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버스 시리즈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경찰국 소속의 형사 존 리버스 경위를 주인공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시리즈입니다. 1987년에 나온 <매듭과 십자가> 이래 지금까지 계속 출간되며 인기를 유지해 온 이 시리즈는 작가 이언 랜킨을 스코틀랜드의 국민 작가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영국에서 팔리는 범죄 소설의 약 10%가 바로 이 '존 리버스 컬렉션'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리즈의 13번째 작품이자, 미국추리작가협회(MWA)가 선정하는 에드거상 수상작인 <부활하는 남자들>(2002)이 출간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작품 자체의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이 참신하지 못했던 탓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존 리버스라는 캐릭터의 역사를 모르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차에, 2015년부터 존 리버스 시리즈가 순서대로 번역 출간되기 시작했습니다. 오픈하우스 출판사의 장르 문학 브랜드 '버티고 시리즈'의 일환으로 첫 권 <매듭과 십자가>가 나온 이래, 이 책 <스트립 잭>까지 모두 4권이 나온 상태입니다.
이번 책에서 존 리버스가 마주한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에든버러의 신진 하원의원 그레고르 잭이 매음굴 불시 단속에 걸려 들어 정치 생명에 위기가 찾아오고, 리버스 경위는 그 묘한 타이밍에 의구심을 품습니다. 게다가 그 며칠 후 잭의 부인 리즈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면서, 사건의 파장은 점점 커집니다.
살인 미스터리를 읽는 독자는 이야기 속 인물과 함께 사건 해결을 위한 결정적인 단서가 무엇인지 찾아 헤매게 됩니다. 단서가 논리적 인과 관계 속에 잘 자리 잡고 있고, 독자가 발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숨겨져 있다면 즐거움은 배가 되겠지요.
이 책은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잘 쓰인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단서를 발견하는 과정이 잘 짜여 있고, 서브 플롯을 적절히 활용해서 독자가 오판하게 만드는 기술도 훨씬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편입니다. 전작들을 읽고 명성에 못 미친다는 생각을 했던 분들도 이번 작품만큼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권 <매듭과 십자가>와 셋째 권 <이빨 자국>은 정신이상자인 범인과의 대결을 스릴 있게 그렸다는 점에서 사이코 스릴러라고 할 수 있지만, 둘째 권 <숨바꼭질>과 이 작품 <스트립 잭>은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탐정 역할을 맡은 주인공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상류층의 인간 관계와 정치 사회적 배경을 건드리며, 주인공의 냉소적인 태도와 블랙 유머가 깔려 있기 때문이죠.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기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대실 해밋이 창조한 샘 스페이드는 차가운 현실주의자이고, 레이먼즈 챈들러 소설의 필립 말로는 상처 입은 로맨티스트이며, 로스 맥도널드가 만든 루 아처는 윤리적 타락을 냉정하게 지켜보는 증인입니다.
그에 비하면,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비관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찰 내부의 관료 체계, 친밀한 인간 관계, 번지르르한 겉모습 등을 절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꼬인' 면모는 그에게 어려운 사건을 끝까지 파고들게 만드는 주된 동력이 됩니다.
범죄 미스터리가 독자들을 매혹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 범죄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주는 쾌감도 그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일상 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체험을 안전한 방식으로 제공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요.
<스트립 잭> 역시 욕망과 질투의 교차점에서 밑바닥을 드러내고 마는 인간 군상들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정신이상자나 사회 부적응자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일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똑같이 행동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렇듯 미스터리 소설은 무의식 속에 깊숙히 숨겨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부분을 탐구합니다. 그것을 밝은 빛 아래로 끄집어 내어 모두가 그것을 볼 수 있게 만듭니다. 우리 인간이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과,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렸을 때 겪게 될 불행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말이죠.
덧붙이는 글 |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스트립 잭>,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오픈하우스 펴냄 (2016.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