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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 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2007년 8월 7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방한중인 알파 우마르 코나레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 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2007년 8월 7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방한중인 알파 우마르 코나레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과 관련해 2007년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기권 과정에 이어 같은 해 아프가니스탄 인질 협상 부분도 "사실 관계가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시 샘물교회 교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이 한국 정부와 대면협상 조건으로 신임장을 가진 협상대표를 요구했고 문 전 대표 등이 찬성했다는 게 송 전 장관의 주장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은 "문제의 신임장은 협상대표의 신변을 보장하는 문서로서 외교가에서 말하는 신임장과는 다르다"며 엇갈린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21일 <오마이뉴스> 취재에 응한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당시 탈레반 측은 자신들의 협상단 신변안전을 요구했던 걸로 기억한다. 신임장 요구는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실제 논의된 것은 신임장이 아니라 탈레반 협상단의 신변을 보장하는 내용의 문서였다는 것이다.

반면, 송 전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2007년) 8월 초 탈레반 조직은 인질 석방 협상을 하려면 한국 정부의 신임장을 휴대한 대표를 보내라고 요구했다"라며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김만복 국정원장과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신임장이라도 써 보내자고 주장했다. 문재인 비서실장과 백종천 안보실장도 찬성했다"라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인질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하지만, 그래도 납치 테러단체에 정부의 신임장을 제시하는 것은 국가가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고 판단했다"라며 "나는 내부 회의에서 신임장이라도 써 보내보자는 사람들을 상대로 몇 차례 심하게 얼굴을 붉히고는 결국 납치단체의 요구를 거부했다"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신임장은 '특정인을 외교사절로서 파견한다는 취지의 문서'를 말한다. 외교사절을 파견할 때 파견국 원수나 외무장관이 상대국가의 원수에게 특정인의 신변을 보장하기 위해 보내는 문서인 것이다. 이 문서를 전달한다면 탈레반을 교전단체(내전 상황에서 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교전권을 가진 단체)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게 송 전 장관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대응과 공식발표, 내외신 언론보도, 탈레반의 공개적인 요구사안 등을 종합해 봤을 때도 송 전 장관의 주장은 실제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먼저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적극적으로 협상 나선 탈레반, 쟁점은 '협상단 신변보장'

아프간에서 샘물교회 교인 23명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것은 2007년 7월 19일이다. 노무현 정부는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 반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기본 방침을 세웠다. 초기에는 아프간 정부를 앞세운 '간접협상'이 진행됐다. 탈레반의 요구는 아프간 정부에 의해 수감된 탈레반 인사들의 석방이었다.

하지만 협상은 진전이 없었다. 두 번째 인질이 살해된 7월 31일 이후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아프간 정부를 앞세운 간접협상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먼저 움직인 건 탈레반이었다. 두 번째 인질을 살해 한 다음날 탈레반은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의 강성주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정부의 직접대면 협상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8월 3일 탈레반은 대변인 등을 통해 "협상단의 신변을 유엔에서 보장한다면 어느 지역에서든 협상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협상단 신변 보장을 대면협상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한국정부가 신임장을 가진 협상대표단을 보내야 한다는 명시적인 조건 제시는 아니었다.

여기에 한국 정부는 '인질-수감자 맞교환 요구 철회'를 대면협상 조건으로 내걸었다. 당시 아프간 정부의 태도를 봤을 때 수감자 석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것이 아닌 다른 조건으로 협상을 한다면 대면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었다.

송 전 장관이 신임장 관련 논의가 있었다고 주장한 안보정책조정회의는 그 다음날인 4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회의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백종천 전 안보실장은 전날까지 아프간 현지에서 상황을 지휘하다 귀국했고, 송 전 장관도 필리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천호선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회의 후 브리핑에서 "납치단체가 '맞교환' 요구조건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른 요구조건을 제시하면 능동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탈레반 인사가 현지 한국 대사관에 수시로 전화해 오고 있고, 이를 통해 우리도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양측 모두 대면 협상의 의지를 보였지만 실제 협상이 이뤄진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탈레반이 요구한 '협상단 신변보호'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유엔과 아프간 정부가 방송 등에서 공개적으로 협상단의 안전을 보장해야 자신들의 활동 영역 바깥에서 협상할 수 있다고 고집했다. 결국 한국 정부가 아프간 정부의 비공식적인 신변보장을 주선해 10일 첫 대면협상이 성사됐다.

탈레반, 신임장 없이도 대면협상 자체로 위상 높여

회고록 논란의 핵심은 당시 공개되지 않은 탈레반의 추가적인 협상조건에 '신임장 요구'가 있었냐는 것이다. 우선 신임장이 아니라 탈레반 협상단의 신분보장이 협상 개시의 걸림돌이었다는 점은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 물론, 신임장이라는 비공개 요구가 실제로 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또, 탈레반의 요구가 없었다고 해도 우리 정부가 대면협상 방안을 논의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을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송 전 장관이 우려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신임장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 정부가 직접 대면협상에 나선 것만으로 탈레반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충분히 높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탈레반은 첫 협상 직후 아프간 정부 지역에서 외신기자 회견을 여는 등 상황을 활용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가 대면협상에 나선 것을 비난하지 않았다. 인질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본 것이다. 송 전 장관은 정부가 탈레반을 교전단체로 인정하는 것을 걱정했지만, 국제사회의 이해는 이를 덮고도 남았다.

결과적으로 탈레반은 한국군과 아프간 내 한국 민간인 연내 철수(당시 이미 예정된 사안)와 기독교 선교단 입국 금지 등을 한국 정부로부터 약속받았다. 한국 정부는 이를 조건으로 남은 인질의 전원 석방을 얻어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탈레반이 강성주 아프간 대사 등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인물이 협상단으로 나오기를 고집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탈레반의 이러한 요구를 송 전 장관은 협상단의 신임장 휴대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8월3일까지 백종천 전 안보실장과 함께 아프간 현지에 파견됐던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신임장 요구 같은 건 없었다"라고 말했다.

강성주 전 대사는 <오마이뉴스>와 주고받은 문자에서 "아프간 사태는 이미 오래된 과거 일이라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회고록에 뭐라고 설명 돼 있는지 몰라도 기록에 근거해서 썼을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송민순#탈레반#신임장#문재인#아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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