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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회로 뭉친 300명의 사람들과 20명의 스텝들. 그들은 모두 27살 동갑내기라는 특징만을 갖고 만났다.
 하얀말 운동회의 단체사진 (사진제공=김건우)
하얀말 운동회의 단체사진 (사진제공=김건우) ⓒ 김건우

초등학교 시절 모두에게 가장 기억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1위는 '운동회'다. 전교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애국가와 국민체조를 부르며 몸을 풀고 지루한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들은 후 서막이 시작된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서로의 친구들을 열렬히 응원하고, 달리기 시합에서 1등을 위해 전력질주를 하고, 박 터트리기, 줄다리기, 그리고 운동회의 꽃이라 할수 있는 계주까지. 아마 우리의 인생 중에 가장 많이 그리고 크게 웃었던 하루가 아닐까.

하지만 키가 크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거치면서 어느덧 우리의 그런 운동회는 점차 눈앞에서 사라져만 갔다. 어느덧 27살인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아련히 떠오르는 그때 그날. 그런 소망을 가진 300명이 모여 지난 8일 서울에서 '하얀말 운동회'를 개최했다.
 
스물일곱에 운동회, 다함께 모이는 큰 기쁨을 주다

이번 운동회에 앞서 하얀말 운동회를 개최한 김건우(26)씨와 운동회 스태프로 참여한 강대철(26), 김규리(26)씨를 만났다. 하얀말이란 뜻은 십이간지의 말띠에서도 60년만에 돌아온다는 백말을 뜻하는 단어다. 지난 1990년에 태어난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27살이 된 이들은 현재는 대부분이 대학교 졸업반으로 취업을 준비하거나, 빠르면 이미 사회에 진출해 직장인으로 또는 결혼을 해 부부가 된 경우가 있기도 하다. 각자 흩어져 바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운동회는 모두 '일탈'의 의미가 있었다.

운동회를 기획한 페이스북 구공백말띠 페이지 운영자 김건우씨는 "현재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로서 취업을 앞두고 있는데, 구공백말띠를 운영하면서 또래들에게 공감가는 메시지를 많이 얻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을 고민한 끝에 이 운동회를 개최했다. 모집을 시작하자마자 2시간만에 300명 정원이 모두 차서, 놀랐고 그만큼 책임감도 느꼈다"고 개최 이유를 밝혔다.

기획팀 스태프였던 강대철씨는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예능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한다. 대학교 때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고, 회사에서도 워크샵을 진행한 적도 있는데 이번 공고를 보고 그 때 직무에 맞춰 지원했다"고 밝혔다.

디자인팀의 김규리씨는 "원래는 부산에 살다가 대학교때 서울로 올라와서 혼자 살다보니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여러곳에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마침 이번 공고를 봤다. 과거 대학생때 행사 기획을 하기도 했고, 졸업작품 전시회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디자인팀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15년전의 추억 그대로 되살렸다! 타임머신을 탄 기분

 하얀말 운동회 단체줄넘기 게임 모습
하얀말 운동회 단체줄넘기 게임 모습 ⓒ 윤준식

이들의 운동회는 약 15년전 초등학교 시절 때 운동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과 똑같았다. 아침 10시 300명의 운동회 참가 인원이 모여 입장식을 거행한 것을 시작으로, 내빈소개와 훈화말씀, 선수선서가 순서대로 이뤄졌다.

그리고 하얀말 초등학교의 교가가 울려 퍼지면서 점차 분위기가 고조됐다. 여기에 어디선가 들어왔던 낯익은 목소리의 국민체조가 나오면 무의식 중에 까먹은 것 같은 동작들을 하면서 어렴풋이 진행됐다. 그리고 기나긴 오리엔테이션 같은 시간들이 지나며 본격적으로 운동회가 시작됐다.

이번 운동회 프로그램은 오전, 오후로 나뉘어져, 오전에는 파도타기, 6인7각 릴레이, 풍선밟기, 줄넘기 경기가 진행됐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사이에 두고 오후엔 OX퀴즈, 미션계주와 단체계주, 릴레이 팔씨름이 이어졌다.

