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겠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했을 법한 상상이다. 아빠나 엄마가 된다는 기쁨과 함께 은근슬쩍 따라오는 걱정이다. 아이가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오면서 대부분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게 현실이 된다. 발달 장애(자폐증, 지적 장애) 같은 난치병이면 정말 심각하다.
이런 난치성 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를 둔 부모의 삶은 고통스럽다. 잠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마음 놓고 외출 한 번 할 수 없다. 학교에 갈 나이가 돼도 보낼만한 학교가 변변치 않다. 특수학교나, 일반 학교에 있는 특수반 정도다.
치료기관 찾기는 더 어렵다. 물어물어 마땅한 치료기관을 찾아도 2~3년은 기다려야 자리가 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다. 보낼 학교도 더는 없고, 치료 기관 찾기도 더 힘들다. 치료기관이 대부분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취업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 촉진을 위해 '장애인 의무고용' 같은 정책을 추진하긴 하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장애인 취업을 힘들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그럼, 성인 장애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부모가 평생 끼고 살아야 할까? 부모가 먼저 죽으면 또 어쩌고!
해법을 찾기 위해 부모들이 직접 팔을 걷었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아이의 미래와 함께 부모 자식이라는 강렬한 인연으로 묶인 자신의 운명까지 스스로 개척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희망터 사회적 협동조합(아래 희망터)'이, 바로 그런 곳이다.
희망터 주축은 난치성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아들의 부모 28명이다. 뜻있는 후원자 11명이 힘을 보태 39명으로 조합을 꾸려 지난 3월 창립총회를 열었다. 조합원 1인당 50~500만 원을 출자해서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될 작은 카페도 만들었다.
이곳 카페에서 아이들한테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법도 가르치고 빵 굽는 방법과 천연비누 만드는 방법도 교육한다. 교육으로, 장애아들이 홀로 설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난치병 청년 홀로서기, '슈퍼 맘'이 나섰다
지난 22일 오후 '희망터'를 찾아 장애아 부모들의 꿈인, '우리 아이 홀로서기'가 가능한지 알아봤다. 카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좀 초라하다 싶을 정도로 소박했다. 상업적인 냄새가 덜 풍긴다고 해야 하나! 현대적인 느낌의 흰색 톤과 나무색으로 단장해 담백한 분위기가 풍겼다.
유리문을 밀고 카페에 들어서자 양희순 희망터 상무이사와 문경식 후원 조합원(희망 세움터 대표)이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희망 세움터는 난치병 아동 보호·지원 기관이다. 희망터 옆에 있다. 이곳에서 만난 장애아 부모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게 '희망터'다. 양 상무는 "희망 세움터에서 보호받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갈 곳이 없어지게 되고, 그동안 배우던 것도 배울 수 없게 돼, 그 배움과 보호를 연장하기 위해 세운 게 희망터"라고 소개했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홀로서기, 가능한가?'라고 다짜고짜 묻자 양희순 상무, 잠시 주저하는 듯하다가 이렇게 자신 있게 대답했다. 곧바로 '근거는?' 이라고 묻자.
"3월부터 바리스타와 제과·제빵, 요리, 공예 수업을 했어요. 7월부터는 아이들 소질이나 기호에 맞는 것을 선정해 개인 지도를 하고 있는데, 그랬더니 아이들이 스스로 일머리를 터득하는 거예요. 빵을 구울 때가 되면 알아서 오븐 스위치를 켜고, 빵 판도 닦고요. 그래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물론 시간은 좀 걸리겠죠. 한 3~4년 정도면 훌륭한 바리스타나 제빵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일반 회사 취업도 가능하겠느냐?'는 물음에는 약간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다 배운 다음에도 많은 연습을 거쳐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 대부분 발달 장애라 자폐 증세가 있고, 솔직히 지능도 떨어지고요. 특히 언어능력이 많이 떨어지죠. 이 아이들이 일반인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좀... 의무고용제 때문에 일반 기업에서 받아 주긴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잘 안 되는 형편이에요. 고용한 다음에 출근을 제대로 안 시키는 회사도 있고, 일하는데 걸리적거리니 아예 나오지 말라고 할 때도 있대요. 아직은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안 되는 거죠."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장애인들이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일까? 해답은 문경식 후원 조합원(희망 세움터 대표)이 내놓았다.
"그래서 몇 년 후에 목 좋은 곳에 카페(희망터 2호점) 하나를 더 차릴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아이들이 일할 공간을 직접 만드는 거죠. 엄마들이 매니저를 해야 하고요. 거기서 잘하는 아이들은 진짜 취업을 내보내고요. 공공기관이 도와주면 좀 더 수월할 거 같아요. 경기도 교육청 청사 안에 장애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이 있다고 들었어요. 가까운 의왕 여성회관에도 있고요. 그런데 아직 안양시에는 그런 게 없어요. 요청은 해봤는데, 그리 긍정적인 답변을 못 들었어요." 장애아 엄마로 살려면, 아프지도 말아야
양희순 상무 얼굴은 무척 편안해 보였다. 말씨는 또 어떻고! 밝고 부드러워 그늘진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치열했다. 인생 가장 중요한 곳에 자신이 아닌 15살 딸이 있는 듯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아마도, 장애아를 두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부모가 겪고 있는 아픔이리라.
"아이한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어서, 몸이 아파도 정말 급한 일이 있어도 마음 놓고 다녀올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병원에서 검사를 받다가 아이가 (학교나 보호기관에서) 돌아올 시간이 돼서 건사를 멈추고 그냥 나온 적도 있어요. 제 아이를 바라보는 따가운 뭇 사람들 시선 때문에 힘든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나라는 이런(난치성) 장애 진단 받아도 치료할 곳을 찾기조차 힘들어요. 누가 알려 주지도 않고요. 부모가 다 알아서 해야 하는데, 운 좋게 치료 센터 찾아도 자리가 없어서 한참을 기다려야 해요." 양 상무 말대로, 장애아 부모들은 지금도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고 있었다. 협동조합 운영에서 아이들 교육까지 모두 부모들 몫이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저희가 가르치고 있어요. 언어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 오셔도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어요. 아이들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요. 그래도 엄마는 좀 알아들어요. 그래서 엄마들이 바리스타, 제빵사 자격증을 따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대화가 끝나갈 때쯤, 한 아이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좀 느리긴 하지만, 그런대로 능숙하게 기계를 조작해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 잘 생긴 19살 청년이었다. 말을 하기 전까지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없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어 으으어~"하며 웃었는데, '안녕하세요'란 말이었다.
청년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에서 가능성이 느껴졌다. '저 정도면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다. 더불어 '관심과 도움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