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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가한 50인의 수집가 벽에는 그들이 살아온 이력과 수집품들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가한 50인의 수집가 벽에는 그들이 살아온 이력과 수집품들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 오문수

지난 1일 서울도서관을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별별수집가 50명이 모은 작품 소개와 별별수집가 8인의 소장품, 그 시절 서울을 기억하는 따뜻한 영상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고물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옛날 물건' 혹은 '헐거나 낡은 물건'을 지칭한다. 생활유산이나 문화재를 의미하던 이 단어는 이제 헐거나 낡아 귀찮은 존재가 된 물건을 일컫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고물의 가치가 없어지면서 그 고물에 담긴 추억과 역사는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그 고물에 담긴 기억의 시그널은 서로 공유되지 못한 채 각자의 다락방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명동양장점 모습 앞에 선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 "맞아! 그땐 저렇게 맞춰입었는데---"
명동양장점 모습 앞에 선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 "맞아! 그땐 저렇게 맞춰입었는데---" ⓒ 오문수

 수도없이 마라톤을 달린 석락희(왼쪽)씨가 자신이 받은 메달 앞에 섰다. 1986년 <소년중앙> 별책부록을 좋아했던 치과의사 김형규(오른쪽)씨는 본업 외에도 방송인, 만화애호가로 만화책 1만권을 소장하고 있다
수도없이 마라톤을 달린 석락희(왼쪽)씨가 자신이 받은 메달 앞에 섰다. 1986년 <소년중앙> 별책부록을 좋아했던 치과의사 김형규(오른쪽)씨는 본업 외에도 방송인, 만화애호가로 만화책 1만권을 소장하고 있다 ⓒ 오문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인기비결은 그 시대에 한창 유행했지만 지금은 없는 물건, TV프로그램, 대중가요를 다시 접하게 해준 것이었다. 특히 극중 정봉(안재홍)의 우표수집 취미나 성균(김성균)이 간직한 옛 물건에는 시청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기억이 묻어있었다.

서울문화재단이 벌이는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은 '박물관도시 서울' 프로젝트의 하나로, 서울시와 함께 서울문화재단이 2015년 12월 4일부터 2016년 12월 30일까지 진행하는 캠페인이다. 행사를 기획했던 서울문화재단 문화자원기증센터 최문성 팀장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유를 말했다. 

"국보나 문화재로 지정된 것들은 박물관에 전시돼 있지만 일반시민들이 소소하게 여겨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어요. 소소하고 작은 것들도 중요시하자는 가치 캠페인입니다. 이곳에 와보면 당시의 트렌드를 볼 수 있잖아요."

서울문화재단이 서울도서관에서 벌이는 '그 시절 그 날의 널 기억해' 행사(9.27~10.8)는 2층부터 4층 계단에서 전시회를 연다. 90년만에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는 6층 특별전시실에서는 서울의 별별수집가 8명이 손수 모은 전시물들을 직접 소개한다. 다음은 층별 전시내용이다.

 1970년대 연극프로그램을 모은 김혜자씨가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1970년대 연극프로그램을 모은 김혜자씨가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김혜자씨가 1974년 4월 명동 국립극장에서 관람한 김동리 원작의 <무녀도> 관람요금은 A석이 500원이었다.
김혜자씨가 1974년 4월 명동 국립극장에서 관람한 김동리 원작의 <무녀도> 관람요금은 A석이 500원이었다. ⓒ 오문수

▲삐삐가 스마트폰에게 보내는 시그널(2~3층계단) ▲ 88올림픽 기념우표가 SNS에게 보내는 시그널(2~3층계단) ▲리어카 테이프가 MP3에게 보내는 시그널(3~4층계단) ▲ 못난이 삼형제가 뽀로로에게 보내는 시그널(3~4층계단) ▲  명동 양장점이 동대문 패션타운에 보내는 시그널(4층) ▲비밀의 다락방 '서울의 별별수집가 특별전'(6층 특별전시실)

1970년대 연극 프로그램을 모은 김혜자씨의 연극관람입장권 <산불>은 1970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것이다. 이웃해 있는 <무녀도> 연극공연관람 입장권은 1974년 것으로 A석 500원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김혜자씨가 입을 열었다.

"없는 살림에 연극 보러 다닌다고 부모님한테 야단 맞았어요"

당시 내 대학교 입학금이 5만 9천원 하던 시절인지라 연극관람입장권은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바로 옆 무선통신기기 전시실 수집가 김평규씨를 만나 통신관련기기를 수집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통신기기 관련사업을 하며 23년 동안 통신기기를 모은 김평규씨가 자신이 모은 수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통신기기 관련사업을 하며 23년 동안 통신기기를 모은 김평규씨가 자신이 모은 수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삐삐숫자 암호들을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들어있다. '98258'은 '굿바이 오빠', '0000'은 '당신은 나의 0순위, '1010235'는 '열열이 사모한다'
삐삐숫자 암호들을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들어있다. '98258'은 '굿바이 오빠', '0000'은 '당신은 나의 0순위, '1010235'는 '열열이 사모한다' ⓒ 오문수

"제 본업이 통신기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모토로라 카폰 한 대가 250만 원이었어요. 트렌드가 보이잖아요? 삐삐 - 시티폰(단방향) - PCS(양방향)으로요. 돌이켜보면 그 때 통신기기들만이 전할 수 있는 소통의 언어가 언제 사라질 지 몰라서 그 순간의 역사를 지켜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니아가 세상을 바꾼다

서울을 모아줘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 중에는 자신의 수집력을 자랑하고 싶은 '덕후'도 있다. 한영수문화재단의 한선정 대표는 아버지(고(故) 한영수) 작가의 1950~60년대 사진 1만 1000장과 사진 관련 예술서적을 1000권이나 소장하고 있다.

수집가, 여행작가, 수필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현태준씨는 옛 껌종이부터 장난감, 만화책, 전단지 등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를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수집한 물품이 60만점 정도인데도 전국 각지의 장난감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1980년대 우표를 많이 모은 이지혜씨, 마이클 잭슨의 애장품만 200여점 모은 자유손씨, 본업인 치과의사에 방송인, 만화애호가이면서 우표 수집가로 알려진 김형규씨는 만화책 1만권을 가지고 있다. 때마침 옆자리에는 나이 들어 뵈는 아주머니들이 전시공간을 돌아보며 대화하고 있었다.

 서울의 옛모습을 영상으로 관람하는 시민들
서울의 옛모습을 영상으로 관람하는 시민들 ⓒ 오문수

"옛날에는 저렇게 명동양장점에 가서 옷을 맞춰 입었는데…"
"예! 맞아요!"
"사진을 보면 당시 어렵게 살았지만 표정은 밝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요해졌지만 찌들린 얼굴이에요." 

마니아가 세상을 바꾼다. 물건 하나하나에 당시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와 흔적이 남아있는 서울도서관을 찾아가 옛 추억을 되살려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서울도서관#서울문화재단#고물#박물관도시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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