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외교적 압력을 가하면서까지 집요하게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을 보호하기 위한 맞춤형 조례 제정 움직임이 시작됐다.
담당 구청이 설치를 묵인하기는 했지만 법적으로는 '불법'으로 낙인찍혀 있는 소녀상을 합법 테두리 안에 넣어 보호하는 게 목적이다. 기존에도 공공조형물 관련 조례가 있지만 이 경우 소유권이 부산시로 넘어가게 되어 있어 상황에 따라 소녀상이 이전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작용했다.
정명희 부산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발의를 추진 중인 가칭 '부산광역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의 핵심은 '피해자에 관한 조형물·동상 등 기념물 설치·지원 및 관리사업'에 있다. 소유권은 설립 주체가 가지면서도 관리만 시가 맞는 구조가 골자이다.
이외에도 해당 조례에는 부산 지역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고 기념사업을 명문화한다. 올해를 기준으로, 부산에는 2008년 6명이던 위안부 피해자 중 1명(94세)만 생존해 있다. 조례가 통과하면 지원 대상자에게 생활보조비 50만 원을 지원하고, 사망 시 장례보조비 100만 원과 부산시 공설장사시설 이용료를 지원하게 된다.
소녀상에 가해지는 위협 "더 안전하게 소녀상 지켜낼 수 있을 것"
정 의원은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조례가 통과하면 소유권·이전권이 부산시로 넘어가 소녀상 이전의 여지를 열어줄 수 있는 기존 조례 대신에 더 안전하게 소녀상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산에서는 관련 펼침막이 흉기로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고, 철거를 요구하는 1인 시위가 벌어지는 등 소녀상 보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설립 단체가 중심이 돼서 소녀상을 보호·관리 하고 있다.
소녀상을 건립한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아래 추진위)도 새로운 조례에 희망을 걸고 있다. 추진위 측은 "지금으로서는 향후 외교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소녀상이 옮겨질 수도 있는 만큼 새로운 조례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서울의 경우 지난해 말 이미 소녀상을 위한 맞춤형 조례 개정에 돌입했다. 서울시의회에서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 '서울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은 시가 소녀상 같은 위안부 관련 조형물 설치를 지원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조례 제정까지 부산시·시의회 넘어야 할 산적
관건은 부산시의 부정적 기류와 시의회 내부의 분위기이다. 부산시는 기본적으로 기존 조례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존 조례인 '부산광역시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는 어디까지나 공공조형물 지정을 희망하는 단체나 개인이 조형물을 시에 기부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조례대로라면 소유권을 넘겨받은 부산시가 소녀상을 이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기존 조례대로라면 공공조형물심의위원회(심의위)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13명으로 구성하는 심의위는 부산시 문화관광국장이 위원장으로 참여하는 등 2명의 공무원이 당연직을 맡는다. 그 외 민간 심의위원은 비공개이고 심의 내용도 비공개로 다뤄진 후 결과만 통보한다.
500여 개의 부산 지역 공공조형물 중 소녀상은 지난해 3월 등록된 부산어린이대공원 소녀상이 유일하다. 심의위가 건립기준으로 '장소의 적합성'을 고려사항에 포함하고 있는 만큼 일부에서는 일본총영사관 앞이라는 민감성을 따질 때 통과가 불확실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이러한 우려에 부산시 관계자는 "(심의위는) 민간 위원이 다수란 점에서 시가 공공조형물 설치에 관여할 수는 없는 구조"라면서 "시가 소유권을 갖게 되더라도 기본적으로 이전은 설립 주체와 논의를 하게 된다"고 답했다.
관련 상임위가 될 가능성이 있는 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 측은 일단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앞서 2015년에도 유사한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일단 이진수 복지환경위원장은 "조례가 진영이나 정당을 떠나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