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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BS 광복 70년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후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BS 광복 70년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에 참석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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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15일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복 70주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 콘서트. 행사 막바지, 구태여 무대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이 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있던 김연아의 손을 잡으려고 했고, 급작스런 박 대통령의 행동을 미처 감지하지 못한 김연아가 손을 빼는 듯한 장면이 지상파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됐다.

이날 이후, '김연아 박근혜'가 화제의 검색어로 묶였던 걸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를 두고 김연아를 비난하는 의견까지 생겼더랬다. 급기야 <채널A>는 '김연아, 박근혜 대통령과 데면데면 왜?'라는 뉴스까지 따로 방송하며 이런 여론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 무대로 등장하는 것은 약속된 상황이 아니었는지, 김연아와 옆에 있던 이승철 모두 놀라 우왕좌왕했던 모습 역시 생방송으로 잡혔다. 대통령을 대하는 김연아의 무례함을 지적하는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마 사진 한 컷이나 짧은 영상만을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9일 KBS <뉴스9>이 단독 보도한 "김연아, 늘품체조 거절 뒤 미운털" 기사 내용을 보면서 김연아와 박근혜 대통령의 어색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김연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일당들이 예산 전횡의 종착지로 삼으려던 평창동계올림픽의 홍보대사 아닌가. 더욱이 그 '미운털'의 단초가 세금 3억 5000만 원을 허공에 날려 버린 '늘품체조'였다니.  

"김연아는 찍혔다고. 쟤는 문체부에 찍혔어"

19일 KBS <9뉴스>의 김연아 관련 단독보도.
 19일 KBS <9뉴스>의 김연아 관련 단독보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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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늘품체조 시연회. 최순실씨의 측근인 차은택씨 주도로 정부예산을 따낸 이 행사에 손연재 선수와 양학선 선수 등 체조스타들도 함께 했습니다. 문체부의 지시를 받은 체조협회의 요청에 의해서였습니다. 김연아씨도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김연아씨는 자신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체조 행사 참석을 거절했습니다."

어려울 것 없다. 늘품체조 시연회에 손연재·양학선 선수 등은 참가했지만, 김연아는 빠졌다. 김연아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구동회 올댓스포츠 사장은 "늘품체조행사 참석을 구두로 제안받았는데 당시 김연아가 평창올림픽과 유스 올림픽 홍보로 정신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이후 김연아는 대한체육회가 선정하는 2015년 스포츠영웅에서 제외됐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에서였다.

KBS는 이 배후에 최씨 일가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라 암시했다. 20일 스포츠영재센터에 특혜를 받아낸 뒤 횡령한 혐의로 20일 구속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의 측근으로부터 김연아에 관련된 증언을 확보한 것이다.

"(장시호씨가) 김연아는 찍혔다고. 쟤는 문체부에 찍혔어 그런 거예요. 왜라고 물었더니 찍혔어. 안 좋아(라고 얘기했습니다)."

제보자가 이 장씨의 이 말을 들은 것이 2015년. 김연아는 그해 인터넷 투표에서 82.3%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스포츠영웅에서 탈락했고, 이에 대해 팬들의 반발은 컸음은 물론 체육계에서도 의구심을 보낸 바 있다. 작년 9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한체육회 감사에 나선 유은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대한체육회의 스포츠영웅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추천단, 체육단체, 시도체육회, 출입언론사, 프로경기단체, 일반국민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후보자 45명은 스포츠영웅 선정위원회 보고와 선정위원별 최종후보자 추천을 거쳐 12명으로 압축된다. 이 12명은 다시 위원별 업적평가, 대한체육회 홈페이지 인터넷 국민지지도 조사를 거치게 된다. 당시 유은혜 의원은 "선정위원회 회의 중 스포츠영웅은 50세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분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2015 스포츠영웅으로는 양정모(레슬링), 박신자(농구), 김운용(체육행정)이 선정됐다. 그러니까, 애초 없던 "50세 이상" 규정이 하필 김연아가 유력하던 작년 선정위원회 회의석상에서 생겨났던 얘기다. <뉴스9>는 이 과정에 "쟤는 문체부에 찍혔어"라고 했던 장시호씨와 최씨 일가가 개입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김연아도, 박태환도, 이미경도 피해자 리스트?

10일 SBS <뉴스8>이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박태환 협박 녹취록을 일부 공개했다.
 10일 SBS <뉴스8>이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박태환 협박 녹취록을 일부 공개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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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오비이락'식 문제 제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유사사례들이 속속 드러나는 와중이다. 김연아의 스포츠영웅 선정 탈락 또한 최씨 일가의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의혹 역시 개연성이 충분해 보인다. 

