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남도지사가 5일 군산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섬의 날' 제정을 제안했다. 이 지사는 "섬은 국가 영토주권의 최전선이자 지킴이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제안 설명을 했고, 회의에 참석한 시장·도지사들은 국가 차원에서 '섬의 날'이 제정되도록 정부에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국가기념일로 '섬의 날'이 제정되면 ▲육지 영토의 4배에 이르는 해양 영토 수호의 전초기지를 확보할 수 있고 ▲섬마다 잘 보존된 전통문화 자원의 보고를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으며 ▲새로운 관광산업 거점으로서 섬의 중요성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남도는 기대하고 있다.
이 지사의 제안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한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다도해국가인 대한민국이 이제부터라도 국가 차원에서 섬에 대한 정책을 획기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는 큰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지난 7월 <오마이뉴스>는 '집중기획 섬' 시리즈를 통해서 다도해국가인 대한민국이 섬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고발했다.
관련기사 :
[집중기획 - 섬③] 한국 국토연구원, 독도 일본땅 맞장구? [집중기획 - 섬②] 귀신도 모른다는 한국의 섬은 몇 개?[집중기획 - 섬①] 호주는 섬일까요, 대륙일까요?대한민국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몇 개의 섬이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가 없다. 정부 부처마다 내놓는 섬의 개수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행하는 <한국통계연감>은 한국엔 모두 3170(무인도 2679, 유인도 491, 2005년 기준)개의 섬이 있다고 하는데 행정자치부는 3339(무인도 2876, 유인도 463, 2011년 기준)개의 섬이 있다고 말한다.
해양수산부는 3358(무인도 2876, 유인도 482개, 2014년 기준)개가 있다 하고, 국토교통부는 2015년 말 기준으로 한국엔 총 3677개(무인도는 3191개, 유인도 486개 제주도 제외)의 섬이 있다고 발표했다.
섬에 사람이 살다 떠나면 유인도에서 무인도로 바뀐다. 또 심각한 육지화와 해수면의 변화 등으로 몇몇 섬이 육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한두 개 차이도 아니고 정부 부처마다 내놓는 섬의 수가 507개나 차이가 난다는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한국의 국립기관과 전경련 등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맞장구치는 것 같은 행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해상보안청 등은 일본 섬의 개수가 6852개라고 주장한다. 6852개의 섬 가운데엔 우리 영토인 독도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토정책을 연구하는 국토연구원이 지난 2009년 12월 '주요국의 국토해양 정책동향 분석 연구' 최종보고서에서 일본의 섬 개수는 6852개라고 밝히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도 일본의 섬은 모두 6852개라고 알리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2015년 6월 정부에 '관광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정책 건의서'를 내면서 일본의 섬은 6852개라고 쓰고 있다. 이들 기관이 기록한 대로 치자면 독도는 일본의 섬이다.
자기나라 섬이 몇 개인지도 모르고, 국립기관이 나서서 독도를 일본의 섬이라고 인정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사태가, 이토록 오래 동안 방치되고 있을까.
한 마디로 대한민국은, 섬에 대한 영토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UN해양법협약 제121조 제3항은 "섬의 영해, 접속 수역, 배타적 경제 수역 및 대륙붕은 다른 육지(영토)에 적용 가능한 이 협약의 규정에 따라 결정한다"라고 되어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섬은, 국가 간의 영토와 접속 수역,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 대륙붕 소유권 등을 결정하는 영토전쟁의 최전선이라는 이야기다.
먼 나라 갈 필요도 없이 일본의 경우를 들어보자. 일본은 1953년 '이도진흥법'을 제정한 이후 오는 2022년까지 7차 이도진흥계획을 추진한다. 일본은 이도진흥법의 첫 번째 목적이 '배타적 경제수역의 보전'이라고 못박고 있다. 영토로서의 섬을 지키면서 배타적 경제수역 등 해양영토를 확장해가겠다는 것이다.
이도 즉 먼 섬에 대한 공세적인 정책을 통해 일본은 육지영토(38만㎢)의 11배(450만㎢)에 달하는 해양영토를 이미 확보했다. 세계 6위에 해당하는 큰 해양영토지만 일본 정부는 해양영토를 세계 3위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섬을 전진기지삼아 무한한 영토 확장의 야망을 현실로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한가하게 일본이 밝힌 섬 개수나 따라 읊어대는 대한민국 정부가 한심할 뿐이다.
섬에 대한 영토 인식이 없다보니 그럴까.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다도해국가 대한민국엔 섬 관련 국책기관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이 지난 30년 동안 섬과 연안의 역사, 문화, 생태, 정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국가와 정부의 빈자리를 힘겹게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크든 작든 섬은 한 나라가 지닐 수 있는 영유권의 최전선이자 최후보루다. 섬에서 영토와 영해와 영공이 시작된다. 섬을 포기한다는 것은 한 국가가 자신의 영유권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섬을 지금처럼 터부시하고, 조롱하며 '반도에 딸린 혹덩어리들' 쯤으로 치부할 것인가.
이 지사의 '섬의 날' 제정 제안이 반가운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섬이 천대가 아닌 공론의 주체로 등장하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많이 늦었지만 치열하게 연구하고 토론해서 제대로 된 섬 정책 하나 만들어내는, '섬 없는 빈껍데기 해양강국'이 아닌 '섬이 있는 해양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