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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보충대에 온 지도 3일째가 됐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드디어 보충대를 떠나지요. 보통 사람들은 '그래도 며칠간 정든 곳을 떠나서 아쉽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정들은 오히려 기쁨을 표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드디어 벗어나게 됐다'라고 말이죠.

매우 적은 양의 식사, 열악한 취침환경, 매일 '똑같은' 불침번 등. 장정들이 질색을 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특히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것도 여기에 한몫했죠. 대부분의 장정들은 보충대에서 사실상 '거지생활'을 보냈죠. 그렇게 3일째였습니다.

열악한 보충대에서의 마지막 저녁

 2011년 10월 14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육군 306보충대에서 열린 신병부대분류에서 부대발표를 마친 장병들이 떠난 뒤 플라스틱 의자가 남아 있다.
2011년 10월 14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육군 306보충대에서 열린 신병부대분류에서 부대발표를 마친 장병들이 떠난 뒤 플라스틱 의자가 남아 있다. ⓒ 연합뉴스

저녁식사를 마친 장정들은 각 생활관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날 아침이면 각자 예하 사단의 신병교육대로 향합니다. 보충대와는 이제 작별이죠. 어떤 장정은 "가만히 있으니 좀이 쑤신다. 차라리 빨리 훈련소로 가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장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소한 훈련소에서는 밥은 넉넉히 주겠죠. 잠도 제대로 된 곳에서 충분히 자겠고."

그걸 듣고 사람들은 모두 탄식했습니다. 매우 적은 양의 식사량. 3명이 매트리스 2개와 모포 2개를 같이 쓰는 열악한 잠자리. 매일같이 서는 '불공평한' 불침번. 이 모든 것들이 보충대에서 떠나고 싶은 이유였습니다. 오죽하면 힘들 것 같은 훈련소를 어서 가고 싶다고 했을까요.

사실 저도 얼른 훈련소로 가고 싶었습니다. 여기에는 뭣하나 좋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 밥도 적게 주고, 잠자리도 너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훈련소와 자대보다 훨씬 좋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과연 뭘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죠.

하지만 '목욕탕'만큼은 좋았다

씻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장정들은 '또 차가운 물로 고양이 세수나 해야 하나'라고 비꼬고 있었죠. 그런데 이때 구대장은 복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정들은 세면백을 챙기고 씻을 준비를 합니다. 목욕탕에서 합니다."

바로 목욕탕이었습니다. 그 말에 모두들 들떴습니다. 목욕탕! 커다란 탕과 마음껏 쓸 수가 있는 뜨거운 물! 지금까지 보충대에서는 너무나도 열악했습니다. 기껏해야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물로 고양이 세수만 했죠. 목욕(沐浴)은커녕, 족욕(足浴)도 엄두도 내지 못했죠.

서둘러 모두 세면백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수십 명이 목욕탕으로 향했습니다. 보충대에 적어도 수백 명의 장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빠른 교대를 위해 수십 명이나 동시에 보냈습니다.

기나긴 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 씻은 장정들이 나오자, 우리들 수십 명은 목욕탕 라커룸에 들어갔죠. 서둘러서 들어간 우리는 매우 놀랐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따뜻했죠. 목욕탕의 열기는 굉장했습니다. 아쉽게도 탕은 텅 빈 상태. 여기에는 상당수가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대다수의 장정들은 좋아했습니다. 뜨거운 물을 실컷 쓸 수가 있으니까요. 특히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도 나왔죠. 정작 탕을 쓰지 못하는데도, '뜨거운 물'을 쓴다는 이유로 모두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고작 사회에서 3일 떨어졌는데도 이런 반응이 나오더군요.

3일만의 제대로 된 샤워. 나중에 알고 보니 예전에는 이렇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전에는 어땠을까요? 제대로 씻기지도 않고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나마 바뀐 것을 그저 '감지덕지'해야 할까요?

지긋지긋한 '불공평' 불침번

 불침번이란 이런 거다. tvN <푸른거탑> 중 한 장면.
불침번이란 이런 거다. tvN <푸른거탑> 중 한 장면. ⓒ tvN

목욕이 끝난 뒤에 장정들은 각자 생활관으로 복귀했습니다. 보충대에서의 마지막 밤이 다가온 것이죠. 저마다 기지개를 펴면서 하품을 했습니다. 이때 피곤한 얼굴의 장정이 이렇게 투덜댔습니다.

"오늘도 또 불침번 서야 돼?"

투덜거리는 그 장정은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다른 장정들도 마찬가지였죠. 그들도 "마지막 밤인데 오늘도 우리가 서야 하냐"라며 짜증을 냈습니다. 구석에 있는 몇몇 장정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분이 나빠 보였죠. 저 역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불침번을 매일매일 세웠기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불침번을 섰기에 장정들은 굉장히 피곤했습니다. 특히나 매일 똑같은 시간에 서는 것은 미칠 지경이었죠. 사실 사람이 부족하면 매일매일 불침번을 서는 부대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장정들이 불만을 가진 것은, '불침번을 서지 않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죠. 바로 구석에 있는 몇몇 장정들이 그에 해당합니다. 모두들 그 장정들을 살짝 째려봤습니다. 굉장히 얄미웠죠. 그러자 그중에 한 사람이 실실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래요? 불침번을 세우지 않는 보충대한테 항의하셔야지."

사실은 이렇습니다. 장정들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앞 번호부터만 쭉 불침번을 세웠죠. 즉, 1번부터 몇 번까지만 고정적으로 불침번을 서게 됐습니다.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앞 번호의 장정들은 매일 불침번을 선 것이죠. 그렇다면 그 다음 번호부터는 뭘 했을까요? 3일내내 근무를 서지 않고 편안하게 잠을 잤죠.

이렇게 근무가 없이 편안히 자는 사람이 나옵니다. 사람이 남아돈다는 뜻이죠. 그렇지만 보충대는 왜 고정적으로, 3일 내내 '같은 사람만' 근무를 세웠을까요? 전반적인 군의 '전시행정(展示行政)적인 행태'를 고려한다면, 그냥 귀찮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306에서의 마지막 밤에도 불침번은 변함없이 이어졌지요.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저 역시 똑같은 시간대에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일어났습니다. 근무를 서는 중간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충대를 벗어나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군 생활 내내 이 생각이 떠올랐죠.

'참, 지긋지긋하다….'

 미안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KBS <다큐3일> 중 한 장면.
미안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KBS <다큐3일> 중 한 장면. ⓒ KBS



#입대#입영#고충열#입영부터전역까지#불침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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