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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 전도서3:7

여름과 겨울 방학때면 나는 '비폭력대화'로 초·중·고 교사들을 연수한다. 이를 통해 나를 알게된 교사들은 학급에서 성품이나 태도가 일반 아이들과 어울리기 어려워 문제가 발생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나를 소개하여 상담을 받게 하고 있다.

똑깍인형(나는 그 아이를 이렇게 칭할 것이다) 또한 그런 과정으로 나를 만났다.

상담소에 들어오는 초등 1학년 여아를 보는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어~ 똑깍인형 같다'란 생각을 할 정도로 그 아이의 외모는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은 모두 위로 올려 하나로 깔끔하게(잔머니 한 가닥 나오지 안을정도) 묶고, 세틴(satin)의 하얀색 원피스와 하얀 스타킹을 입었다. 거기에 목이 긴 아이의 피부는 너무나 깨끗하여 마치 백색 그 자체의 피부에 주근깨나 점 하나 없고 이목구비만 있어 보였다.

일반적으로 상담소를 찾는 아이들은 함께 온 보호자보다 다양한 표정을 지닌채 나와 첫 만남을 갖는다. 부모님과 안 맞는다며 짜증스러운 표정, 본인이 원하는 것을 부모님이 안해준다며 원망섞인 얼굴, 부모님이 자기를 이해해주려 하지도 않는다며 미간을 좁히고 불만스런 눈빛과 입모양 등등의 다양한 표정인데 반해 똑깍인형은 마치 로봇이 걸어 들어오는 듯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앙바(발레자제로 팔을 아래로 내리면서 양 팔꿈치는 밖으로 향하게 하여 둥근 모양)동작에 걸음걸이는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리듬을 타는 듯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똑깍인형을 처음 만났을 때 관찰한 모습이였다.

"어서오세요."

나는 엄마와 아이에게 시선을 보내며 인사를 했다. 엄마는 나와 동일하게 "안녕하세요"라고 말과 목례로 인사했으나 그 아이는 고개만 '똑깍'했을 뿐 입은 열지 않았다. 마치 시계가 똑깍하고 일초를 알리는 것처럼...   

"만나서 반가워요."

내가 그 똑깍인형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으려고 하자 뒤로 물러났다. 변함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 : "어~ 미안해요. 나는 OO(전화접수시에 대상이 되는 아이의 이름을 물어서 기억해둔다)의 원피스 입은 모습이 예쁘고 반가워서 손을 잡으려고 했었어요."
똑깍인형 : "…"

'낯설다'거나 '불편하다' '좋다' '싫다' 등의 감정 없이 무표정으로 아무런 말이 없다. 모녀와 나는 함께 자리에 앉았다.

짝꿍의 얼굴을 사정 없이 할퀴어놨다

 아이는 인형과 같이 말이 아무런 감정 표현이 없었다.
아이는 인형과 같이 말이 아무런 감정 표현이 없었다. ⓒ pixabay

엄마 : "얘가 이래요. 어려서부터 따로 재워서 그런지 몸에 다른 사람이 닿는 것을 싫어해요."
나 : "아~ 그렇군요."
엄마 : "사실 그래서 왔어요. 유치원은 영어유치원을 다녔고 그때 유치원 선생님은 친구와 손 잡지 않아도 괸찮다고 했는데 학교에 들어가서는 그게 문제가 되네요."

나 : "학교에서는 문제가 되었어요?"
엄마 : "네~ 학급에서 친구들과 짝을 지어 해야 할 때 얘는 안잡는데요. 또 얘가 안잡으니까 짝꿍은 억지로 손을 끌어가서 잡으면 짝꿍의 얼굴을 할퀴어놓거든요."
나 : "저런…. OO가 손잡기 싫은데 허락도 없이 와서 덥석 잡아서 그랬겠는데요?"

난 똑깍인형이 짝꿍의 얼굴을 할퀴게 된 배경을 말하면서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런 표정 없이 나를 계속 바라본다. 보통의 아이들은 자기의 감정을 읽어주면 표정이 변하는데 똑깍인형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 : "예, 맞아요. 나중에 얘한테 물어보니까 그래서 그랬대요."
나 : "그러니 OO는 지금처럼 아무말 없이 행동으로 할퀴었겠네요?"