이미경 CJ 부회장 역시 tvN <SNL 코리아>와 영화 <변호인>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혔고,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직접 퇴진 압박을 가한 것을 비롯해 CJ는 직간접적인 정권의 압박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이미경 부회장은 지난 2014년 미국으로 떠난 후 경영일선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

연장선상에서, SBS <8뉴스>도 19일 <박태환 협박한 김종…올림픽 출전 왜 막았나?> 제목의 단독보도를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축인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박태환 선수를 직접 협박한 녹취록을 공개했다. 김종 전 차관이 수영 국가대표였던 박태환에게 리우올림픽 출전 포기를 종용하며 회유한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다.  

"출전 안 했을 때 보장은 내가 해줄 거라고. 올림픽 이후를 내가 보장해 주는 거지. (기업 스폰서) 그런 건 내가 약속해 줄 수 있어. 그렇게 해주려는 기업도 나타났어. 금메달 땄으니까 광고 주쇼 그러면 광고 들어와? 대한체육회서 인정하지 않으면 어느 광고주가 태환이한테 붙겠느냐 이거야.

교수해야 할 것 아냐? 교수가 최고야. 왜냐하면 교수가 돼야 뭔가 할 수 있어. 안현수가 러시아에서 금메달을 따서 러시아에서 인정받아? 걘 그냥 메달 딴 애야.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어. 그래서 국민이 환호했어. 그래서? 국민은 금방 잊어요. 이랬다 저랬다가 여론이야."

김종 전 차관이 박태환의 리우행을 막은 것은 박 선수에 대해 대한체육회가 내린 이중 처벌 규정이 잘못됐다는 점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더욱이 <8뉴스>는 이 대한체육회의 이중 처벌 규정이 "지난 2013년 정유라가 승마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뒤 청와대까지 나서서 체육계 정화에 나서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전했다. 결국 복합적이긴 하지만, 박태환에게 뻗친 김종 전 차관의 권력의 입김이 최씨 일가와 연계됐을 가능성도 열어 둔 것이다.

김 전 차관은 SBS와 통화에서 "박태환 측이 먼저 만나자고 그랬어. 먼저. 그럼 됐잖아. 더 이상 무슨 얘기가 필요하겠습니까?"라고 했다. 하지만, "금방 잊"고 "이랬다 저랬다"한다던 그 국민여론이 명백한 협박 정황을 보고 가만 있을 리 만무하다. 20일, 김연아 관련 장시호씨 발언과 함께 국정농단 사태에 직접 피해를 입은 두 스포츠 스타에 대한 동정론이 일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대회 홍보대사 김연아를 대하는 이 정부의 품격

김연아의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임명식 사진
 김연아의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임명식 사진
ⓒ 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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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호의 "찍혔어"란 한 마디와 김종 전 차관의 협박 녹취록. 전자는 아직 의혹 제기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증거와 정황이 구체적이고 뚜렷하다. 공통점은 대한체육회가 김종 전 차관과 같은 국정농단의 실세들에게 좌지우지되고 농락당했다는 사실이다. 김연아도, 박태환도 권력의 제안을 거절했다.

김연아는 그래서 2015 스포츠영웅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팬들의 반발은 거셌고, 논란이 일었다. 박태환도 슬럼프를 겪은 뒤 리우올림픽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국정농단 세력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불러온 유무형의 피해가 본인들에게는 물론 국민적인 피로감을 더한 경우다.

무엇보다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문체부 산하 조직에 대한 불신감을 키울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더 나아가, '비선실세'에게 농락당한 권력이 국민의 삶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더욱이 김연아의 경우,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늘품체조 시연회를 거부했다 덤터기를 쓴 경우다.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임명돼 수년째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김연아에게 그 국가가, 박근혜 정권이 준 대가는 이렇게 맥 빠지고 하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평창은 여전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복판에 서 있다. 향후 검찰은 각종 이권과 관련한 최씨 일가의 횡령과 전횡 등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여러모로, 김연아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악연이, 그 영향이 지속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어느 SNS 사용자의 일갈은 그래서 더 뼈 아프다. 박근혜 대통령의, 그 측근들의 수준이 너무 맥 빠지고 하잘 것 없어서.

"김연아 선수야말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정신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인물이지. 불리한 환경에서 묵묵히 노력해서 정상에 오른 천재. 대국민 애교 같은 거 없어도, 바보 같은 정부행사에 동원당하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는 지위와 권위를 스스로 획득한 사람." (@ey********)


태그:#김연아, #늘품체조, #박태환, #비선실세,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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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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