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2일 경주에서 지진계측 이후 최대 규모(강도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수도권 지역에서까지 감지됐다. 지진에 놀란 시민들이 건물 밖으로 뛰쳐 나왔다.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 개개인 모두 이 일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진 규모가 조금만 더 컸더라도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에 앞서, 가까운 일본의 구마모토현에서는 지난 4월 14일과 16일, 각각 6.5와 7.3 규모의 연쇄 강진이 일어났다. 규슈지역에서 일어난 400년 만의 대지진이었다. 이 지역은 4개월 여가 지난 8월 20일까지만 해도 진도 1 이상의 지진이 2000회를 훌쩍 넘었다. 피해액도 약 49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민관의 빠른 대처로 수 천명이 구조돼, 인명 피해를 크게 줄였다고 한다.

일본을 보면, 대형 지진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6월 중순 경,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강진을 경험한 구마모토 지역을 돌아보았다. 지진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구마모토 이야기가 그동안 지진에 미숙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말]
구마니찌신문사 야마구치 가즈야(山口 和也) 편집국 차장
 구마니찌신문사 야마구치 가즈야(山口 和也) 편집국 차장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언론사라고 지진이 피해갈 리 만무하다. 일본 구마모토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방일간신문사인 구마니찌니찌신문(熊本 日日新聞,아래 구마니찌신문)은 지진으로 신문을 찍던 윤전기가 멈췄다. 몇 시간 후 복구를 하긴 했지만, 건물 곳곳이 금이 갔다.

특히 구마니찌신문사가 자랑해온 '신문박물관' 내부는 폐허가 됐다. 활자판이 쏟아져 내려 바닥에 흩어졌다. 액자 등 전시물도 떨어져 내렸고 마구 뒤섞였다. 전시물과 관람객을 구분하던 유리창도 대부분 깨지고 부서졌다. 수십여 톤에 달하는 윤전기가 진동에 흔들리다 수 미터를 밀려나 있었다. 지진의 괴력을 짐작하게 했다.

구마니찌신문사는 지진 상황을 전하기 위해 30여 년 만에 호외를 발행했다. 이 신문사의 야마구치 가즈야(山口 和也) 편집국 차장이 전한 지진피해와 취재 실상은 더욱 생생했다. 그는 "길이 끊겨 신문 배달 차량이 보급소까지 살 수 없는 곳이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집이 무너져 배달할 수 없는 곳도 있었다"며 "이런 경우 피난소를 찾아가 배달했고 지금도 피난소로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독자는 신문이 배달되는 것을 보고 '아, 내가 버림받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밝혀왔다"며 "그 얘기를 듣고 기자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다.

그는 "한 여기자는 피난소에서 자신의 아기가 잠드는 것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고 피해지역으로 달려갔다"며 "기자들에게 '객관적인 보도가 정도이지만 이번에는 자기 것을 쓰자. '나는'을 주어로 자신의 얘기를 써도 좋다'고 했다"고 말했다. '냉정함보다 사실 전달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야마구치 편집차장은 "작년과 재작년, 진도 7의 강진이 올 수 있다는 예측 보도를 했지만 '설마'하는 생각에 경종을 울리는 보도는 하지 않았다"며 "제일 반성 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또 "밀착 취재를 통해 지진 대응의 허실을 찾아내 알리려 애쓰고 있다"며 "정확한 평가 보도만이 애정을 보내준 전국의 많은 일본 국민에게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지난 6월 16일 구마모토신문사 야마구치 편집국 차장과 나눈 인터뷰 요지다. 구마모토신문사는 180여 명 직원이 현재 36만 부(조간 30만 부, 석간 6만 부)를 발행하고 있다.

지진으로 활자판이 쏟아져 내리고 전시품이 뒤섞인 구마니찌니찌신문사가 운영하는 신문박물관
 지진으로 활자판이 쏟아져 내리고 전시품이 뒤섞인 구마니찌니찌신문사가 운영하는 신문박물관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 구마모토 시내를 덮쳤던 4월 16일 규모 7.3 강진이 왔던 당시 상황을 기억하나?

"당연하다. 4.16 오전 1시 25분쯤이었다. 신문사에서 집으로 퇴근 한 지 1시간만이었다. 지진으로 건물이 요동쳤다. 위험을 느꼈지만, 곧바로 편집국으로 달려왔다."