엄마 : "네, 아무 말 없이 한 순간에 할퀴어서 짝꿍이 놀라고 아파서 울고 담임선생님도 놀라서 저에게 전화했어요. 저는 선생님과 짝꿍 부모님께 사죄하고 치료비도 드렸어요. 담임선생님이 아무리 달래도 손을 안잡다보니까 아무도 짝을 하려고 하지 않아서 혼자 외톨이가 되었어요."
나 : "엄마도 놀라셨겠네요. 그리고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무난하게 지내길 바라시다 보니 걱정이 되시고…."

사람은 가족력에 의한 성격과 환경에서 길들여진 적응력에 따라서 기대하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 똑깍인형의 경우에는 친구들과 재밌고 즐겁게 잘 지내는 것 보다는 그의 엄마의 욕구는 그져 무난하게 문제만 안 일으키며 지내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 무난하게'라는 표현을 했다.

엄마 : "네~  저도 잘 지내는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얘가 문제만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 좋겠어요."
나 : "그래서 이제는 OO가 원하지 않을때는 아이들이 손잡지 않도록 담임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이 합의가 되었나요?"
엄마 : "네, 담임선생님께서 얘가 원하지 않을때는 잡지 않는 것으로 해주셨어요."

엄마는 딸을 뭐라고 부르나요?

엄마는 옆에서 조용히 있는 똑깍인형에게 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거나 또는 다른 엄마들의 표현처럼 '우리 딸' '예쁜이'라는 등의 애칭도 사용하지 않고 '얘'라고만 했다. 일단 이점을 살펴봐야 한다. 사람들은 서로간에 부르는 호칭이 중요한 단서가 될 때가 있다.

나 : "지금 엄마께서는 OO를 이름을 부르거나 또는 다른 애칭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얘'라고 말씀하시네요?"
엄마 : "그럼 뭐라고 불러요?"
나 : "제가 궁금해서 여쭤보는데 혹시 친정어머님께서는 OO엄마를 뭐라고 부르셨나요?"
엄마 : "친정엄마도 저에게 '얘'라고 부르셨어요."

나 : "아…, 그러셨군요. 친정엄마께서 이름이나 우리딸 또는 예쁜이라고 부르시지 않고 '얘'라고 부르실 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엄마 : "예? 무슨 뜻이예요?"

엄마는 내 질문에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나 : "만약에 저에게 이렇게 예쁜딸이 있으면 이름을 부르기도 아까울 만큼 '예쁜이' '희망이' '보물'등의 애칭으로 부를 것 같아서요."
엄마 : "그래요?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나 : "예. 다른 분들도 그 점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안는 경우가 있으세요. 부모님이 나에게 하던 방식으로 또는 처음 불러보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편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단 제가 볼 때 서로 부르는 호칭이 서로의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려주기도 해서 여쭤봤어요."

엄마 : "친정엄마도 저를 이름 부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하고 이야기 하실 때에도 저를 그냥 '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저도 딸에게 그렇게 부르고 있네요."
나 : "혹시 친정어머님께서 '이름'을 부르시거나 '우리딸'이라고 부르는 것과 '얘'라고 부르는 것 중에서 어떻게 불러주시는 것이 가장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엄마:"사랑스러움요?"

질문한 내가 당황하리만큼 똑깍인형의 엄마는 사랑스러움이란 표현에 놀라며 마치 이런 표현은 처음 들어보는 듯 "사랑스러움?"을 다시 혼잣말로 읊조려본다. 경직된 표정으로.

나 : "예…. 모녀간에 사랑스러운 기운이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호칭이 둘간의 중요한 역할도 하거든요."

이렇게 똑깍인형의 엄마와 상담을 시작한 지 30분이 됐음에도, 똑깍인형은 초등1학년임에도 자세 하나 흐트러트리지 않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반듯하게 앉아 있다. 물론 표정은 없다. 분명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 아이들에 따라 옆에 앉아 있는 시간이 5분에서 50분까지 다양함으로 나는 상담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이 움직이고 싶거나 먹고싶을 때 선택할 수 있도록 몇 가지 간식거리와 손장난 할 수 있는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놓고 한다.

그러나 똑깍인형은 그 무엇에 손도 대지 않고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나만 바라보면서 그렇게 앉아있었다.


#인형같은 외모#예쁜이#성격#환경#가족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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