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션>(2015)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를 보며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그의 끝없는 '긍정'이었다. 그는 분명, 지구에서 7500만킬로미터가 떨어진 화성에 존재하는 유일한 생명체였는데 전혀 외로워보이지 않았다.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 분명한데도, 그는 외롭지 않아보였다.
매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나도,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데 말이다. 오늘은 <피파세대 소비심리를 읽는 힘>과 <98%의 미래, 중년 파산>을 통해 '고립된' 중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부끄럽고 두렵게도, 이것은 바로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피파세대 소비심리를 읽는 힘>이 채용한 신조어인 'PIPA'는 '가난하고(Poor) 고립되어 있으며(Isolated), 아프고(Painful) 나이든(Aged)' 세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심화된 고령화와 고령 세대에게 필요한 소비를 파악하기 위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저자는 '돈많은 노인 세대'에 대한 소비 심리를 읽어내어,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하고 싶었겠지만, 나는 두렵게도 '나이를 먹어가는' 고립된 노인세대로서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선택이 <중년파산>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20년 후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바로 나의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에) 제발 '긍정적'인 모습으로 훈훈하게 안심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98%의 미래, 중년파산>은 말 그대로 일본의 중년세대가 겪는 위기의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초고령화' 사회이다(조만간 우리가 그 왕좌를 빼앗아오게 될 것만 같지만 말이다).
사회 전반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구 구성의 피라미드는 점점 역삼각형으로 변화되었고, 더 이상 젊은 세대로부터의 원활한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다. 노동 생산성의 감소와 고령자에 대한 생활 지원 등을 대비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적인 진보는, 인간 노동을 손쉽게 대체함으로써 고용의 질을 혁신적으로 '악화'시켰다.
저자가 이야기한 수많은 '암울한' 예언 중 가장 놀라운 통찰은 '모든 기업은 결국 블랙 기업이 된다'였는데, 결국 '인간 노동의 존중'을 유지하는 기업은 손실의 압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인간의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다. 무섭다. 게다가, 우리의 젊은이들은 이미 '싸구려 대체 용이한 노동력'으로 취급되고 있지 않은가?
구의역의 스무살 청년도 KTX 선로를 수리하다 사고를 당한 하청 업체의 직원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슬프다. 인간의 노동력은 쉽게 '기술'로 대체되며, 그 가격은 '최저가 낙찰'의 형태로 변질되어 버렸다. 존중받지 못하는 노동은 단지 경제적인 손실만을 의미하지 않고, 노동자의 인격에 상처를 입힌다.
결국, 인간은 싼 값으로 교환된 상처받은 인격으로 세상을 우울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점점 더 불행해지는 것이 당연해지고, 가난하고 불행한 '우리'는 '나'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책의 부제는 '열심히 일하고도 버림받는 하류 중년 보고서'이다.
목차만 모아놓았을 뿐인데, 암울함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20세기에는 기업이 '신'이 되었고, 신의 선택을 받은 장년 세대 이후로 막혀버린 인력 채용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사람들은 가진 것을 '버리는 삶'으로써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라고 얘기하지만, 가난한 중년은 '가진 것'이 없어 '버릴 것'도 찾아볼 수 없다. 힘을 잃은 노동운동은 해고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결탁했기 때문이고, 장시간의 야근으로 충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정직원은 가정으로부터 고립된다.
중년의 파산을 피하기 위해서, 회사는 가장 먼저 섬겨야하는 존재가 되었고, 부모세대의 간병까지 책임져야 하는 중년은 가난이 배가 된다. 인간의 '일'은 기술로 대체되고, 타인과의 관계조차 '일'의 일부가 되어버려 '쉴' 곳이 없다. 이로써, 중년의 모두는 빈곤으로 경제적으로도 가난해졌을 뿐만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기댈 곳이 없다.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마흔이 넘은 비혼으로서, 나의 최근 가장 큰 고민은 '정년까지의 시간'을 어떻게든 이 조직에서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터에서의 보람은 어디로 보냈는지 기억이 없고, '당신은 무얼 하는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이 제일 대답하기 어렵다.
매달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이번 달의 예상 퇴직금을 조회하고 있는데 앞으로 20년을 더 일해도 노후 대비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은 '어떻게든 버텨라'인데, 버틴다는 생각으로 출근을 하는 일상은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크다. 이런 상태로는 일터에서 하고 있는 일은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다.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은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나를 점점 더 움츠러들게 할 뿐,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 결국, 나는 나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이대로는 '고립'되어 불행한 중년이, '고독한' 노년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어쩌지?
"'하류중년'이라고 해서 꼭 경제적인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자립, 사람과의 관계, 자존심과 같이 그 사람 고유의 자산을 잃음으로써 '하류화'의 위험은 단번에 높아진다. 원인이 무엇이든 일단 빈곤과 고립의 상태에 빠지게 되면 어떠한 노력을 거듭하더라도 제대로 된 상태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지옥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를 찾기에는 모두 너무나도 피폐해져 있다.
"패자 부활을 허락하지 않는 일본 사회 쪽이 병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독자는 필자에게 그렇게 호소했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미래. 생활은 힘에 부치고 빈곤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생활을 강요당하는 현실을 진지하게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상처만 입고 피폐해진다. 그런 불안을 떠안은 채로 레일에 매달려 있는 존재를 사회가 양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중년 파산> pp 213~214
이런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일본의 미래는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들의 나아진 미래를 만들고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도 가져올 수 있을까? 아래의 정책 사례들을 살펴보자.
0. 공적 연금제도의 개선을 통한 노년 빈곤의 전략적 지원0. 중년 시절부터의 고립 해소를 위한 삶의 질 및 사회에서의 차별 개선0. 비정규직 노동을 개선함으로써 고용의 질을 개선함으로써 '사회적 배제'를 통한 빈곤이나 고독을 개선0. 자신의 역할과 능력을 다할 수 있는 직장을 통해 인간 관계에서의 '우울', '인간관계의 혹독함', '직장에서의 괴롭힘'을 해결0. 상대적 빈곤이 두드러지지 않는 사회 분위기 조성 및 빈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 구축0. 균형잡힌 복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정적인 의료 지원체계 구축일본은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불안하게 하지 않고자 '중년의 고립'과 '노년의 고독'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 애를 쓰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이들 중 하나라도 기대할 수 있는 정책이 우리에게 있는가?
현재의 고액 연봉이나 '보장이 튼튼(하다고 주장하)는 보험'에 매달리는 것보다, 20년 후 나의 미래를 위한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더 이익이지 않겠는가? 아... 어쨌거나, 오늘 나의 책 선정은, 완전히 망했다. 게다가, <피파세대 소비심리를 읽는 힘>은 '축구를 좋아하는' FIFA (국제 축구협회) 세대에 대한 얘기인 줄 알고 고르지 않았던가.
책 정보 :
<98%의 미래, 중년파산>(2016) 아마미야 카린 지음, 위즈덤하우스
<피파세대 소비심리를 읽는 힘>(2016) 전영수 지음, 라의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