에 전체 사무직종으로 확대되었다. 사무직을 5등급으로 나눈 뒤 최하 등급은 임금을 동결하고 최상위 등급은 20퍼센트 인상했다.
노사관계와 조직문화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불신과 위화감이 커졌다. 2014년 4월 제도를 전격 폐지했다. 연공급 체계의 임금제를 새로 도입했다. 직원들의 안정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캐치업(catch up) 제도도 도입했다고 한다. 지나친 임금 격차가 조직문화를 해친다는 판단 아래 격차 해소를 위해 취해진 조치였다.
지이(GE)와 엠에스(MS) 역시 상대평가에 기초한 성과연봉제가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제도"라며 폐지했다. 지이는 1980년대 초반부터 하위 성과자 10퍼센트를 해고하는 이른바 '10퍼센트 룰(rule)'을 시행해왔다. 1981년 잭 웰치가 회장이 되면서 도입한 제도였다.
이 역시 상호 불신과 불화가 급증하는 극심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지이 경영진은 '10퍼센트 룰'을 버렸다. 대신 'GE PD(GE Performance Development)'라는 새로운 인사시스템을 도입했다. 상시평가, 절대평가, 다중평가에 기반한 시스템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는 '스택랭킹(stack ranking)'이라는 상대평가제가 있었다. 성과를 평가해 1~5등급으로 나눈 뒤 최하등급 직원을 해고하는 제도였다. 낮은 등급의 저성과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이의 '10퍼센트 룰'과 비슷했다. 폐해가 극심했다. 결국 스택랭킹을 버린 엠에스는 "하나의 마이크로소프트(One Microsoft) 운동이라는 기치 아래 '커넥트 미팅(Connect Meeting)'이라는 새로운 평가기제를 도입했다.
인사관리(HR) 전문가 팀 베이커는 최근작 <평가제도를 버려라>에서 전통적인 성과 평가 시스템이 군대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규정했다.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상급자(고참)는 말을 쏟아내고 하급자(부하)는 한 귀로 흘려 보낸다. 반론하고 싶지만 낮은 계급 때문에 입을 다문다.
일반적인 성과 평가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평가 대상자인 하급자는 보통 수동적이고 시큰둥한 수용자 자세를 취한다. 군대에서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팀 베이커는 지난 몇 년간 온갖 산업 분야에 걸쳐 1200명의 관리자와 인사관리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표준화한 현행 성과 평가 시스템의 단점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자 여덟 가지 정도로 정리되는 답들을 내놓았다고 한다. ▲ 고비용이다. ▲ 파괴적이다. ▲ 독백 위주다. ▲ 딱딱한 형식이 자유로운 토론을 막는다. ▲ 건설적인 쌍방향 대화와 고무적인 논의가 어렵다 ▲ 빈도가 낮다. ▲ 서류 작성으로만 끝난다. ▲ 후속 조치가 없다.
컨설팅회사 '맥킨지&컴퍼니'의 계간지 <맥킨지 쿼털리>는 2016년 5월호 '성과관리의 미래'라는 글에서 성과평가를 "부조리의 전형", "최악의 비밀(worst-kept secret)" 등으로 혹평했다고 한다. 성과 평가 중심의 상대평가와 차등적인 성과급제도가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과 중심 평가 제도는 인간을 경제적인 유인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전제한다. 일부 맞다. 대체로 사람들은 '채찍'보다 '당근'을 좋아한다. 이런 논리는 인간이 경제적 유인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해묵은 가정에 기초해 있다. 필요 조건이 있어야 한다. 평가 기준이 합당하고 공정한가. 과정과 절차가 합리적이고 공평한가. 결과가 조직과 개인에게 건설적인 영향을 주는가.
성과급제도와 같은 전통적인 평가 기제가 이런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지엠, 지이, 마이크로소프트 등 성과 전쟁의 최전선에 선 굴지의 대기업들이 평가 시스템을 뜯어고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글로벌 기업들의 평가제도 혁신은 이미 트렌드가 된 듯하다. 세계 유명 기업 30곳이 이미 평가 시스템을 버렸다고 한다.
인사관리 전문가이기도 한 팀 베이커가 제안하는 새로운 평가 시스템은 수평적 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분위기 평가, 직원의 강점과 재능, 성장 가능성, 학습과 발전, 혁신과 지속적인 발전 등을 주제로 평가대상자가 중심이 되어 6개월마다 이루어지는 주관적 상시 평가 방식이다.
책 뒤에는 새로운 평가기제에서 활용되는 대화법에 필요한 구체적인 서류 양식과 관련 실수 사례 들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아이비엠(IBM), 보잉, 볼보 등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인사 컨설팅을 해 온 저자의 문제의식과 해법의 현실성·구체성이 돋보인다. 평가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갖추고 싶어하는 이들이 두루 일독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라는 이름의 '폭주기관차'를 타고 과거로 향하는 정책을 과감하게 펼치고 있다. "성과연봉제 미도입 공공기관은 인건비와 경상경비를 동결 또는 삭감하겠다", "성과급을 균등분배하고 교원평가를 거부하는 교사들을 징계하겠다"고 을러댄다.
세계 기업들의 평가 혁신 트렌드도 무시한다. 1990년대 이후 공공기관에 성과연동임금제를 도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 동기부여나 실적 개선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 역시 눈여겨보지 않는다.('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OECD에서 이미 판정패한 제도', <민중의 소리>, 2016년 5월 16일)
전국금융산업노조가 OECD 자료를 분석해 2011년 8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성과 평가 시스템은 경영진이 다른 정책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한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과연봉제가 직원통제수단으로 기능했다는 것. 상사 말 잘 듣는 사람이 '성과우수자'라는 냉소가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정부의 평가 철학은 경쟁 시스템에 터 잡고 있다. 상대평가 시스템에 따라 평가자들을 서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과급과 승진 등에 활용한다. 교육 부문의 경우, 교원능력개발평가와 성과급과 근무성적평정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평가 기제들이 '교원업적평가'로 통일되면서 그 결과를 승진과 보수에 연계시키는 조치가 취해졌다. 모두가 경쟁을 독려하는 기제들이다.
나는 교원평가 결과를 승진과 보수에 반영하는 순간 교단이 불신과 불화의 장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간 성과 평가 시스템에 '다걸기'한 대기업체에서 입증된 바다. 잊지 말기 바란다. 다른 곳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성과 평정이 비교적 무난하다고 간주되는 '기업체'에서 그랬다. 그리고 그들은 제도를 바꿨다!
<평가제도를 버려라>(팀 베이커 지음, 구세희 옮김 / 책담 / 280쪽 / 2016.6.24. / 1,3500원)
덧붙이는 글 |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