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가득한 추석이 다시 찾아왔다. 뿔뿔이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오랜만에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과 정담을 주고받는 한가위. 정겨운 명절 밥상에 빠지지 않는 반찬(화젯거리)이 바로 정치와 경제 등 사회 전반의 굵직한 이슈다.
올 추석에는 온 국민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지진과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의 추억이 첫 화두로 등장할 것 같다. 비 한 방울 없는 뜨거운 뙤약볕에서 타들어 가는 농작물을 바라만 보아야 했던 안타까운 사연에서부터 간담 서늘하게 했던 지진과 북핵 문제, 툭하면 언론에 터지는 고위 공직자와 재력가의 비리 사건들까지.
이외에도 전 지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드 배치 문제와 갈수록 심각해지는 4대강 오염 실태, 눈덩이처럼 커지는 나랏빚,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민생 경제 등이 올 추석 밥상머리에 오를만하다.
빠질 수 없는 게 또 있다. 임기 1년 반 남은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년 반 동안 남긴 어록과 무참히 폐기한 수많은 공약, 여전히 해명하지 않은 측근 비리,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한 보수신문과의 전면전, 갈수록 더하는 불통과 오기 등. 여기에 레임덕 현상까지 더하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마무리는 자연스레 차기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평가로 이어질 것이다.
'박근혜 띄우기' 주력했던 <조선>, 갑자기 돌변한 이유?
이 가운데 최근 청와대와 <조선일보>와의 날선 대립은 추석명절 밥상머리에서도 갑론을박을 불러 모을 전망이다. 우병우 민정수석 비리 의혹을 보도한 것으로 촉발된 청와대와 <조선>의 격돌은 사실상 정권 말기에 접어든 대표 보수신문의 '박근혜 때리기'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끈다.
지난 제18대 대선 과정에선 '안철수·문재인 때리기와 박근혜 띄우기'에 주력했던 신문이 바로 <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제17대 대선 때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를 향해 "BBK의 실소유주이며 주가조작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공세를 퍼부었지만 이를 외면했던 게 바로 <조선> 아니었던가.
정권 말기만 되면 입장이 바뀌는 신문이기에 의례히 '그러려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근에 보여준 날선 대립은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조선>이 염두에 두고 있는 차기 인물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는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주력했던 <조선>을 비롯한 보수신문들이 정권의 임기가 끝나가자 다시 날을 세우며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보면 '권불5년'은커녕 '카멜레온'이란 소릴 들을 만도 하다.
일명 '사자방'(4대강 부실비리, 자원개발 난맥상, 방위산업 비리) 주범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청문회 요구가 비등한 것도 이와 맥락을 함께 한다. 이명박 정권 5년을 복기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국민들은 5년 내내 양두구육(겉보기에만 그럴듯하고 속은 변변하지 않다)의 흰소리를 신물 나게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과 경제를 살리겠노라'며 자가당착의 논리로 22조 원의 혈세를 낭비하면서 국민을 5년 동안 속였다. 방송장악과 라디오 주례연설 등을 통해서 말이다.
MB표 '4대강', 손뼉 치던 언론과 학자는 어디로
필자는 2013년 1월 23일 <오마이뉴스>에 '22조 원짜리 '대국민 사기극', 재앙은 이제부터다'란 글에서 허망하기 짝이 없는 MB표 '4대강 흰소리' 시리즈 8가지를 소개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얼마나 국민들을 우습게 여겼으면 백주대낮에 대통령이란 사람이 이런 소리를 서슴없이 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4대강은 사시사철 맑은 물이 넘쳐흐르는 강,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강,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강이 될 것""4대강이 다 되고 나면 모두가 수긍할 것""4대강, 200년만의 대홍수 대비 설계 덕분, 상습 침수지 피해 면할 수 있었다.""4대강이 살아나면 대한민국 방방곡곡이 골고루 살아날 것""자전거로 4대강 길 달리면 소통될 것""녹조현상, 가뭄과 폭염으로 불가피... 4대강과 무관""젊을 때부터 '4대강 정비' 생각했다.""4대강 안 했으면 한국 물난리 날 뻔"
대통령이 4대강에 대해 말만 하면 보수언론은 대서특필했고, 일부 어용학자들과 관계 공무원들은 박수를 치며 4대강 예찬론에 가세했다. 극심한 가뭄으로 전국이 타들어가고 있을 무렵에도 대통령과 보수언론은 외국에서까지 4대강 예찬론을 펼치고 다닐 정도였다. 이 바람에 수자원공사는 MB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이후 부채 증가율이 급증했고, 2013년 기준으로 13조 원이 넘는 빚더미를 끌어안아야 했다.(공공기관경영정보 시스템 알리오)
다행히 MB정권 말에서야 4대강 사업이 한 편의 거대한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났지만, 박근혜 정부는 임기 3년 반 동안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이나 원인 규명에 눈과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언론과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거대한 수질오염 확산 외에도 4대강은 투입된 22조 원뿐만 아니다. 앞으로 유지보수 등을 위해 들어갈 혈세가 수두룩하다.
