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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출발할 때부터 최강서 열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끊었다. 송파 세모녀도 절망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사고로 삶을 잃었고, 구의역 김군을 비롯하여 한 해 2400명이 산재로 죽었다.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사회를 만들지 말자는 다짐이다.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들이 왜 죽었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에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박근혜 정권과 싸워온 사람들' 기획을 내보낸다. - 기자 말

이렇게 잔인한 정권이 있었을까? 우리에게 지난 4년은 슬픔과 비통이 가득한 날들이었다. 재벌과 정부, 그리고 언론이 카르텔을 이루어 '돈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치를 유포하고, 소중한 생명을 내팽개치고, 그에 항거하는 이들까지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이 죽음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슬픔이나 분노에 잠식당하지 않고 이런 죽음이 더 이상 없도록 하기 위해 광장을 열어온 이들이 있다. 그 광장은 차 소리 시끄러운 작은 천막이거나 구사대와 용역깡패가 24시간 노려보고 있는 공장 앞이거나, 혹은 광고판 위의 하늘이었다. 그곳은 죽음을 딛고 삶을 열어가는 공간이었다.

이 정부는 노동자에게 무자비했다

지난 2012년 12월 부산 영도구민장례식장에 마련된 최강서씨의 빈소. 유족이 최씨의 영정 앞에 앉아있다. 최씨는 부인과 사이에 7살, 5살 난 아들을 남겼다.
 지난 2012년 12월 부산 영도구민장례식장에 마련된 최강서씨의 빈소. 유족이 최씨의 영정 앞에 앉아있다. 최씨는 부인과 사이에 7살, 5살 난 아들을 남겼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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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는 유서를 남긴 이가 있다. 4년 전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그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최강서. 정리해고로 쫓겨나 싸우다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그는 죽음의 길로 떠났다. 현대중공업과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이운남과 윤주형이 그 뒤를 따랐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5년의 끔찍함을 직감했다.

이 정부는 정말로 노동자에게 가혹했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에 다니다 목숨을 끊은 최종범씨는 '배가 고팠다'고 유서에 남겼다. 한국 1위의 매출을 자랑하는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배가 고팠다. 실업자는 100만 명을 넘고 청년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불안이 사회 전체를 짓누른다. 재벌들은 박근혜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는 제도를 주문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들의 카르텔 속에 노동자들은 고통스러웠다. 

이 죽음의 기억을 가슴에 담은 노동자들은 광장을 만들어갔다. 정리해고를 당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는 거짓말을 내뱉은 김무성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새누리당에 농성장을 차렸고,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다 죽음을 택한 한광호를 부둥켜안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 앞에 노숙을 시작했다.

지난 2015년 7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 탑에서 고공농성중이던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지난 2015년 7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 탑에서 고공농성중이던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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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비정규직은 전광판과 광고판 위에서 해고철회를 외쳤고, 기아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인권위 옥상 광고판에서 네 계절을 보냈다. 미대사관 뒤쪽 삼표 본사 앞에는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이 텐트를 쳤다. '박근혜 퇴진' 요구가 높아지던 때 이 노동자들은 광화문 캠핑촌과 정부종합청사 앞 비닐텐트를 열고 천만 촛불의 마중물이 되었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젊은 노동자가 숨졌다. 미래를 위해 한 달에 백만 원씩 적금을 붓던 열아홉 살 청년노동자였다. 그의 미래는 사라졌다. 서울메트로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노동자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구의역에 국화꽃을 바치고 포스트잇을 붙인 시민들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렇다.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인원이 부족해 안전장치 없이 홀로 일하게 하고, 열차가 다니는 시간에 선로밖으로 몸을 내밀어 일하게 만드는 '위험의 외주화'가 그 노동자를 죽였다.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죽을 수 있다. 구의역 9-4 스크린도어의 추모표지에는 '너는 나다'라고 써있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기업은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한 이들이 있다. 1년 넘게 삼성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반올림'이다. 1월 14일 촛불집회에서 삼성LCD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1급 장애를 얻게 된 한혜경씨와 그 어머니 김시녀님은 삼성에게 물었다. "삼성의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인가요?"하고 말이다. 삼성직업병 피해자와 가족들은 사람의 가치가 더 소중한 사회를 위해 그 농성장을 지켰지만 슬프게도 1월 15일 또 한 분이 돌아가셨다. 79번째의 죽음이다. 광화문의 촛불은 계속되고 있는데 누군가는 또다시 이렇게 희생되고 있다.

가난한 이에겐 가혹했다

지난 2014년 2월 송파구의 세모녀는 극심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14년 2월 송파구의 세모녀는 극심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 서울경찰청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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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송파구에 사는 세 모녀가 '죄송합니다'라는 쪽지와 밀린 방값과 공과금을 남긴 채 목숨을 끊었다.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큰딸, 다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어머니, 생활비와 의료비 때문에 금융파산자가 된 둘째딸. 세 사람은 차가운 세상 어디에도 기댈 수 없었다. 비참한 삶을 유지할 수 없어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해 번개탄을 피웠다.

