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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335m 포이오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눈을 뜨니 5시 30분이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데 어느 부부는 헤드램프를 켜고 출발한다. 이렇게 일찍 출발하면 숙소에 낮 12시 이전에 도착하니 더 편할 수도 있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붉어지니 그 풍경이 장관이다. 순례자들이 하나, 둘 나와 일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바르(bar) 주인이 나와 아침 준비를 한다. 나는 배낭을 준비하여 야외 의자에 배낭과 간식 봉투를 올려 놓고 일출 모습을 몇 장 더 찍었다.

잠시 후 배낭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보니 간식 봉투가 사라지고 없다. 사진을 찍는 곳이 의자가 있는 곳에서 30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가져갈 사람도 없는데 이상하다. 주변을 살펴 보니 간식 봉투의 비닐 조각이 의자 주변에 조금 남아 있다. 바르 주인은 큰 개를 두 마리 기르고 있는데, 그중 한 마리가 내 간식을 가져가 버린 모양이다. 바르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높은 지대를 걷기 때문에 시야가 확 트여서 좋다.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경치는 온통 초록색이어서 눈이 시원하다.

포이오 여명
 포이오 여명
ⓒ 이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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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프리아로 가는 길
 폰프리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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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프리아의 작은 성당
 폰프리아의 작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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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초원
 싱그러운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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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초원
 싱그러운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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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작은 마을을 지난다. 이 작은 마을에도 성당은 있다. 순례길 옆의 작은 성당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포이오에서 3시간 정도 걸어 트리아카스테라 마을에 도착했다. 많은 순례자들은 여기에서 숙소를 정한다. 트리아카스테라 마을을 지나니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강을 따라 걷는 길인데 7Km를 더 걸어야 된다. 우리는 거리가 짧은 오른쪽 길을 선택하였다. 오늘 아침 개에게 간식을 빼앗겨 친구의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오후 1시에 푸렐라 마을에 도착하여 바르에서 커피와 빵으로 점심을 먹었다. 푸렐라에서 40분 정도 더 걸어 우리의 목적지 칼보르에도착하였다. 도착하여 보니 칼보르는 아주 작은 마을이어서 마트도 아주 작아 필요한 것을 살 수가 없다. 우린 여기서 7Km 정도 떨어진 사리아까지 가기로 했다. 오후의 뜨거운 태양 아래 2시간을 더 걷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러나 좋은 알베르게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걷는다. 

친구와 나는 천천히 걸으며 서로 가정의 애로 사항을 나눈다. 어릴 때 애틋하게 여기며 자라온 형제 자매들, 각자 결혼하고 살면서 한두 가지씩 갈등을 겪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하는 형편이 서로 비슷하다. 갈등이 생겨나면 아내 편을 들기도, 형제 편을 들기도 어렵다. 친구 이야기는 그래도 아내 편을 들어야 가정이 편하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사리아에 도착하였다. 사리아에 도착하여 카미노 어플을 통해 지자체 지원 알베르게를 잡았다. 성당 옆에 작은 알베르게가 있다. 우린 샤워를 하고 빨래까지 널은 후 쉬었다가 시내 산책을 나가기로 하였다.

산속 마을 풍경
 산속 마을 풍경
ⓒ 이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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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이정표
 순례길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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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아카스테라 마을 풍경
 트리아카스테라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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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 마을 풍경
 사리아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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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순례객들
 바르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순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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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산책을 나가기 전에 식당으로 나가 밥을 해 먹을 수 있는지 알아 보았다. 전기렌지가 있고 작동하여 보니 문제가 없다. 마트에 들러 고기를 살려고 보니 삼겹살은 없고 큰 닭다리가 보인다. 우린 닭다리를 2개 사서 마늘, 양파를 넣고 삶아 먹기로 하였다. 식당으로 돌아와 닭을 삶으려고 냄비를 찾으니 냄비가 없다. 관리인에게 물어 보니 냄비는 없다는 것이다.

친구는 시내에 가서 싼 냄비를 하나 사 오겠다고 다시 나간다. 나는 알베르게 앞에 나가 주민을 만나면 냄비를 빌려 보기로 한다. 그러나 순례객들만 보이지 주민은 만날 수가 없다.  친구도 그릇을 파는 가게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우린 음식 해 먹는 것을 포기하고 저녁을 사먹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침대로 올라가 쉬려고 하는데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집에서 냄비를 가져 오셨다. 우리가 냄비가 없어 요리를 못하고 있는 줄 알고 집에서 냄비를 가져 오신 것이다.

