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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까짓게 무슨 큰일이라고, 자기 차에 그냥 붙이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그에 대한 첫 번째 변명으로 내가 사는 곳은 경북 구미라는 곳이다.
나는 주입식 교육 세대다. 수업 시간의 2/3 가량을 칠판에 빼곡히 적고, 한 번 주욱 읽어주고 나서, 질문 없나? 없으면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라고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시던 선생님들 밑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모르면 그냥 외우는 것이었고, 궁금한 건 건너뛰면 되는 것이었다. 왜? 라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수험생들에게 커다란 사치였다. 생각하는 체계는 애초에 거세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독일 병정처럼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마흔이 넘은 요즘도 내 의견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이 쉽지 않다. 내 생각이 과연 맞기나 한 건지, 설령 맞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어떻게 보일지 신경이 쓰인다. 물론 개인의 소심한 성격 탓도 이유가 되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 할 수 없게 만든 교육 환경과 사회적 구조에 더 큰 책임의 비중이 있다고 본다.

이번 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드러나는 대통령과 비선실세에 대한 여러 가지 정황들은 꾸준하게 혈압을 상승시켰다. 성난 백만 군중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소설 이상의 상상력을 현실로 바꾸는 갖가지 행태들에 대해 댓글로 감정을 표출해 보기도 했다. 허나, 내면에 쌓여가는 좌절과 분노는 절대 수그러들 성격이 아니었다.

며칠간의 망설임 끝에 소시민으로써 작은 행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 자동차 뒷 유리에 붙인 박근혜 퇴진 피켓 며칠간의 망설임 끝에 소시민으로써 작은 행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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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시민으로서, 대통령의 행태에 과하게 분노한 평범한 시민으로서, 어떤 방법으로 나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 자동차 뒷 유리에 박근혜 퇴진 구호가 적힌 손 피켓을 붙이자, 라는 결론을 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할 사태들에 대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었고, 실천하기까지의 망설임이었다.

그 까짓게 무슨 큰일이라고, 자기 차에 그냥 붙이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그에 대한 첫 번째 변명으로 내가 사는 곳은 경북 구미라는 곳이다. 누군가에게는 신의 반열에 오른 박정희가 탄생한 도시. 총탄에 부모를 잃은 그녀에 대한 동정심이 투표의 가장 첫 번째 가이드라인이 되는 시민들이 사는 도시.

나라꼴이 이 모양인데, 구미시장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가는 박정희 기념사업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고, 추종자들은 박정희 생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한 여성의 멱살을 잡고 폭언을 해대는 곳이다. 모르긴 해도 조만간 '대통령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현수막이 붙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법한 공기가 흐르는 도시다.

이런 숭배와 찬양의 분위기 속에서 '박근혜 퇴진'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데, 드러내놓고 차에다 퇴진 구호를 붙이고 다니겠다?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어지간하면 지지해주는 아내도 이번에는 조심히 말렸다. 마침 근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발생해 자동차 4대가 전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남일 같지 않았다.

심리적 압박은 고스란히 꿈으로 연결되어, 자동차 바퀴 네 개를 누가 빼간다거나, 못으로 자동차를 한 바퀴 긁어 놓고 가는 따위의 악몽을 꾸게 되었다. 최악의 악몽은 누가 자동차에 폭탄을 설치해서 내가 문을 여는 순간 자동차가 폭발해 버리는 꿈이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건가, 박근혜 퇴진 구호가 적힌 손 피켓 하나 차에다 붙이려고 했을 뿐인데.

망설이게 된 두 번째 원인은, 사실 부끄럽지만 교통 법규를 투철하게 준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나의 자동차는 반대세력들의 집요한 감시와 견제를 받을 것이 자명했다. 나 한 사람의 끼어들기나 불법 유턴 등 일상에서 흔하지 않지만 가끔 저지르게 되는 과오로 인해 퇴진을 요구하는 대다수의 국민들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겠다는 강렬한 압박감이 짓눌러 왔다.

누군가의 블랙박스에 담긴 불법 운전 동영상은 확대 재생산되어 촛불 든 국민 전체가 그러는 것처럼 매도 될 수 있다. 능히 그러고도 남는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다. 따라서 퇴진 구호를 등에 달고 운전을 하려면 철저한 준법 운전을 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운전자들은 알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로 밤잠을 설치며 며칠째 고민 하던 어느 날이었다.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두 아이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참고로 큰 아이는 8살이고, 작은 아이는 7살 유치원생이며, 아이들과 나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의 주제 중에 정치 분야는 티끌만큼도 안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형아, 박근혜 할매가 왜 나쁜지 알아?", "거짓말쟁이라서.", "그것도 있는데, 또 한 가지는 멍청하고 고집쟁이 라서야."

아! 누가 끼고 앉아 가르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주변에서 듣는 말을 여과 없이 뱉어내는 구나! 이것이 민심이고,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을 고쳐먹게 했다.

둘째 아이는 이미 2014년 세월호 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깨어있는 아이다.
▲ 박근혜 퇴진 피켓을 들고 집회참여를 준비중인 둘째 아이 둘째 아이는 이미 2014년 세월호 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깨어있는 아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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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아침, 마침내 박근혜 퇴진 피켓을 차에 붙였다. 출근길은 살얼음판 같았다. 뒤에서 누가 경적을 울리지는 않을까, 신호와 속도를 정확히 준수하며 운전을 했다. 직장에 도착했을 때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퇴근 후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나서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차에서 잘까? 하는 소심하기 그지없는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창조적인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아무 일도 없이 3일이 지났다.

혹시 누군가 나처럼 망설이고 있는 이가 있다면 조언을 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신 차에 관심이 없으며, 생각만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생각 이상으로 현재의 나라 상황에 대해 불만과 걱정이 많다는 것을. 그러므로 당신이 무언가를 표출하려는 의지와 생각이 있고, 그것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즉시 행동하라고.

이번 토요일(11월 26일), 나는 다시 광화문 광장에 설 것이다. 자발적으로 참여를 희망한, 박근혜 할매를 부끄러워하는(샤이 박근혜?) 7살짜리 둘째 아들과 함께. 가까운 미래에 이 땅에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이 이루어져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죄 지은 대통령을 끌어내렸다는 내용이 교과서에 실렸을 때, 이 아이가 그 자리에 있었음을 자랑스러워하도록 말이다.


태그:#박근혜 퇴진, #광화문 촛불 집회, #시국행동, #경북구미, #교통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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