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립희망원에서 근무하던 회계직원이 원장을 협박해 거액을 갈취하면서 검찰에 구속됐는데도, 재판 결과 집행유예로 풀려나 전형적인 '봐주기식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립희망원은 지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312명의 생활인이 사망하는 등 인권유린과 급식비 횡령 의혹 등이 불거져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다.
대구시립희망원 전 회계과 직원인 이아무개(43)씨는 지난 2013년 4월 회계과장의 컴퓨터 저장장치(USB)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대구시립희망원이 식자재 공급대금을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빼돌리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는 이후 2014년 1월 퇴사한 후 총괄원장인 배아무개 신부를 협박해 증거를 없애는 조건으로 그해 7월 29일 한 식당에서 1억 2000만 원(1천만 원짜리 수표 12장)을 받았다.
이씨는 당시 지인을 통해 "내가 배 신부에 대한 비리자료를 가지고 있다"며 "대구희망원에서 신부들이 비자금을 만들고 있고 비자금을 관리하는 통장도 있는데 이걸 언론에 터뜨리면 발칵 뒤집어진다"고 원장을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어차피 나쁜 돈이니 그 돈을 조금 받아쓰면 어떠냐"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대구희망원의 비자금 조성 정황을 포착, 배아무개 신부 등을 소환해 조사하고 나서 이씨를 지난달 28일 공갈과 사기 혐의로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협박을 받고 돈을 건넨 배아무개 신부가 이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결국 대구지방법원 제8형사단독(판사 이상오)는 지난 23일 이씨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씨에 대해 "범행의 수법 등에 비추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면서도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과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피해자가 선처를 바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 대구희망원 비리 관련자 구속 수사 촉구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시민단체들은 전형적인 봐주기식 판결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검찰의 즉각 항소와 대구희망원 비리 관련자에 대한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구지역 장애인단체와 인권단체 등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 대책위(이하 희망원대책위)'는 26일 대구시 수성구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은 대구시립희망원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비리 성직자를 전원 구속하라"고 촉구했다.
희망원대책위는 "온갖 인권유린과 비리가 희망원 내에서 발생했다"며 "검찰에 공정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끊임없이 촉구하여 왔지만 지난 23일 각종 비리와 횡령에 관계된 구속자 이아무개씨의 1심 판결에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희망원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기 훨씬 전인 2014년 7월 희망원 비자금 자료를 폭로하겠다며 당시 희망원 총괄 원장신부인 배아무개씨를 협박해 1억 2000만 원을 갈취한 혐의로 1심 판결에서 약소한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고 비판했다.
희망원대책위는 특히 원장신부인 배씨가 협박을 받고 거액을 건넸음에도 처벌을 받기는커녕 피해자로 둔갑하고 협박한 이씨를 위해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비이성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희망원대책위는 "희망원 내 비자금을 무마하려고 거금을 건넨 비리사건의 주범이 처벌은커녕 갈취당한 피해자로 둔갑하여 희망원 비리사건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며 "배씨가 이씨에게 건넨 1억 2000만 원이라는 거금이 어디서 마련되었는지, 희망원의 비자금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관련자 전원을 구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재식 희망원대책위 공동대표(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는 "검찰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눈치를 보며 짜맞추기 수사를 하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신부가 무슨 돈이 있어 1억 원이 넘는 돈을 건넬 수 있는지 철저하고 성역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구시립희망원에서 15년째 사회복지사로 있는 조정희(공공운수노조 대구시립희망원지회 사무국장)씨는 "희망원 문제와 대구대교구 태도를 보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닮아 있다"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무 잘못도 없는 노숙인과 장애인을 이용해왔다. 지금도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이어 "가톨릭이 아니면 이 시설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억울한 죽음을 비롯한 인권침해를 밝히기 위해서는 검찰이 눈치 보지 않고 성역없는 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구시립희망원을 36년째 운영해온 천주교대구대교구 유지재단은 각종 비리가 드러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관련자 징계 등을 요구하자, 지난달 8일 대구시에 위탁권을 반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