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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갑남

ⓒ 전갑남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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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갑남

게으른 농부가 팥을 타작했습니다.

오후 들어 겨울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이른 아침하고는 딴판입니다. 영하의 날씨지만 한낮은 따스합니다. 햇볕이 부리는 자연의 조화에 몸과 마음까지 풀어놓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팥을 털어야겠습니다. 남들은 진즉 끝낸 일인데 이제야 일을 찾았습니다.

내 일하는 폼을 보고 지나가던 이웃이 말을 겁니다.

"지금 팥 터는 거여? 부지런도 하구먼! 가뭄에 깎지가 덜 여물었지?"
"씨알이 시원찮네요!"
"농사지은 거면 한 알이라도 털어야지!"

솔직히 말해 허드레가 많은 씨알이라 짜증이 나는 일입니다.

아내가 일찍 퇴근하였습니다.

"팥 터는 거야?"
"팥이 별로라서 차일피일 미루다 그냥 마무리나 지으려고!"
"이 정도면 괜찮아요! 장사할 것도 아닌데..."
"그래? 동짓날 팥죽도 쑤어먹고, 팥밥도 지어먹자고!"


아내가 팔을 걷어붙입니다.

"당신, 키 좀 가져와요."
"난 선풍기로 검불 날리려고 했는데."
"이깟 것 갖고 뭔 선풍기를 동원해요!"
"힘들 건데..."


키를 건네자 아내는 능숙한 솜씨로 키질을 합니다. '싹아싹 싸아싹' 팥알 굴러다니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키 안에 팥 알갱이가 이리 저리 몰려다니며 춤을 춥니다. 나부끼는 키 바람에 자잘은 검불은 날려갑니다.

아내 키질을 보며 조상들의 지혜에 놀랐습니다. 누가 이런 것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키질로 어느 정도 걷어낸 검불은 어레미질로 마무리 합니다. 어레미 구멍으로 더 작은 검불들이 죄다 빠져나갑니다.

빨간 팥 알갱이들이 소담스럽습니다. 비록 상품가치는 별로 없지만 양이 수월찮습니다. 내가 농사지은 거라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을 마친 아내의 얼굴이 환합니다. 수확의 기쁨이랄까요?

나는 아내에게 말합니다.

"동짓날 새알심 넣은 팥죽, 기대해도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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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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