그리고 늦은 오후엔 3부 무대로 추억의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DJ파티로 완전히 다른 무대가 펼쳐졌다. 이번 운동회를 준비하면서 이들은 무엇보다 그 때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하얀말 운동회의 단체계주 모습
하얀말 운동회의 단체계주 모습 ⓒ 윤준식

강대철씨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시간으로 꾸미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게임들로 준비했고, 기본적인 절차부터 시작해 정적인 게임, 동적인 게임을 골고루 진행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면서 몸도 커졌다보니 한계가 있던 게임도 있었지만,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은 살리고자 했다. 마지막엔 스텝분 중 실제로 DJ를 하고 계신 분이 있어서, 어릴 때 들었던 노래, 가요, 동요들로 채워 음악 파티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하얀말 초등학교의 교가로 쓰인 '아름다운 세상'이란 음악은 "가수 유리상자가 리메이크한 노래인데, 마침 가사가 우리의 취지와도 맞았던 곡"이었다고 소개했다.

절반 이상이 단체전으로 진행된 이번 대회는 오로지 운영자 김건우씨의 즉흥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맨땅에 헤딩'이란 마음가짐으로 준비하다 보니 여러 장애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사람이 입을 모아 얘기했던 가장 큰 어려움은 단연 '예산'

건우씨는 "300명에게 입장료를 거뒀는데도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운동장 대여부터 만만치 않았고, 용품을 빌리고 먹는 것과, 홍보물 준비와 인쇄비 등도 있었다. 스텝들이 매일 모일 때 재정이 넉넉지 않다보니 장소가 따로 없었고, 기타 부대비용들도 각자 걷어 냈다. 대표로서 미안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페이지를 보고 있던 친구들의 눈에도 부족해보였나 보다. 운동회를 준비하기 시작한 후, 저희 집주소를 물어보기 시작하더니 운동회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많은 상품을 보내줬다. 각자의 영역에서 보내준 수 많은 정성을 받았다. 어려웠지만 얻은게 많았고, 정말 요즘 시대에 느끼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며 회고했다.

운동회로 뭉친 '우리', 생면부지여도 말이 통했죠

 하얀말 운동회 사진
하얀말 운동회 사진 ⓒ 윤준식

운동회로 뭉친 300명의 사람들과 20명의 스텝들. 그들은 모두 27살 동갑내기라는 특징만을 갖고 만났다. 일전에 단 한번 얼굴을 본적도 없고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은 신기하게도 카톡에서부터 수다를 떨었다며 웃었다.

규리씨는 "스텝들을 단톡방에서 처음 만났을 때 모두 이 운동회를 위해 뭉친 사람들이다보니 말이 너무나 잘 통했다. 서울에 온 뒤 친구를 사귀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운동회에 온 분들도 함께 같이 즐기기 위해 오는 분들이니 많이 퇴색된 모임이란 개념이 되살아 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대철씨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처음엔 온라인 상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기에 반신반의 했다. 1990년 말띠란 것 외엔 없었지만 막상 얘기해보니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 같았다. 운동회를 준비하면서 소속감이라던지, 삭막한 우리 사회에서 잊혀진 부분들을 일깨워주는 것 같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15년여만에 다시 시작한 운동회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대회진행을 맡아 그저 구경만 해야한다며 아쉬움의 목소리를 높였다. 계주를 꼭 뛰고 싶었다는 대철씨와 운동회를 너무 좋아하지만 대신 책임감과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단 것에 들뜬 규리씨. 그리고 모든 것을 총괄하는 우두머리의 건우씨. 이들에게 '우리'라는 것은 잊혀진 듯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성을 건드리고 눈앞에 언제든지 형상화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얀말 운동회 스텝 단체 사진
하얀말 운동회 스텝 단체 사진 ⓒ 김건우

"하나의 교집합이라 생각한다. 사는곳, 출생지 등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 감성적인 생각이 그것이다"(강대철)

"어릴 때만 해도 집에만 있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분위기가 정말 나랑 맞는 사람, 내게 뭐가 있어야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갈증을 해소하고자 이번 운동회에 모두가 모이지 않았을까"(김규리)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감성이 있다. 어떤 단어 앞에 붙이든 경쟁이 없어지고 함께 나아가는것이라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요즘은 혼자가 되는 것이 우리 세상이지만,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했다. '구공백말띠'가 아닌 사람이 이 단어를 보면 모르겠다 하지만, 전국의 90년생들이 보면 바로 안다.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그 곳에 친구가 모여줬다. 그리고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라는 개념을 형상화되는 것 같다."

혼술, 혼밥 등 1인가구가 급격히 늘어가는 이 시점. 어린 시절 친구끼리 그리고 전교의 학생들이 모두 모여 함께 뛰놀며 느꼈던 '우리'. 그것은 어렵지 않게 15년 여만에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또 다시 즉흥적으로 만나 또 한번의 우리를 만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구공백말띠#하얀말운동회#1990년생#말띠#김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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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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