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를 맞아 부모님이 사시는 담양 시골집에 왔다. 명절임에도 연로하신 어머님은 좀처럼 양봉 벌통 곁을 떠나지 못하신다. '흑등말벌' 때문이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아니 사람이 뻔히 지키고 있어도 녀석들은 끊임없이 날아든다. "나 잡아봐라~" 하며 놀리는 것 같다.
흑등말벌은 벌통 앞을 휘휘 돌다가 사냥을 다녀온 일벌 중 한마리를 잽사게 채어 달아나기 일쑤다. 흑등말벌이나 양봉의 일벌이나 모두 '벌'인데도 말벌은 일벌을 잡아 먹는다. 손가락 크기만한 장수말벌의 경우는 한마리가 벌 한통 결딴내는 건 일도 아니다. 녀석에게 급소를 쏘이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무서운 놈들이다.
요즘엔 장수말벌이나 흔히 '대추벌'이라 칭하는 토총 말벌보다 외래종 '흑등말벌'이 양봉하는 분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다. 옛날 저수지에 그 흔하던 붕어, 피라미따위의 민물고기가 거의 사라지고, 이젠 어느덧 외래산 배스가 주인행세를 한다. 한데 말벌의 세계에서도 외래종이 토종을 밀어내고 이 땅을 장악한 것 같아 씁쓸하다.
부모님을 대신해 벌통 곁에서 파수를 섰다. 흑등말벌은 5~10분 간격으로 계속 침공하였다. 두어 시간동안 약 삼십마리를 잡았다. 놓친 놈들도 적지 않았다. 이 정도면 가히 흑등말벌과 벌이는 전쟁이다. 매일 이처럼 고단한 전쟁을 치르고야 겨우 꿀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시중 꿀값이 너무 헐하지 않나 싶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해 어스름이 질 무렵에야 흑등말벌과의 치열한 하루의 사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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