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며 비염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를 데리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진료를 마쳤을 때 원무과 직원이 그동안 많이 궁금했다면서 직업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진료 대기 중에도 항상 책 읽는 사람은 눈에 띄는 법"이라 물어봤다고 했다.
그간 어떤 책을 들고 병원에 갔는지 모르지만, 그날 진료 대기 중에도 푹 빠져 있었던 책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였다.
벨라루스 작가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예비치는 증언을 기록하며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새로운 장르를 구현한 장본인이다.
다년간 200여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일반 논픽션 형식으로 옮겨 적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다보면 어떤 명작, 명화보다 진한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여성의 눈'으로 재현한 전쟁제2차 세계대전 중에 소련에서는 백만 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하여 싸웠다. 전쟁을 겪은 여성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변했으며,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건 어떤 체험이었을까?
이 책은 전쟁 회고담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그 많은 사연과 사건과 눈물로 가득 찬 이야기를 꼼꼼하게 수첩에 적고 녹음테이프만 몇 개씩 쌓아가며 기나긴 하루를 보냈는데도 기억에 남는 건 고작 몇 마디에 불과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이런 말이다.
"마음이...너무 아파.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었는데,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 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내 키를 재보았는데... 그동안 10센티미터나 키가 컸더라니까..."
남성 중심의 승리와 공훈과 전적을 이야기하고, 전선에서의 전투와 사령관이니 병사들 이야기가 아닌, '여자'들의 이야기는 생소하지만 고통이 묻어난다. 신문이나 책 따위에서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는 진솔한 이야기,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삶에서 뽑아낸 진짜 고통과 아픔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시간에 의해 다듬어지지 않은 꾸미지 않은 이야기다. 고통에 귀 기울이고, 전쟁에 대한 진실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책을 써야 한다고 다짐했던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것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은 말도 없이 더 큰 고통을 당한다."
알렉시예비치는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터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한다. 전쟁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역사가로 감정을 추적한다.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 살고 구체적인 사건을 겪은 구체적인 사람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인간을 들여다보며 글을 쓴다.
작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인생을 다 살아버린 듯한 고통에 던져진 이들이다. 그들에겐 전쟁은 지나치게 내밀한 체험이라 죽음에 대한 사유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쟁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야 했던 소련의 모범생, 유물론자도 신을 찾게 만들었다.
"전쟁 전에 나는 유물론자였어. 무신론자. 그러니까 선생님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소련의 모범생이 전선으로 간 거야. 그런데 그곳에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지... 전투가 있기 전이면 언제나 기도를 했어. 내 기도는 단순했어... 내 기도는... 살아서 엄마 아빠한테 돌아가는 것. 오직 그 한 가지였어. 우리 엄마는 이미 자식을 셋이나 전선으로 보내놓고 모진 세월을 견디고 계셨거든."
너무 어린 나이에 전쟁에 참여했던 까닭에 소녀들은 남들에겐 평범한 것들을 새로 배우고 기억해 내며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소녀들은 힘들 때마다 옆집 여자에게 달려가고 엄마에게 달려가고, 그랬다. 4년간 참전했던 소녀는 4년 동안 꽃이고 새고 전혀 본 기억이 없다며 이렇게 회상한다.
"당연히 꽃도 피고 새도 울었을 텐데. 그래, 그래... 참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정말 전쟁영화에 색이 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모든 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 색이지."
하루라도 전쟁을 잊고 살고 싶다
작가는 숱한 인터뷰를 진행하며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고백한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생명을 주는 존재는 전쟁터에서 확실히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고백한다. 사람은 자기도 자기 마음을 모를 때가 많다며, 그런 고초를 겪었는데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먹먹해진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말줄임표'를 만나게 된다. 중간 중간 말이 끊기고 목이 메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었던 것. 이런 증언들이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한번은 겨울에 우리 부대 옆으로 독일군 포로 행렬이 지나갔어. 포도들은 찢어진 옷으로 머리를 싸매고, 불에 타 구멍이 숭숭 뚫린 외투만 걸친 채 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어. -중략- 그 행렬 속에 병사 하나가 가는데... 어린 남자애였어... 울었는지 뺨에 눈물 자국이 얼어 있더라고... 그때 마침 나는 손수레에 빵을 담아 식당으로 가져가던 중이었어. 그 아이가 빵수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거야. 옆에 있는 나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지 수레만 뚫어져라 바라봤지. 빵이다... 빵... 나는 큰 빵 하나를 집어 들어 좀 떼어서 그 아이에게 줬어. 아이가 받긴 받는데... 어리둥절한 것 같았어.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 그래, 믿을 수가 없었겠지. 나는 행복했어... 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뻤어.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도 많이 놀랐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전쟁 중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이어야 했던 시절을 괴로워했다. 그래서 전쟁터에서는 뭔가 하나 정도는 자신에 대한 기억을 붙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사람다울 때다.
"뭔가 하나쯤은... 아직 자신이 사람다울 때, 그 사람다웠던 모습 중 하나는 기억해둬야 해..."
알렉시예비치의 고백에 비춰보면,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은 남쪽으로 오라'고 천명했던 대한민국 군 최고통수권자는 전쟁의 아픔, 여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틀림없다. 그렇게 북한을 도발하면 대한민국 국민은 북한의 군사적 볼모가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혹시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끝을 전쟁으로 설정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우주의 기운을 받아 '통일 대박'을 외치면서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은 인간계를 사는 사람에겐 이상하기만 하다.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반인륜 범죄인 전쟁마저 이용할 수 있는 세계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다. 최소한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매일매일 근심걱정으로 보내는 평범한 어머니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염치가 있다면 북한 정권을 도발하여 전쟁을 부추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전쟁광들에게 권하고 싶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은 어떤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이라고.
"단 하루라도 좋으니 전쟁 없이 살고 싶어. 전쟁 같은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하루라도 그런 날이 있었으면..."
역자는 노벨평화·문학상이 있다면 그것은 '알렉시예비치' 몫일 거라고 단언했다. 한편, 오슬로대학의 박노자(Vladimir Tikhonov) 교수는 알렉시예비치에 대해 순수문학은 아니지만, 고통에 귀 기울이는 러시아문학의 전통을 따랐다고 평한다.
"그녀는 톨스토이와 그로스만으로부터의 러시아 문학의 반전, 반국가, 친서민 전통을 이어받은 '적자'다. 톨스토이 전통이라는 것은 '작은 인간' 위에 군림하려는 그 모든 정권들, 그 모든 정치꾼들에 대해서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권의 간판은 중요하지도 않다. 진짜 작가라면 톨스토이처럼 약간이라도 무정부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작가 같다."
책을 읽는 동안 티슈를 옆에 두고 읽어야 했던 것은 비단 계절이 바뀌는 탓만은 아니었다. 알렉시예비치 덕택에 고통에 귀기울이는 전통을 갖고 있는 러시아문학을 알게 됐다. 러시아문학을 좀 더 살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