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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5.9건.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결혼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닙니다. 비혼을 택하는 사회·개인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혼 없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마이뉴스는 '결혼 없이도 괜찮아' 기획을 통해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려합니다. [편집자말]
필자는 비혼을 결심했다. 누구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지만, 난 무섭다. 그 구더기가.
 필자는 비혼을 결심했다. 누구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지만, 난 무섭다. 그 구더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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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비혼주의라는 유령이.'

공산당 선언문의 유명한 도입부를 흉내 낸 이유는 실제로 '비혼주의'가 기성사회의 입장에서 상당히 공포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성사회의 모든 세력, 즉 정부와 기관, 유교와 기독교, 전통적 가부장제와 문화가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동맹을 맺고 있다. 하지만 비혼주의는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현 사회가 가진 고질적 부조리를 양분 삼아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들'의 사냥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무례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물어봐야겠네. 한 달에 얼마 버나?"

과거 필자가 결혼을 허락받고 있던 시기에 상대방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받은 질문이었다. 당시 상대방의 부모는 외국에 살고 있던 터라 필자와는 일면식조차 없었다. 당장 오가며 인사할 수 없으니 영상 통화로 첫인사를 나눴고 그로부터 이틀 뒤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질문에 육성으로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수없이 받아쳤다.

'네, 무례하고요, 당신 자식과 결혼한다는 사람에게 가장 궁금한 게 고작 그거였습니까?'

당연하게도 그 후 머지않은 시점에서 결혼은 없던 일이 되었고 다행스럽게 필자는 여러 가지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전세 자금 대출을 받지 않았으며, 혼수나 예단 같은 이야기로 생면부지의 노부부 넷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 꼴을 보지 않을 수 있었고, 결혼식과 피로연 장소를 고르는 일도, 통장 상황과 신혼여행지 결정의 함수 관계를 에둘러 설명하는 일도, 그 이후에 벌어질 수많은 노동-지출의 집단화(가족집단을 위한 노동과 지출)도 피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거라고?

결혼은 그 시작부터 돈을 탈탈 털어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결혼은 그 시작부터 돈을 탈탈 털어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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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겪은 이후로 필자는 비혼을 결심했다. 다른 거창한 이유는 일단 덮어두고 경제적 이유만 말하자면 이렇다.

첫째, 무엇보다 개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에는 '한 달에 얼마 버나' 같은 질문을 받고 또 그것에 책임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한 달에 얼마를 벌든, 혼자 산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집을 넓힐 이유도 없어지고 차를 사거나 바꿀 이유도 쉽게 생기지 않는다. 챙겨야 하는 기념일이 늘어나는 일도 많지 않다. 때문에 버는 데 맞춰 사는, 자연스러운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

둘째, 노동과 지출의 관계도 주체인 '나'를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부부를 넘어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이 사라진다. 보통의 경우 아이를 낳고 기르는 행복이 그에 따른 모든 노력과 고생을 불식시킨다고 말한다. 경험해 보지 않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라 말한다. 글쎄. 개인적으로 그것은 '최면'과 같다고 생각한다.

결혼제도라는 담론의 크기가 거대해서일까? 결혼을 빼고 남은 자리에 들어설 수 있는 기회비용들 역시 어마어마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면 쓰냐는 식의 핀잔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 '구더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잊은 이들의 핀잔일 뿐이다.

방송사들은 '육아 예능'을 황금시간대에 편성하고 유명인들의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여주며 '출산 장려운동'을 펴고 있다. 지상파 방송3사가 앞다퉈 '결혼하고 애 낳으면 이렇게 행복해요'라는 약을 팔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약을 함부로 삼키고 싶지 않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주일 치 신문 1면 기사들을 모아서 훑어보자. '무서운 구더기'들이 실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행복과 맞바꾸기 어려운 현실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천정부지로 솟은 부동산 가격의 소식, 그에 비해 낮출 수 있을 만큼 낮춘 은행 금리, 한 가정이 사교육비에 쏟는 평균 금액에 관한 통계, 도통 오르지 않는 임금의 수준과 줄어들지 않는 소득 격차에 관한 분석, 그보다 취업 자체가 막혀있는 청년층의 삶에 관한 르포, 삭감된 복지 비용의 피해자들을 취재한 기사가 쏟아진다.

