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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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배치가 어려운 다른 이유는 미국의 전략무기가 한국만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른 새벽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잠결에 누구라고 밝힌 것도 알아듣지 못했는데 조금 전 미국 워싱턴 DC에서 끝난 제4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순환배치가 결정되었다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졸다가 몇 번이고 "여보세요"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미쳤다고 봅니다"라는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기자에게 또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한미가 발표한 공동보도문에 그런 내용이 없다며 무슨 일인 것 같으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정말 미쳤나 봅니다"하고 전화를 다시 끊었다.
워싱턴에서 벌어진 해프닝의 재구성전화를 끊고 기사를 검색해 보니 우리 시간으로 자정을 즈음하여 한미 국방 당국이 "확장억제 실행력을 높이는 방안 중 하나로 한반도에 미국의 전략무기를 상시 순환 배치하기로 합의했다"는 기사에 심지어는 "전술핵 배치나 다름없다"는 아침 사설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나자 기사는 "방안을 검토키로 합의했다"로 표현이 애매해지더니 급기야 몇몇 신문은 돌아가는 윤전기까지 멈추고 기사를 수정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명백한 집단 오보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다.
국방부에 대한 불만과 함께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에 대해서 한미 간 이견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의 수준을 넘어 이번 의제에조차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단순하게 언론들이 전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배치 문제가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기대를 부풀렸기 때문에 안테나를 돌린 내용으로 추측성 기사를 쓴 것이라고 해도 이렇게 단체로 오보를 날린 건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그렇지 않고 엠바고를 걸고 회의 결과에 대한 사전 브리핑이나 관계자의 비공식 언급이 있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사실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와 같이 중요한 국가 간 정례회의는 당일 장관이 마주 않아서 의제를 선정하고 토론하여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미 쌍방 간 오랜 협의를 통해 의제를 선정하고 사전에 상당부분 합의에 도달한 결과물을 확인하고 발표하는 자리이다.
더더욱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와 같이 중요한 사안이 한미 간 사전 논의 없이 당일 현장에서 어느 일방의 요구로 논의되고 결과에 반영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이미 합의하여 명시한 내용을 삭제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서는 당일 의제 자체가 아니었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국방부가 이번 SCM 결과에 반영하려고 사전 협의 중에 지속적으로 의제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불발되자 끝까지 미국을 설득해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안쪽 주머니에 넣고 회담장에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협의되지 않은 내용을 미리 공개하고 협상에 나섰다가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겨서라도 어떻게든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배치를 이번 SCM 결과에 명문화하려 했다면 국방부의 생각이든 아니면 청와대의 지시이든 상황평가와 인식의 수준이 심히 걱정스럽다. 우리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전략무기 한반도 배치는 꿈도 꾸지 마라무엇보다 미국의 전략자산 상시배치는 동북아 안보지형에 영향을 미치는 예민한 사안이다. 오로지 방어용이라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만 해도 동북아를 들썩인다. 한미는 사드가 오로지 북한의 미사일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중국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를 믿지 않고 중국의 탄도미사일을 사전에 탐지해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결국 방패로 상대의 창은 무용지물로 만들고 자신만 창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 최고의 창인 전략무기를 어떠한 형태이건 배치한다는 것은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반발은 사드 그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 부담뿐만 아니라 한국 입장에서도 전략자산 배치의 공식화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배치가 어려운 다른 이유는 미국의 전략무기가 한국만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각지에 배치되어 있는 미국의 전략무기는 미국의 세계전략과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큰 틀 속에서 엄청난 예산의 힘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이다.
한반도 배치를 위해서는 계획과 예산에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요구한다고 쉽게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들여놓을 것이 아니라면 핵잠수함이든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이지스함과 같은 미국의 전략자산이 지금도 한반도 주변 어디엔가 있을 수 있기에 상시 순환배치를 통한 확장억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굳이 공식화하려는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더 궁금하다.
전시라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그럼에도 한국 국방부는 포기를 하지 않는 듯하다.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미국의 전략무기가 한반도에 상시 순환배치 될 경우,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양국이 이 문제를 긴밀히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진정성보다는 집단 오보 사태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군사안보적 의도보다 정치적 의도로 읽힌다. 제대로 된 국방부라면 미국 전략무기의 한반도 배치 공식화가 왜 비현실적이고 실제 배치된다면 군사적으로 가져올 파장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 '결정'이라는 집단오보에 대해 한국 국방부가 보인 태도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책임을 달게 지더라도 오히려 한국 국방부의 결정이고 의지였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고 청와대에서 전략무기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꼭 SCM 결과에 넣어서 돌아오라고 한 것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사람들이 살다보면 많은 일이 생긴다. 어쩌면 이번 워싱턴에서의 집단오보도 평상시 일어날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해프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군인은 다르다. 특히 전시라면 이번 일이 단순한 해프닝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잘못된 판단과 결정은 수천, 수만의 생명과 재산을 좌우할 수 있다.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배치의 달콤한 꿈을 한국 국방부만큼은 정치적 논리가 아닌 국익을 위한 안보적 시각과 진정성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김동엽은 해군사관학교와 해군대학을 거친 해군장교였다. 2006년부터 6년 동안 국방부 북한 분석관으로 활동했으며, 2011년 중령으로 예편한 뒤에는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에서 북한핵과 미사일, 군사 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다.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