일하다 다치면 생존을 유지할 수 없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기라도 하면 빈곤한 삶으로 떨어지는 사회, 이렇게 죽어간 것이 송파의 세모녀 뿐이겠는가. 아마도 그 때 최순실은 수천만 원짜리 미용주사를 맞으며 청와대를 드나들었으리라. 그의 딸은 '돈많은 부모를 둔 것도 능력'이라면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이들을 비웃었으리라.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정부는 가난한 이들에게 특히 가혹했다. 이 가혹함에 맞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며 광화문을 지켜왔던 이들이 있다. 광화문역 안의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등급제 폐지 농성장'이다. 장애인을 등급을 나누어서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미 연락이 끊긴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생계지원을 없애는 정부정책으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광화문 지하 농성장에는 그동안 죽어간 장애인들의 영정사진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등급제 때문에 활동보조서비스가 제한되어, 불이 난 곳에서 죽임을 당한 동료의 영정을 볼 때마다 농성장의 슬픔도 깊어진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혹하고 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한 이 정부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렸다. 예술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원에서 배제하고 협박했다. 정부 정책이 옳지 않다면 반대도 하고 저항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부는 특히 저항하는 이들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해군기지를 반대한 강정 주민들은 엄청난 손해배상과 벌금으로 숨이 막혔다. 따뜻하게 어울려 살던 밀양의 할매할배들은 송전탑이 들어온 후 한전의 갈라치기로 서로 미워하며 갈등했다. 그 속에서 살기 위해서 일어섰던 선량한 시민들은 목숨을 잃었다. 밀양의 이치우 어르신과 유한숙 어르신은 결국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지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모습. 백씨는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있다 317일 만에 사망했다.
▲ 물대포에 실신한 농민, 생명 위독 지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모습. 백씨는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있다 317일 만에 사망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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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적' 취급을 당하며 내몰리는 사람들의 원통함이 하늘을 울린다. 밥쌀 수입에 반대하고 수매가를 제대로 책정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던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전쟁터의 적군처럼 취급받았다. 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경찰은 처벌받지 않았으며, 심지어 시신을 부검하겠다면서 병원으로 몰려왔다. '아버지를 지켜달라'며 눈물로 호소한 유가족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하며 병원을 지켰던 그 많은 힘이 모여 촛불을 다시 일으켰다. 백남기 농민은 그 선한 얼굴로 광화문 광장을 내려보고 계실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304명 죽음의 목격자이다. 정부가 구하러 오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서로를 다독이며 '가만히 있었던' 이들. 우리는 그들이 수장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고통스러워하며 그저 무사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그런데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이들, 사람의 생명을 구하라는 국민들의 명령에 따라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온 국민이 그날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데 정부 책임자는 그날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그 권력을 세월호 유가족을 탄압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며 법원을 압박하여 진실을 은폐하는 데에만 활용했다. 그들은 이 죽음의 책임자들이다. 

광화문 세월호광장은 그 죽음을 늘 마주대하는 곳이다.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개인개인의 삶을 기억함과 동시에, 불의하고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권력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새기고자 함이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자들에게 권력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세월호광장을 지킨 이들이 있었다. 그 광장에서 리본을 만들고 서명을 받고, 분향소를 지켜왔던 이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앞에서 '진실규명'와 '안전사회'를 위해 비바람을 맞으며 뚜벅뚜벅 걸어온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광장을 지켰고 다시 새로운 광장을 열었다.

촛불은 더 확산되어야 한다

지난해 12월 3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 동아일보사 옥상에서 바라본 '박근혜즉각퇴진의날' 지난해 12월 3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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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불안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했고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했고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무력했다. 미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세월이 태평성대일지 모르지만, 이 사회는 경쟁에서 밀려날까 전전긍긍하는 이들의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체제는 강고하고 책임구조는 복잡하여 분노의 대상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절망한 이들은 때로는 사회적 약자나 불특정다수를 향해 그 분노를 터뜨렸다. 묻지마 살인, 폭행, 혐오와 배타가 난무했다. 그 때, 광장을 먼저 연 이들은, 우리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권력만을 지키려는 정부, 그와 결탁한 탐욕적인 재벌이 책임자이다. 이 고통의 근원을 향해 용감하게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광장의 촛불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지난 4년은 죽음의 고통이 지속된 날들이었다. 그런데 그 죽음의 곁에 있던 이들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작은 광장을 열었고, 매일 흔들리면서도 여기까지 왔다. 박근혜는 곧 물러나겠지만 그런다고 '죽음의 정치'가 바로 멈춰지지는 않는다.

그게 가능하려면 가진 자들의 횡포를 제어해야 하고,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공장의 담벼락 안에도 민주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해서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며, 경찰은 더 인권적이어야 한다.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이 과제를 위해서 광장의 촛불은 사회로, 일터로, 더 확산되어야 한다. 그래야 죽어간 이들에게 '우리 책임을 다 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죽음의 곁에서 눈물 삼키며 버텨온 이들에게 그제서야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박근혜, #최순실, #송파_세모녀, #비정규직,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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