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30분께. 춘추관에서 세월호 관련 브리핑을 하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난리났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11월 27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이 장면이 보도됐다. 이후 비판 여론이 들끓자, 그는 "생방송도 아닌데 NG 장면을 이용한 비신사적인 편집"이라며 강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당시 상황은 "거듭된 NG로 혼잣말을 한 것과, 옆에서 웃는 기자를 따라 웃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두 달 여 전인 2014년 2월 5일. '민경욱'은 오전과 오후의 직업이 다른 '투잡스'였다. 오전에는 KBS 문화부장으로 보도국 편집회의에 참석했고, 오후에는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돼 첫 브리핑을 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그때까지도 KBS에서 지급받은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2월 5일까지 KBS 편집회의에 참석한 그가, 정작 면직 처리된 날짜는 하루 전인 2월 4일이었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당시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조차 국회 상임위에서 "민경욱 대변인이 KBS 윤리 규정을 위배했다"고 말했을까. KBS 기자협회는 "말문이 막혔고 부끄러워고 참담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KBS 후배들은 "오전에는 단신 사인을 내신 뒤, 오후에는 청와대로 가 손수 나팔을 잡으신 선배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느껴본다"며 자괴감을 토로했다.
오전엔 KBS 문화부장, 오후엔 청와대 대변인
'세월호 웃음 브리핑'이 터진 뒤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2014년 4월 21일 민경욱 대변인은 또다시 뉴스 메이커로 떠올랐다. 서남수 당시 교육부장관과 관련된 발언 때문이다. 서 장관은 세월호 참사 당일,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응급 치료가 이뤄지던 탁자에서 응급 의약품을 한켠으로 밀어놓고 컵라면을 먹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순간에도 구조된 학생들은 체육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추위에 떠는 몸을 담요 한 장으로 감싸고 있었고, 의료진들은 이들을 진료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남수 장관이)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서 먹은 것도 아니다. 쭈그려 앉아서 먹은 건데 팔걸이 의자 때문에, 또 그게 사진 찍히고 국민정서상 문제가 돼서 그런 것이다." 4월 21일 오후 민경욱 대변인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부 기자들과 만나서 한 이야기다. 민 대변인은 '(이날 팽목항 사고상황실에서 기념 촬영을 시도해 물의를 일으킨) 안전행정부 공무원은 사표를 수리했는데, 라면을 먹은 교육부 장관은 어떻게 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국민 정서상 모든 것을 조심했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됐다"며 이같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청와대 출입정지 징계를 각오하고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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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계란 넣어 먹은 것도 아니고..." 청와대 대변인의 '서 장관 감싸기'서 장관의 컵라면 건이나,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닌데...'라는 민 대변인의 발언 모두 <오마이뉴스>의 단독 보도였다. 후자의 경우,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은 비하인드가 있다. 민 대변인 발언 다음날인 4월 22일 오전 청와대를 출입하던 이승훈 기자가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민 대변인에게 '계란 라면' 발언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다. 몇 시간 후, 민 대변인은 당시 뉴스게릴라본부장(편집국장)을 맡고 있던 내게 연락을 해왔다.
"국장님, 청와대 대변인 민경욱입니다"라고 말문을 연 그는 "불미스러운 일로 전화를 드리게 돼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어 '계란 라면' 발언을 하게 된 전후 상황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선처해달라고 '읍소'했다. 민 대변인이 말한 선처는, 자신의 발언을 기사로 내보내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민 대변인의 '읍소' 내용은 이랬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상처 주는 게 견딜 수 없습니다"
"제 말 뜻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살피지 못한 건 (서 장관이) 비난받아야 하지만, 그것 가지고 장관을 자른다는 건 가혹한 일'이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이 발언이 기사화되면) 저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신변 정리(사표)를 해야 합니다. (세월호) 피해 가족들이 계신데, 그 분들의 마음을 긁게 되는 게 무섭습니다. 슬퍼하는 분들께 제 본 뜻과 관계없이 특정 발언만 나오게 되면... 정권에 끼치는 누도 크지만, 그 분들께 상처드릴 게 두렵고 무섭습니다. (기사를 내보내지 않고) 선처를 해주신다면, 결코 잊지 않겟습니다. 백배천배 노력해서 앞으로는 '오프 더 레코드'를 걸더라도 조심하는 처신을 하겠습니다. 국장님께서 (선처하는) 그런 권능을 갖고 계시면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머리를 조아려서 부탁드립니다. 제가 (춘추관) 마이크 앞에서 그런 발언을 할 리도 만무하고... '이 놈 또라이구나' 그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저의 일신상의 문제는 아니고... 이미 (KBS를 떠나서 청와대에 왔을 때는) 다리를 불살랐기 때문에... (제게는)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고등학생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민 대변인의 말씀은 잘 알아들었다. 제가 편집국장으로서 약속 드릴 수 있는 한 가지는, 지금 민 대변인이 한 이야기를 편집국 간부회의에 전달하고 논의를 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답변하자) 국장님께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주십시오. 결정할 수 있는 최종 권능은 국장님이 갖고 계시지 않습니까. 만약, (제 발언이) 기사화 된다고 결정되면 제게 전화해서 미리 말씀을 해주십시오. 신변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럼, 전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국장님, 권능을 갖고 계시면 이번 한 번만..."이후 편집부장·배치팀장·사회팀장 등이 참석하는 <오마이뉴스> 편집국 간부회의를 열었고, 민 대변인과의 통화 내용을 전했다. 간부들의 결론은 만장일치였다. "오프 더 레코드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으니, 지체하지 말고 보도해야 한다"는 것. 회의 직후, 민 대변인의 '계란 라면' 발언은 <오마이뉴스> 톱1에 걸렸다. 물론, 기사 배치 직전에 청와대 출입 기자를 통해 민 대변인에게 이러한 사실을 '신사적으로' 통보했다.
자신의 발언이 <오마이뉴스>에 보도되면, 신변정리를 하겠다던 민경욱 대변인은 532일 동안 장고한 끝에 2015년 10월 5일 청와대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올해 4·13 총선에서 인천 연수구(을)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금배지를 땄다. 청와대 대변인 시절 벌어진 '세월호 웃음 브리핑'이 NG 장면만 떼어내 억울하다는 민경욱 의원을 위해 가급적 전후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느라 기사가 길어진 점, 독자 여러분께서 혜량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