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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난 기사의 제목이 편집과정에서 바뀌어 있어 잠깐 이에 대해 언급을 해볼까 한다.

뉴스의 제목이 바뀌니, 왠지 모르지만 뉘앙스가 미묘하게 바뀐 듯한 느낌이 든다. 편집과정을 거치면서 기자가 원래 하려고 했던 말과 어감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미리 일러둔다.

써 놓고 보니, 원래 제목이었던  '남한에서 가장 넓은 산, 한라산'이라는 제목은 뉴스 기사보다는 에세이에 더 가까운 제목이었다. 이는 기사내용과 잘 어우러지지 않거니와 사실성을 중요시하는 기사에서 심리적인 의미가 담긴 제목이라 적절치 않다. 기사보다는 에세이류를 쓰던 버릇이 몸에 배인 탓이다.

제목을 다시 고쳤더라면, '자연을 돈이라는 가치로 매기는 데 올인한 제주'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기사라는 형식의 명료하고 딱딱한 글은 아직 내게 익숙치 않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듯하다.

남편과 내가 제주에 발을 디딘지는 겨우 한달 하고도 보름.

더러 육지 못지 않게 추울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겨울인데도 가을이나 봄의 느낌이 강할 때가 더 많았다. 춥다는 표현도 그닥 어울리지 않는 것이, 대구에 견주면 '쌀쌀한' 가을 날씨 쯤 된다.

바람이 없고 햇볕이 따뜻한 날엔 꽤나 더울 때도 있어서 겨울에 반팔 차림 행인들을 적잖이 볼 수 있다. 이런 서귀포도 12월 중순이나 말 쯤부터는 육지 못지 않게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제주도, 그 가운데에서도 서귀포의 겨울에는 사계절이 다 담겨 있다.

 가을에 앙증맞은 까만 열매를 맺는 까마중
가을에 앙증맞은 까만 열매를 맺는 까마중 ⓒ 석문희

 대표적인 가을 들꽃, 개미취
대표적인 가을 들꽃, 개미취 ⓒ 석문희

 바다와 야자수
바다와 야자수 ⓒ 석문희

아직 서귀포에서는 한창 가을의 상징인 까마중과 코스모스, 개미취와 함께 봄의 상징인 별꽃나물, 쑥이 파릇파릇 끊임없이 새싹을 내밀고 함께 자라면서 겨울을 나고 있는 중이다. 제대로 된 겨울 추위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 겁도 없이 새싹을 내밀어서 어쩌자는 것인지. 물론 열대의 상징인 야자수들도 여기에 가세를 한다.

계산이 없는 식물이 지구에서 인간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지고 번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아마 계산을 잘 하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더라도 식물은 아무런 계산없이 번성하리라.

요며칠 기다리던 비가 제법 왔다. 그래서 어제는 짬을 내어 남편과  제주에서 가장 높은 폭포로 향했다. 단, 비가 올 때만 가장 높은. 좀더 정확히는 '충분한 양의 비가 오고 난 뒤 강수량이 풍부할 때만 물이 떨어지는 제주에서 가장 높은 자연폭포'가 되시겠다.

그렇다. 엉또 폭포는 비가 오고 난 뒤 이따금 제주에서 가장 높은 폭포가 되지만 평소에는 폭포가 아닐 때가 많다. 그냥 꽤 높은 절벽처럼 보일 뿐이다.

우리처럼 조금의 폭포수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 꽤나 있었나 보다. 외진 산길을 사람들이 적잖이 오간다. 그러나 이틀 정도 내린 겨울비로는 어림도 없었던 것일까. 엉또폭포는 폭포가 아니라 절벽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제주에서 가장 높은 폭포구경은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엉또폭포 가는 길, 또는 엉또폭포에서 내려가는 길
엉또폭포 가는 길, 또는 엉또폭포에서 내려가는 길 ⓒ 석문희

 흐린 날의 엉또폭포
흐린 날의 엉또폭포 ⓒ 석문희

폭포 옆에는 자그마한 동굴도 있었다. 엉또폭포 근처의 무인카페 주인장이 써 놓은 안내 말씀에 따르면 키스동굴이란다. 흐린 날씨 때문일까? 누가 저장고 용도로 쓰다 방치해 놓은 듯한 느낌의 살짝 음침하게 생긴 동굴이라 그냥 가자고 했더니, 남편 말씀에 따르면 키스를 하면 백년해로를 한다고 적혀 있단다.

키스동굴이든 뭐든 키스명소라는 곳에서는 닥치는대로 다 키스를 하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뽀뽀를 하고 나왔다. 나오면서 보니, 그 곳의 역사랄까,  키스동굴의 작명 유래에 대한 설명을 깨알같이 써놓은 안내판이 있다. 다 읽지는  못했으나 '삼신'이라는 말을 얼핏 본 것 같다.

아,  내가 왜 거기서 키스를 하고 말았을까. 제주는 늙은 신혼부부인 우리 둘이 살아내기도 쉽지 않은 곳인데 말이다. 앞으로는 어딜가든 안내말씀 뿐 아니라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그 유래에도 귀를 잘 기울일 일이다.


#엉또폭포#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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