우린 "그라시아스" 인사를 하고 닭다리를 삶았다.  며칠 전에 만났던 일본인도 만났다. 요리를 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 엄지 손가락을 세운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을 먹고 마을 산책을 나섰다.

스물여덟번째날,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사리아에서 잠을 잘 자고 새벽에 눈을 뜨니 5시 30분이다.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잠시 마을을 산책한다. 산책을 마치고 침대로 돌아가 배낭을 정리하고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오늘도 배낭을 메고 출발한다.

언덕길을 오르니 사리아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마을 끝에 공동 묘지와 성당이 있다. 스페인의 공동 묘지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도 이런 장례 문화를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풍광 좋은 곳은 어김없이 묘지가 있다. 얼마 전 대전의 계족산을 올라갔는데 정상에 올라서니 묘지가 있었다.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올라왔는데 묘지를 참배하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고향의 산자락 잔디밭을 한 삽 뜨고 거기에 유골을 묻어 달라고 하였다. 공동 묘지를 지나니 바로 숲길이다. 개울을 건너니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등에 땀이 흐를 즈음 오르막이 끝나고 다시 평지길이다. 마을 입구 바르에서 커피와 빵을 먹고 쉬었다.

다시 길을 걷는다. 오늘 걷는 길은 대부분 숲길이다. 1시간 정도 걸으니 다시 마을이 나온다. 브라질에서 온 사위와 장인도 바르에 앉아 맥주와 빵을 먹고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같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마을을 벗어나 잠시 걸으니 순례길 옆에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기념 배지 2개를 사고 출발하려는데 내 스틱이 없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 바르에서 빵을 먹고 출발하며 스틱을 놓고 온 것이었다. 다행이 거리가 멀지 않아 되돌아가서 스틱을 찾아왔다.

여기서 산티아고까지 98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산티아고는 다 와 가는데 마음은 가볍지 않다. 28일동안 이 길을 걸으며 용서하고, 이해하고, 모든 것을 내려 놓기로 하였는데 현실을 생각하면 변한 게 없다.

사리아 새벽 풍경
 사리아 새벽 풍경
ⓒ 이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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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 새벽 풍경
 사리아 새벽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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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 공동 묘지
 사리아 공동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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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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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풍경
 순례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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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까지 100Km 남았다는 표시가 있는 이정표
 산티아고까지 100Km 남았다는 표시가 있는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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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생일도 잊고 순례길만 걸은 나, 정말 미안했다

터벅터벅 길을 걷는다. 아무 생각도 없이 길을 걷다 보니 멀리 아름다운 강과 마을이 보인다. 우리가 묵어갈 포르토마린 마을이다. 강 위에 있는 마을이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는데 주머니속의 전화기에서 밸이 울린다. 시골은 인터넷이 안 되는데 시내에 접어들면서 인터넷이 되는가 보다.

전화를 받아 보니 아내다.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 아내가 "오늘 무슨 날인줄 알아?" "무슨 날인데?" "이젠 아내 생일도 잊었구먼" 매일 일어나면 오늘 어디까지 걸을지, 숙소에 도착하면 무얼먹지? 이런 생각만 하며 아내의 생일도 잊어버린 것이었다.

"미안, 생일 축하해요."

아름다운 미뇨강을 건너 지자체 지원 알베르게를 찾았다. 샤워를 마치고 친구와 바르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 비싼 것은 아니라도 아내의 선물을 골랐다. 하얀 보석이 박힌 조가비를 10유로 주고 샀다.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아내에게 전송하니 곧 답이 왔다. 생일 선물 고맙다고.

미뇨강 건너 포르토마린 마을 풍경
 미뇨강 건너 포르토마린 마을 풍경
ⓒ 이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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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 마을 풍경
 포르토마린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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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 마을 풍경
 포르토마린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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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은 알베르게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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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 마을 풍경
 포르토마린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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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 마을의 성당
 포르토마린 마을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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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 마을을 산책했다. 강가에는 그림같은 집들이 많다. 대부분 사설 알베르게이다. 많은 순례객들이 경치 좋은 알베르게에서 묵고 있다. 슈퍼에 들려 내일 먹을 점심과 간식 거리를 샀다. 숙소로 돌아와 일기도 쓰고 휴식을 취한다. 이제 4일만 걸으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기쁨도 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 어떤 기분일까 그게 궁금하다. 한편 두렵기도 하다. 32일 동안 힘들게 걷고 나서 얻은게 아무 것도 없다면 어떻게 하나. 눈앞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온 나. 순례길을 걷는 목적은 나를 찾아서?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태그:#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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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취미가 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산행기록 등을 기사화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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