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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트로트'는 언제부터 불렀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그동안 우리를 울고 웃게 한 노래는 누가 부른 어떤 노래들일까? 꼭 알아야 할 우리 음악사 주요 사건들은?

남강: 그다음 해인 1972년에 나온 노래가 아마 <아름다운 강산>일 겁니다. 소문에 의하면 박정희 정부가 신(신중현) 선생에게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 달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신 선생은 음악이 그런 데에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하지요? 그러면 결과는 뻔합니다. 정부가 여러 가지로 신 선생을 음해했겠지요. 그래서 선생은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알아서 이 체제 찬양적인 노래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나도 우리 강산을 아름답다고 찬양하고 있으니 그만 좀 괴롭히라 정도의 메시지가 담긴 노래라고나 할까요?

걸최: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신 선생은 별 생각 없이 자신은 대통령 찬가처럼 한 사람을 위한 찬가가 아니라 온 국민이 같이 부를 수 있는 건전가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이 노래를 신중현 식의 애국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순 즈음에 되돌아보는 우리 대중음악> 책표지.
<예순 즈음에 되돌아보는 우리 대중음악> 책표지. ⓒ 한울
<예순 즈음에 되돌아보는 우리 대중음악>(한울 펴냄)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시대별로 정리한 우리 대중음악사다.

책은 대한제국 말기의 창가부터 2012년 싸이 열풍까지,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와 함께 해온 노래들에 얽힌 사연들을 걸최와 남강,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가벼운 인조견을 살짝 몸에 감고서/오늘도 나와 보니 노들강변 백사장/바람아 스리슬슬 치마폭을 노와라/열여덜 이마음을 너도마저 하느냐/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그리운 나라로 차저를 가네….'

이 글을 쓰면서 이처럼 시작하는 '가벼운 인조견(유선원, 1937.12. 콜롬비아 레코드)'이란 신민요를 시작으로 '개고기 주사'란 만요(해학송)와 '오빠는 풍각쟁이(만요)'와 '다방의 푸른 꿈(재즈)' 등을 듣고 있다. 2년 전 이즈음 우연히 알게 된 후 한동안 즐겨들었던, 일제강점기 노래들이다.

2년 전 9월 초 어느 날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들어오던, 그러나 아는 것이 없는 '오빠는 풍각쟁이'란 곡이 궁금했다. 그토록 재미있는 노랫말을 쓴 사람도 그와 같은 노래가 나온 배경도 궁금해졌다.

한동안 빠져든 덕분에 '오빠는 풍각쟁이(1938년. 박향림 노래. 박영호 작사)'에 대한 것들은 물론 일제강점기 유행했던 여러 노래들을 알게 됐다. 재미있게 돌려 표현하는 것으로 일제강점기의 세태를 비꼬거나 울분을 표현한 만요(해학송)란 장르가 있었다는 것도. '오빠는 풍각쟁이'도, 신신애가 불러 히트한 '세상은 요지경'도 그런 노래라는 것 등 참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가벼운 인조견'같은 신민요가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아가 '가벼운 인조견'이란 노래 속 그 인조견은 오늘날 린넨과 함께 여름의 섬유로 각광받는 인견이란 것,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유입되었는데 당시 일반인들이 주로 입던 광목이나 무명에 비해 부드럽고 질기나 값이 싸서 인기가 많았다는 것, 강화도에 인견 방적공장이 많이 세워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는 것, 우리나라의 인조견이 많이 팔리자 일본이 자기네 인조견을 팔아먹으려고 중국과의 인조견 교역을 금지하자 밀매업자들까지 생겨났다는 것, 우리나라 최고의 싸움꾼 시라소니(본명 이성순)도 인조견 밀매업자였다는 것, 인조견 밀매업자들을 '노비로리'라 불렀는데, 일본 경찰이 대대적인 소탕작전까지 벌일 정도로 인조견 밀매업이 번성했다는 것 등 노래 너머의 것들까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관련해 덧붙이면, 나무에서 추출해내는 인견이 반짝이는 것은 섬유조직이 삼각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걸최: 트로트가 처음 나왔을 때 이 노래는 완전 신세대음악이었어요. 아직 신민요가 나오기 이전이었으니 사람들은 창가나 전통 민요를 부르고 있었지요.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한 것이지만 지금은 이 트로트가 기층민이 좋아하는 노래처럼 말하고 있지만, 처음 나왔을 때는 대도시에서 신교육을 받은 이른바 '모뽀모걸'들이 향유하던 노래라는 것입니다. 모뽀모걸이란 당시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줄여서 하던 말입니다. (…)이난영이나 황금심 같은 가수들이 트로트 말고 블루스 리듬의 노래를 했다면 믿습니까?