날로 악화되는 수질은 국민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이미 변형된 강과 주변의 자연·생태계는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4대강 책임을 묻는 것을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이렇게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바보야! 문제는 대통령의 정치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북한의 5차 핵실험과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문제 등을 거론하며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는 지난 7일 국회에서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해결의 시작"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책임론을 강조했다.
국가 채무가 역대 최고라는 주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7일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군포시갑,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은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17년 정부예산안 및 부속서류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 적자성 채무, 순국가 채무 모두 역대 최고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국민 1인당 부담액을 기준으로 보아도 가장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7년 정부예산안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임기 5년 동안 국가채무는 239.6조 원, 적자성 채무는 177.5조 원, 순국가 채무는 174.8조 원 증가했다는 것.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하면 2017년 정부 예산안의 1인당 국가채무는 1천339만 원, 1인당 적자성 채무는 780만 원, 1인당 순국가 채무는 685만 원으로 박근혜 정부 임기동안 각각 453만 원, 340만 원, 336만 원 증가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증가한 채무와 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 증가한 채무가 어마어마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말로만 민생경제를 외칠 뿐 역대 정부 최고로 나라의 빚이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60세 이상 노인에게 월 20만 원 기초연금 지급''의료비 본인부담 상한 50만 원으로 인하''국민적 합의 없는 민영화 추진 없을 것''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국가 부담''초등학교 온종일 돌봄 교실 운영''소득연계 맞춤형 반값 등록금''군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무상보육 시행'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지 8개월여 만인 2013년 10월 경제민주화국민본부 등 19개 시민사회단체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약을 파기하고 사죄도 반성도 없는 현 정부에 범국민투쟁을 선언한다"고 밝히면서 예로 든 파기 공약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출발부터 거짓말로 시작했음이 드러난 꼴이다.
'이명박근혜', 10년으로 충분하다
이뿐이 아니다. 정부조직법 개정 논란, 인사검증 문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으로 정국이 뒤숭숭하던 시기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정부의 안일하고 무능한 수습에 실망과 분노가 증폭됐다.
우리나라 대통령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쥔 이가 민주주의 국가에 또 있을까.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짧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다. 같은 부류의 무능한 대통령을 또 만나면 자그마치 10년 동안 이런 운명이 이어진다. 나라를 그르칠 수 있는 건 시간문제다. 정권 재창출을 연이어 하게 되면 20년, 30년 동안 나라가 어떻게 될까. 과거 유신독재와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반추해보자.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런 음습한 과거로 회귀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복습이라도 하듯이.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이들의 잇따른 낙마, 청와대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논란, 성완종 리스트 파문, 메르스 사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북한 핵실험과 사드배치 문제 등. 국정운영의 무능과 무책임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바람 잘 날 없었다. 남은 임기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곳곳이 실패로 얼룩져 있다. 이런 실패한 정권이 내년 대선에서 또다시 정권 재창출을 하겠다고 외치면 밀어줄까. 정치 실패 학습은 '이명박근혜 정권' 10년 만으로도 충분하다.
"윤리적 기반을 잃은 정치야말로 국가의 국민의 공공선에 해악을 끼치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미국의 유명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왜 도덕인가?>에서 정치인들의 덕목으로 '윤리'를 강조했다. 윤리적 덕목이 부족한 정치인들을 만나는 건 불행의 씨앗이자, 국가와 국민을 망하게 하는 화근임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대통령이 이러한 덕목을 상실한다면 국가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하다. 더는 국민을 우롱하고 속여서는 안 된다. 국민도 이제는 정치를 바라보는 혜안이 밝아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