이런 현실과는 반대로 출산율에 관한 우려 섞인 목소리와 또 그것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그마저도 비현실적 대안들로 이루어진 제도-를 홍보하는 사회다. 사회가 전통적 결혼제도를 강요하고 있지만 이런 결혼제도를 받아들이는 책임은 또 개인의 몫이다. 때문에 철저하게 경제적 고민에서 시작한 비혼주의의 선언은 오히려 합리적 판단 아닐까.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의 혼인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구 1천 명당 혼인 건수도 6건을 넘기지 않았다. 평균 초혼 연령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돋보이는 것은 여성 초혼 연령인데, 통계 역사상 처음으로 30세를 넘겼다. 혼인율은 점차 낮아지고 초혼 연령은 점차 높아진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현상이 아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초혼 연령의 상승세는 해마다 뚜렷하다. 주목할 만한 기간은 이른바 '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 10년간의 변화다. 1998년 평균 28.83세던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008년 31.38세로, 여성은 같은 기간에 평균 26.02세에서 28.32세로 치솟았다. 25~29세의 혼인율은 남성의 경우 1998년 82.5%에서 2008년엔 51.8%로, 같은 기간 여성은 20~24세의 비율이 60.2%에서 24.1%로 각각 급감했다. 이 통계는 신자유주의가 비혼 인구를 키워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결혼은 무거운 것, 참으로 무거운 것

SBS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부모들이 '결혼 전략' 강의를 들으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부모들의 자녀 결혼 컨설팅을 홍보하는 한 결혼정보회사의 광고.
 SBS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부모들이 '결혼 전략' 강의를 들으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부모들의 자녀 결혼 컨설팅을 홍보하는 한 결혼정보회사의 광고.
ⓒ 결혼정보회사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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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일은 굉장한 일이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가치관과 세계를 공유하며 함께 일상을 만드는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상대방과의 인격적 신뢰를 기반으로 약속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굵직하고 중요한 조항들을 집어치우고 '한 달 수입', '직업'과 같은 것들을 우선순위로 두고 사람을 가늠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결혼과 가정이라는 것의 무게를 숨긴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우선 순위의 가치마저 보잘것없고 쓸데없는 것으로 평가절하한다.

2015년 10월, SBS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부모들이 '결혼 전략' 강의를 들으려고 구름떼처럼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결혼에도 전략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점과 이 전략 강의를 수강하는 사람들이 결혼 당사자가 아니라 부모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전하며 "결혼 전략 강의를 듣는 부모들은 대부분 결혼 정보 회사에 가입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물론 자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적극적 바람에 따라 자녀를 등록하는 것"이라며 스포츠 업계에서나 볼 수 있던 '드래프트 시장'이 결혼제도 안에 자리 잡았음을 전했다.

"부르주아계급은 가족 관계조차 감상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순전히 금전 관계로 만들었다"던 공산당 선언의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서 그 사람에 대한 인간적 궁금증보다 치솟은 부동산의 가격에 휘청대지 않을 수 있는지, 사교육비에 쏟을 수 있는 금액은 어느 정도인지, 상대방의 임금 수준은 소득 격차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삭감되는 복지 비용에도 끄떡없을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하는 시대라면 이미 19세기에 마르크스와 앵겔스가 던져놓은 비판을 다시금 새겨야 하지 않을까.

비혼 인구의 증가 추세는 이제 현실로 다가온 과제다. 앞으로 노동인구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줄어드는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더 많은 이주민이 들어올 것이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띤 많은 문화와 정책들이 수정되어야 한다. 1인 가구에 초점을 맞춰 부동산 제도, 공공요금 제도, 사회 보장제도 역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가족이라는 형태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만 한다.

이 시대에서 결혼은 그 무엇보다 가벼운 일이 되었고 역설적으로 가장 무거운 일이 되었다.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라면 적어도 타인과 타인의 가족을 동반해 '금전 관계'로 엮이는 일은 피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여기 이 시대를 누군가와 함께 겪고 싶지도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결혼 없이도 괜찮아' 기획 살펴보기]
1편 입만 열면 기승전 '결혼', 거절합니다



태그:#비혼, #결혼, #출산율, #독신, #1인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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