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참으로 기나긴 고통의 세월이었다. 역사가 과거 유신시절로 돌아간 듯한 어둠의 시대였다. 우리가 이미 획득했다고 믿었던 그 민주주의의 원칙과 틀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 국민들은 이 어둠을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손으로 몰아냈다. 독재자는 자기의 성에 유폐되었고, 우리는 광장에 섰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광장을 불살랐던 촛불의 열기를, 그리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는 그 뜨거운 외침을 진정한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믿는다. 광장의 열기가 그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법률과 제도로써 정립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오마이뉴스>에 연속 기고한다 -기자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촛불의 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사실 국민들의 탄핵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청와대와 함께 양대 선출기관인 국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간 국민과의 소통을 막은 것은 청와대만이 아니다. 국회 역시 철저한 불통 집단이었다. 국회는 청와대 국정농단을 막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협력하고 방조하였다. 세월호 참사 이래, 이 땅의 민주주의의 압살 책임에 국회 역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야당은 국민들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만들어줬음에도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을 효과적으로 수호해내지 못했다.

오직 '촛불민심'으로 상징되는 시민이야말로 무너진 이 땅의 민주주의와 야당을 다시 복원시켜낸 힘이었다. 국회는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구체제 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당명부제 선거제로 독점적 정치체제 해체해야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지난 4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제3투표소가 설치된 동성고등학교 앞에서 우비를 입은 조사원들이 출구조사를 하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지난 4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제3투표소가 설치된 동성고등학교 앞에서 우비를 입은 조사원들이 출구조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정치권의 기득권은 무엇보다도 현재의 왜곡된 선거제도로부터 연유하고 있다. 현 선거제도는 민의를 왜곡하여 거대 양당의 독점적 구조를 구조화하고 제도화한 앙시앵레짐(구체제)이다. 그리하여 국회 개혁은 먼저 민의가 정확하고 민주주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시행하여 민의가 적확하게 반영되고 소수 정당의 장내 진입이 허용되어야 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죽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의정치 제도가 사망하였다. 현재의 대의정치 제도가 지닌 가장 치명적인 논리의 약점은 선출된 자가 선출되는 순간 투표한 대중들로부터 자유롭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의원)는 특정 선거민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전체 국민을 위한 전체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 위임(freies Mandat)'을 받은 것으로서 국민에 책임지는 '명령 위임(imperatives Mandat, 羈束委任)'은 배제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명령 위임'을 배제시킨 바로 그 순간 선출된 대표자는 국민에 봉사하는 위치로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위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의 관계에서 대표되는 실체는 없으며 대표하는 행위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는 행위와 대표자가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행위뿐이다. 이러한 '왜곡된' 대의 관계에서 오늘날과 같은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초래되었다.

국민소환제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유력한 방안이다. 현재 지자체장에게만 적용되는 소환제를 국회의원에게도 적용시켜야 한다. 다만, 현재 지자체장에 대한 소환제는 그 소환 요건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으므로 그 문턱이 크게 낮아져야 한다.

유신-국보위가 만든 전문위원 검토보고제 폐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하는 제346회 국회(정기회) 제18차 본회의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가결 발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표결하는 제346회 국회(정기회) 제18차 본회의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가운데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가결 발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검토보고제와 전문위원 제도는 국회 왜곡의 주요한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군사독재체제인 유신과 국보위 시기에 권력은 특히 국회를 거수기 기관으로 전락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이른바 검토보고제와 전문위원 제도가 고안되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의심없이 제도화되어왔다.

그리하여 외부에서 국민들의 눈에는 법안이란 발의부터 검토와 심의 그리고 통과까지의 전 과정을 국회의원이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한 '검토', 사실상 '결정권'은 국회 입법관료의 손에 넘겨져 있다. 법안과 예결산 검토보고 역시 모두 국회 입법관료가 수행한다.

그뿐만 아니라 각 상임위원회 회의에서의 법안 설명도 입법 관료의 몫이며,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은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유신과  국보위 당시 권력이 의도한 바와 정확히 부합하고 있었다.

이처럼 자신의 본업을 수행하지 않고 직무유기(아웃소싱, 혹은 주객전도)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에 왜곡된 오늘의 국회의 본질이 존재한다. 의원들은 처음부터 이러한 제도가 이미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또 의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본인의 수고로움까지도 덜어주고 남는 시간에 '보여주기식' 정치싸움(사실 여야 의원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다)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지역 관리도 여유있게 하면서 재선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고마운' 제도다.

