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이 갈수록 늘어난다. 우리 집과 담장을 마주한 건넛집도 비어 있다. 주인장이 돌아가시고 난 후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주름살 가득한 노인처럼 무망하게 선 채 수심이 깊다. 그 모습에 처연한 생각이 따라와 가슴까지 아리다. 자식들은 서울에서 산다는데 아직 본 적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 내가 스러지고 나면 내 집도 똑같은 모양으로 변할 터이니 그 날을 떠올리면 꿈을 꾸는 듯 허무하다. 나날이 형체를 잃어가는 마당에 무성한 나뭇잎만 떨어져 내리는 묵은 집. 담장은 이미 허물어져 흔적만 남았다. 검게 색이 바랜 대들보가 흘러내린 지붕을 뚫고 나왔다. 그 모습이 늙고 병든 노인네 같다. 그 지붕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모진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떠난 할머니가 남겨준 김장김치
며칠 전 해거름이었다. 숲 앞에 서서 마지막 저녁 햇살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데 고샅으로 발걸음을 떼던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보더니 대뜸 말씀하셨다.
"여보시우, 연동댁이 아주 갔어요." "예?" "쯧쯧, 저 안 골목 노인이 서울에서 치료받는다고 올라가더니 죽어 내려 왔어요.""아이구."그 할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늘 정갈하시던 할머니. 뜨거운 햇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콩밭에서 밤낮으로 김을 매던 할머니의 노란 모자가 생각난다. 대파와 고구마순과 양파를 갖다 주시던 할머니의 거친 손과, 웃으시면 얼굴 가득 퍼지던 주름살의 형용. 병색이 완연해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다 드리면 줄 것이라곤 없다며 손사래를 치시던 할머니가 그립다.
지난해 겨울 할머니가 지나가는 나를 부르셨다.
"차를 가지고 와." "왜요?" "글쎄, 차를 갖고 오라고." 시키시는 대로 했더니 할머니는 대문에 서 손짓으로 불렀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놀랐다. 큰 통에 김장 김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여름이 되도록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가를 생각하니 비장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의 묘소를 물어 그곳 생활은 평안하신지 인사라도 여쭤야 도리일 것 같다.
빈집. 빈집의 모습이 마치 할머니 같다. 삭아가는 지붕이 할머니의 흰 머리 같고 듬성듬성 드러난 대들보와 서까래는 강처럼 구부러진 주름살 같다. 토방에 쌓아놓은 구멍 난 멍석과 할아버지가 주춤주춤 내려 디뎠을 섬돌, 마당귀에서 두런거리는 장독들, 수돗가의 깨진 돌과 마당가에 무심히 놓인 화분에서 솟아난 마른 풀대들. 수백 년은 묵었을 팽나무. 그 안에 쌓였을 장구한 세월을 상기하면 어찌 할머니의 굽은 등이 떠오르지 않으랴.
이제 집 또한 그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 한다. 할머니의 밭은기침으로 밤이 기울 때 긴 그림자가 된 고샅이 몸을 기울여 늙은 집을 가만히 끌어안는 모습을 상상한다. 할머니와 함께한 아주 오래된 늙은 집. 그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나눈 안식은 이제 끝났다.
철대문은 그 전의 사립문과 돌담과 빗장의 과거를 녹슨 몸으로 안고 있다. 깨진 장독은 그렁그렁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빗물처럼 담고 세월을 인내하고 있다. 흙에 덮인 신발은 또 어쩌랴. 제 몸과 함께 부대꼈던 사람의 뼈와 발목과 흰 정강이를 풍화된 바위처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빈집이 그동안 껴안았던 기억을 뒤지며 마당을 서성이는데 세월이 뒤란의 돌담 위로 낡은 시네마 필름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제 몸을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겨울나무가 산골의 애틋한 해거름 풍경을 목판화처럼 새기고 있는 광경 안에서.
집은 얼마나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까. 집의 기억 안에서 스러지고 있을 어느 한가했던 날의 오수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어떤 날은 봉창을 열고 대문을 들어서는 자식을 반겼거나 그 문 뒤에서 떠나가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어렸던 날에는 등불을 끄고 마당에 깔린 덕석 위에 누워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거나.
사람이 떠난 집, 천천히 몸을 구부린다
젊음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결국 늙음에 이른다. 그리하여 우리가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죽음이 없다면… 이뤄야 할 것이 없기에 이루는 것도 없다.
집이 천천히 몸을 구부린다. 이제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듬성듬성 빠진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머리 위에서 흩날리는 풀잎을 주름진 손으로 만진다. 드러난 갈비뼈처럼, 세월이 쌓여 검게 변한 서까래를 어루만지다가 견뎌온 젊은 날의 생애를 회상한다. 그가 지나온 빛나던 바다, 혹은 절망의 소용돌이를 반추하거나 질주와 노도, 그리고 우울과 안식을 꺼내 주름진 손안에서 쓸쓸히 궁 굴린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저 희미한 오감만 남은 그의 손바닥.
세상이 온통 나라를 대표했던 사람의 추한 속내로 떠나갈 듯 시끄럽다. 귀를 씻고 싶다. 집이 넘어지는 상상을 하는 순간 늙은 집에 매달린 풍경(風磬)이 울었다. 그 풍경소리에 마음을 씻는다. 심지를 추스르고 드디어 길을 나서는 집을 바라보며 내 절망도 산촌의 어둠을 타고 바람처럼 산등성이를 넘는다.
덧붙이는 글 | 우리 곁을 떠나는 사람과 그 사람들의 사연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곁에는 '이'와 '저' 사이에 선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우리입니다.