- 당시 신문사 상황은?
"지진으로 신문사 건물이 흔들리면서 건물은 물론 윤전기도 피해를 당하였다. 당일 신문인쇄를 3분의 1 정도 한 시점에서 윤전기 4대가 모두 멈췄다. 지진으로 인한 고장이었다. 인쇄국에서는 윤전기 복구 여부에 대해 '타격을 받아 점검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인쇄를 못할 수도 있다고 보고 후쿠오카 현에 있는 모 신문사에 연락을 취했다. 일본 대부분 신문사의 경우 '지진 등으로 신문을 발행하지 못하는 위기가 생길 때를 대비해 인근 다른 신문사와 인쇄 대행 협약을 맺고 있다.

다른 한편, 전력을 다해 수리를 시작했다. 다행히 후쿠오카현에 있는 신문사에 인쇄를 부탁하기 직전인 오전 4시경 일부 윤전기가 복구됐다. 평소보다 천천히, 느리게 인쇄를 했다. 평상시는 오전 3시면 인쇄가 끝난다. 이날은 동이 튼 오전 7시 10분경에서야 인쇄가 끝났다. 무사히 인쇄를 끝내자 인쇄국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나도 인쇄국에 직원들에게 감사 전화를 했다."

- 인쇄한 신문을 배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나?
"인쇄를 마쳤지만, 수송이 문제였다. 지진피해가 심한 미사키마키 방면으로 가는 신문 수송 트럭으로부터 도로가 끊겼다는 연락이 왔다. 아소 지역도 산사태로 도로가 끊겼다. 다리도 붕괴했다. 터널도 막혔다. 신문 수송 트럭이 보급소까지 가지 못하는 곳이 점차 늘어났다. 당연 신문 배달을 하지 못했다. 보급소까지 갔지만, 집이 무너져 배달할 수 없는 곳도 있었다."

- 집이 무너진 경우 배달을 포기하나?
"아니다. 이런 경우 피난소를 찾아가 배달했다. 지금도 피난소로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 지진 피해가 나자 한동안 독자가 아니지만, 신문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민들이 빼앗듯이 신문을 가져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무료 배부했다. 특히 피해를 본 지역 사람들은 정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 지진 피해 후 직접 신문을 배달한 적도 있나?
"4월 16일 발행한 호외를 배포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오전 9시쯤이었다. 호외 발행과 배포는 3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시라카와 공원에 가니 수많은 사람이 인근 아파트에서 피난을 와 있었다. 급수차 앞에는 줄을 선 사람들로 북적였다. 찾아가서 '구마니찌신문입니다'라며 말했다. 곳곳에서 손을 내밀었다. 시민들이 호외를 보며 '이런 피해가 있었구나!'하며 놀라워했다.

편집국으로 돌아와 '현민들이 정보를 갈망하고 있다. 신문이 갈증을 해소해 줘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신문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직원들이 모두 호응했다. 한 독자는 신문이 배달되는 것을 보고 '아, 내가 버림받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밝혀왔다. 기자들도 얘기를 듣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구마니찌신문사 신문 박물관 앞 안전모 쓴 신문 흉상
 구마니찌신문사 신문 박물관 앞 안전모 쓴 신문 흉상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 지진으로 인한 취재 어려움은 없었나?

"기자들이 모두 구마모토 출신이다. 또 거의 현재 이 지역에 살고 있다. 피해지역에 가서 취재하지만, 기자들이 피해 지역에 살고 있다. 기자들이 본인 또는 가족, 친척이 손해를 입어 거의 다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기자 대부분이 직접 피난소에 살면서 취재했다. 또는 자동차 안에서 숙박하며 취재했다. 나도 자동차 안에서 취재했다. 어떤 여성기자는 피난소에서 자신의 아기가 잠드는 것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고 피해지역으로 달려갔다."

- 지진으로 기사를 보도하는 방식이 변화한 또 다른 사례가 있나?
"젊은 기자들에게 말했다. '객관적인 보도가 정도이지만 이번에는 자기 것을 쓰자. '나는'을 주어로 '자신'을 주체로서도 좋다'고 했다. 냉정함보다 사실 전달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도 기사를 요청했다. '현장에서' 코너를 만들었다. 참고로 편집국 직원은 180명이다. 현장취재는 130명 정도가 맡아 하고 있다."

