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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 흔했던 것들이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꾸는 작물들도 보기 드문 게 많아졌습니다. 밀밭이나 보리밭을 어쩌다 마주치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목화와 같은 작물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예전 담배농사도 계약재배로 수익이 보장되다시피 해 많이 심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왕골을 논에 심어 겨우내 돗자리를 짜고, 오일장에 내다팔아 우리 학비를 마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농가에서 가꾸었던 보리, 밀, 담배, 목화 등과 같은 작물이 요즘은 흔하지 않은 작물이 됐습니다.

조를 예전엔 서숙이라고 불렀어요

오곡 중의 하나로 흔히 볼 수 있는 조도 재배하는 농가가 많지 않아 요즘 들어서는 보기 드뭅니다.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다 어느 조밭이 눈에 뜨였습니다.

"아니 저거 서숙아네요?"
"그러네! 당신, 서숙을 다 아네!"
"우리 클 때 조를 서숙이라 불렀잖아요?"
"서숙,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네!"

 가을 햇살에 조가 잘 여물어가고 있습니다.
가을 햇살에 조가 잘 여물어가고 있습니다. ⓒ 전갑남

조를 전라도 사투리로 서숙이라 불렀습니다. 기장과 조를 뜻하는 '서속(黍粟)을 서숙이라 부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밭에 조 알갱이가 똑똑 여물어가고 있습니다. 조 이삭에 낟알이 가득 찼습니다. 조 알갱이 하나가 싹이 터 이렇게 엄청난 양으로 늘려준 것 같습니다. 자연이 베푼 혜택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조 키가 무척 큽니다. 늘어진 모가지는 20cm이고, 사람 가슴 높이만큼 자랐습니다. 키가 150cm는 넘을 것 같습니다.

 똑똑 여물고 있는 조 이삭. 작은 알갱이가 다닥다닥 달렸습니다.
똑똑 여물고 있는 조 이삭. 작은 알갱이가 다닥다닥 달렸습니다. ⓒ 전갑남

조는 늦여름에 큰 이삭이 나와 수많은 잔꽃이 모여 피고, 이삭에 노란 열매가 달립니다. 자디 잔 노란 열매가 나중 좁쌀이 됩니다.

'자갈밭에 서숙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는 아무데서나 잘 자랍니다. 김매기만 몇 차례 해주면 가뭄에도 잘 견디고, 기름지지 않은 땅에서도 흉년들 일이 거의 없습니다.

조를 보니 가을에 오곡백과가 무르익는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조 이삭이 무척 무거워 보입니다. 알곡이 익으면서 무게 때문에 목 가누기가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가 봅니다. 여물어가는 조를 들여다보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

"서숙밥 지겹도록 먹었던 기억나요?"
"쌀은 쬐끔이고, 보리와 좁쌀을 듬뿍 넣어서 말이지!"
"그땐 배불리 먹는 게 최고였으니까요!"
"지금이야 건강식으로 조를 넣어 밥 지으면 맛있잖아!"

조는 잡곡과 함께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조는 한때 보리 다음으로 많이 재배했던 밭작물이었습니다. 식량에 쓸 요량으로 많이도 심었습니다.

 어느 식당에서 조가 약간 섞인 조밥이 맛이 있었습니다.
어느 식당에서 조가 약간 섞인 조밥이 맛이 있었습니다. ⓒ 전갑남

요즘 들어서는 좁쌀을 쌀이나 보리와 함께 섞어 건강식으로 먹습니다. 또한 쌀 대신 엿, 떡, 술을 빚어 먹기도 합니다. 좁쌀로 빚은 막걸리는 색다른 맛을 내 애주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조에 얽힌 우리말 '조바심'

조를 거둘 때는 이삭을 베다 가을볕에 널어 말렸습니다. 잘 마른 이삭을 막대기로 두들겨 패고 또 어레미질을 하여 수확을 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내가 아내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 조바심이라는 말 알아?"
"조마조마하여 마음 졸인다는 뜻을 왜 물어요?"
"그런데, 조바심이라는 말이 조 타작에서 유래된 것은 모르지!"
"그럼, 바심이란 말이 타작을 뜻하는 거예요?"
"그래!"

조바심이란 말이 조를 타작하는 일이 쉽지 않아 생겨난 말이라고 하자, 아내는 처음 듣는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조바심'이란 말은 '조'와 '바심'이 합쳐진 말입니다. '바심'이란 곡식 이삭을 털어서 낟알을 거두는 타작을 뜻하지요.

 조밭. 예전 흔했던 조밭을 자전거 타며 보게 되었습니다.
조밭. 예전 흔했던 조밭을 자전거 타며 보게 되었습니다. ⓒ 전갑남

그러니까 '조바심'은 조 이삭을 타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조 이삭을 털어내기가 만만찮습니다. 갖은 수단으로 비비고 문질러야 간신히 조 낟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를 타작할 때는 힘도 들고, 좀처럼 쉽게 털리지 않으니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바심하다'라는 것이 결국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같아 마음을 졸인다는 의미에서 조바심이란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환경의 변화와 시대 상황에 따라 가까이했던 것들이 차츰 우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 소중한 먹거리였던 조도 우리 삶속에서 잊혀 지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이 듭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소중히 잘 간직해야한다는 마음이 듭니다.

요 며칠 가을 하늘이 무척 높습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갑니다. 풍요로운 가을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 텃밭을 둘러보는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우리 밭도 가을색이 완연하네! 이젠 우리 조바심 같은 거, 버리고 삽시다. 가을은 여유 있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치니까요!"


#조#서숙#조밭#조바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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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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