남강: 그랬습니까? 참으로 금석지감을 느낍니다. 트로트가 젊은 사람들의 노래라고 배척을 받았다니 말입니다. 그럼 신민요는 어땠습니까? (…)네? 아니 그 유명한 이난영과 황금심이 블루스를 불렀다고요?

걸최: 트로트 초기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본 유학파나 서양 음악을 공부한 사람들이 이끌게 됩니다. 이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데뷔해 당시 트로트 음악계를 주도하게 되지요. 그러면 이들에게서 영향 받은 기생이나 배우, 변사들이 이들이 만든 노래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남강은 혹시 홍난파 선생이 트로트 곡을 썼다는 것을 아나요?(지면 사정으로 몇 쪽의 대화를 잘라 정리함)

트로트가 젊은 사람들이나 즐기는 노래였다는 것이나, 당시 사람들이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줄여서 '모뽀모걸'이라 불렀다는 사실이 여간 흥미롭다. 여하간 책을 보는 순간 2년 전 뭔가 알아가는 그 희열을 다시 맛보고 싶었고, 우리 노래에 얽힌 사연들을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앞섰다.

노래(또는 음악)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다. 글자를 몰라 자기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마음을 담아 부르거나, 들으며 위로를 받는 등으로 즐길 수 있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나 희로애락을 가장 많이 담은 문화임은 당연하다.

이런지라 노래는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아는데, 특히 이 책이 주제로 하고 있는 남녀노소를 막론 모든 사회구성원이 즐길 수 있는 여지가 그 어떤 장르보다 높은 대중음악은 좋은 자료가 된다.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이 담긴 노래 한곡에 얽힌 이야기들을 참으로 많이 풀어놓았다. 그래서 읽는 맛이 유독 좋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글이 끝날 때마다 '앨범 더 살펴보기'란 제목으로 우리 대중음악사에 중요하거나, 본문에서 언급한 외국의 중요 음반들을 소개한 것도 이 책이 인상 깊은 이유 중 하나. 역사가 된 음반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노래를 듣거나 좋아하는데 어떤 설명이 꼭 필요하진 않다. 그러나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이제와는 다른 느낌으로 우리 대중음악들을 느끼게 하리라.
  
▲<우리 집에 왜 왔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쎄쎄쎄> 등, 어렸을 때 부르며 놀았던 이 노래들이 일본 노래?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희망가>는 1910년에 한 일본 여교사가 사고로 죽은 일본 여학생의 넋을 위로하고자 번안해 부른 '七里ヶ浜の哀歌(시찌리가하마의 애가)다? ▲우리의 록은 비틀즈와 비슷한 시기에, 아니 훨씬 이전에 시작됐다? ▲신중현의 <미인>이 금지곡이 된 진짜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따라 해서?▲배호에게 빠져 '배호 프로젝트'까지 기획한 프랑스 재즈가수가 있다?

작은 충격으로 읽어서 아마도 쉽게 잊히지 않은 그런 이야기들,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덧붙인다.

덧붙이는 글 | <예순 즈음에 되돌아보는 우리 대중음악> (최준식)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6-06-20ㅣ 23,000원



예순 즈음에 되돌아보는 우리 대중음악 - 대화로 푸는 한국 가요사

최준식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16)


#대중음악#유행가#만요(해학송)#오빠는 풍각쟁이#인조견(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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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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