독일 의회는 전문성이 부족한 의원들의 입법 활동과 정책전문성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즉, 위원회에서 정당 간에 협상을 하기 전에 각 정당이 상임위원회별로 특정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토론과 연구의 진행을 통하여 전문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독일 의회는 각 정당 내 상임위원회마다 소그룹이 운영되고 여기에 수백 명으로 구성된 각 정당의 정책연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짧게는 6주에서 길게는 6개월에 걸쳐 상임위 의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조율한다. 이러한 시스템에 의하여 의원 개개인의 전문성도 향상되고 각 정당의 전문성도 당연히 증대된다. 이는 의회의 전문성 제고로 이어진다. 소그룹에서 채택된 사항은 대부분 그대로 정당 전체의 견해로 채택된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다면 '일하는 국회'를 실현시킬 수 있고, 의원들 스스로 정책과 제도를 연구하고 모색하는 과정에서 여야 간 정치투쟁이 감소하고 조정과 협상이 증대되는 정치 발전도 이뤄낼 수 있다.

시민주권 실현 위해 국회 내 온라인 청원실 설치 

세월호 유가족들이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해마다 '열린 국회' 행사를 하고 국회의 정문과 잔디밭 그리고 도서관 야외공연장을 국민에게 개방하는 것이 '열린 국회'로 나아가는 본질은 아닐 터이다. 지금 정작 개방해야 할 것은 불통으로 굳게 닫힌 민의(民意)의 반영을 국회가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인가에 있다.

특히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표현되고 있는 한국의 현 상황에서 온라인, 오프라인상의 민의를 의회에 반영하는 것은 직접민주주의 성격을 대의제도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고 투사시킴으로써 대의 민주주의의 약점을 결정적으로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회 내에 청원실을 설치하여 대중들의 청원을 적극적으로 의회의 입법 활동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독일 의회에서 청원위원회는 두 번째 큰 상임위원회로서 대중으로부터 접수된 청원을 중요하게 처리하고 있다.  

청원제도가 여전히 각국에서 계속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이 제도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기관에 국민의 의사와 요구사항을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기관은 이를 수리, 심사한 뒤 그 결과를 청원인에게 통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국민주권주의의 실현과 기본권 보장의 확립이라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시민참여의 효과성은 참여를 위한 제도적 장치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수용자 측의 반응성(反應性, responsiveness)과 책임성(accountability)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며, 시민참여란 참여자의 정치적 효능감(效能感)이 뒤따를 때 비로소 그 효과성이 실현될 수 있다.

국회에 설치되는 청원실은 직접민주주의의 국회 수용의 차원에서 제도 개선 및 정책 제안과 관련된 집단 온라인청원의 활성화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청원을 온라인 및 오프라인 양 측면에서 모두 접수할 수 있도록 하고, 청원제도를 실제로 유명무실하게 만든 '국회의원의 소개' 의무 조항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청원이 반드시 국회의원의 소개를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현재의 '국회의원의 청원 소개' 규정은 사실상 대중들의 청원권을 크게 위축시키는 것이다. 실제 우리 국회는 청원의 채택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거의 논의조차 되지 않고 폐기되고 있다.

100만 명 이상 청원하면 청원특별위 회부 의무화

청원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온라인상에서 제공하고 국민들의 서명을 접수하며, 나아가 내용에 대한 지지나 비판 의견을 제시하는 '숙의(熟議) 혹은 평의'(deliberation)의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또한 접수된 청원은 그 처리과정을 접수인이 항상 확인할 수 있도록 온라인상으로 투명하게 공개되고 (전자)우편으로 중간에 처리과정을 고지하도록 한다.

100만 명 이상이 서명한 청원은 청원특별위원회에의 회부를 의무화하고 청원특별위원회는 이를 심의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의 신설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이 경우 서명인원에 따른 의무 경중(輕重)의 구분을 고려한다.

참고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헌법 개정에는 그 현재 시점의 직전에 치러진 주지사 선거 유효투표수의 8%에 해당하는 주민 서명이 필요하고, 법률 개정에는 6%의 서명이 필요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약간은 다른 차원이지만 미국의 백악관도 30일 이내에 10만 명 이상의 청원 서명이 모이면 백악관은 이에 회답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소준섭 박사는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받았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직접민주주의를 허하라>, <대한민국민주주의처방론>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유신반대 운동으로 수배, 구속된 바 있고, 서울의 봄 때 다시 수배되어 광주항쟁 전 과정을 <광주백서>로 기록하고 지하에서 출판 배포하기도 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태그:#소준섭, #촛불집회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