- 지진이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주요 지진 관련 보도 방향은 무엇인가?
"지진 발생 직후 중점 방향을 설정했다. 첫째는 지진피해 전체 상황을 전달하자는 것이다. 구마모토성과 수전사 공원 등 시민들이 관심이 있는 시설물에 대한 피해 상황에 대해서도 중점을 뒀다.

둘째는 피해 주민에게 필요한 생활정보다. 어떻게 물을 얻을 수 있는지, 주먹밥은 어디서 어떻게 얻을 수 있고 목욕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위로금은 얼마나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피난소는 어디인지 등 기본 생활 정보를 빠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정부에서는 지진의 강도와 피해자 수를 주로 홍보했지만,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것 이런 숫자가 아니라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디에 가면 밥을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 당연하지만, 기본 생활 정보 전달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 있다. 마지막으로 지진 발생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분야별 재해 현황과 과제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지난 5월 12일부터 '연쇄 충격' 연재기사로 주민의 생사를 가른 것은 무엇이었는지? 건물이 왜 무너졌는지? 전기, 가스 등 라이프 라인의 복구 여부, 신칸센과 고속도로 및 주요도로 피해와 복구 정도, 과거 지진의 교훈, 피난소 운영실태, 민관 연계 정도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또 시정촌과 경찰, 소방서 등이 제대로 잘 작동됐는지, 기업경제활동은 잘 되고 있는지, 농업 분야 피해는 어떤지, 문화재는 지진대책을 잘 갖추고 있는지, 운동장과 체육관 등 스포츠계는 어떤지 등을 집중 조명했다."

- 신문사에서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작년과 재작년, 우리 신문은 진도 7의 강진이 올 수 있다는 예측 보도를 했다. 그러나 단발적이었다. 연속으로 경종을 울리는 보도가 아니었다. 기사를 쓰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오지 않겠지'한 것이다. 제일 반성 되는 점이다."

- 정부와 행정당국의 대응을 평가하자면?
"지진이 예측됐음에도 제대로 대응이 안 됐다. 예를 들면 처음 흔들림이 있고 난 뒤에 경고음이 울렸다. 거꾸로 됐다. 이번 지진의 경우 활단층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사전 예측 가능했고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 지진이 올 수 있다는 전제에서 대처 준비를 해야 했지만, 경제, 의료복지 전 분야에 걸쳐 준비가 매우 부실했다.

지금도 여전히 지진에 대한 정확한 예측 정보가 부족하다. '지진이 어디서 언제 오는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이는 남아 있는 큰 문제이자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신문사도 준비를 게을리했다. 기자들의 헬멧(안전모자)도 모자랐다. 헬멧 중에는 30년이 된 것도 있었다. 부끄럽다."
밭 한가운데가 지진이 관통했다.
 밭 한가운데가 지진이 관통했다.
ⓒ 구마니찌 신문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지진으로 구마니찌신문사도 건물도 피해를 입었다.
 지진으로 구마니찌신문사도 건물도 피해를 입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 지진 피해액은 어느 정도로 추정하고 있나?

"현재 7000억 엔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어서 정부에 특별재해 지역 지정,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8월 말 현재 구마모토지진 피해복구를 위한 특별재해지역 지정과 특별조치법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기자 주)"

- 지진 후 범죄가 심해졌다는 얘기도 있던데 사실인가?
"범죄가 있었다. 우리도 도난과 성폭행 사건을 보도했다. 여러 건의 빈집털이, 피난소에서의 절도 등의 범죄도 있었다. 다만 큰 범죄는 없었다. 동물원에서 사자를 도난당했다거나, 범죄가 극심하다는 인터넷보도는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이다."

- 어떤 자세로 보도하고 있나?
"밀착 취재를 통해 '이런 점은 잘됐지만 이럼 점은 부족하거나 무방비였다'는 점을 찾아내 알리려 애쓰고 있다. 이것이 관심을 두고 애정을 보내준 전국의 많은 일본 국민에게 은혜를 갚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면?
"아직도 지진은 진행형이다. 지진이 계속되고 있다. 또 올 수 있는 다음 지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언론의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 구마마모토현과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충남도와 충남도민들에게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많은 걱정과 격려에 힘이 난다(지난 6월 15일과 16일, 구마모토 시민단체와 교류하고 있는 충남지역 시민단체 대표단 5명이 구마모토 지진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태그:#구마모토 지진, #구마모토신문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